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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진 Jul 14. 2021

생을 우아하게 살아가는 방법

은 없다

오전 8시 30분경의 만원 버스만큼 타인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공간은 없을 것이다.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탈 때면 항상 출근하는 사람들과 학생들로 내부가 꽉 들어찼다.


나는 키가 큰 편이어서 힘들이지 않고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책을 읽는 일 등은 엄두도 낼 수 없었는데, 혹시라도 그랬다가 내 앞에 위태롭게 자리 잡고 서있는 누군가의 뒤통수를 본의 아니게 후려치기라도 하면 아침부터 걸쭉한 육두문자가 사정없이 고막에 꽂히거나, 더 재수가 없으면 드잡이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속절없이 비는 시간을 견딜 재간이 없던 나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흘긋흘긋 쳐다보거나 온갖 잡생각으로 머리를 채우면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릴 것 같은 사람의 좌석 앞을 두 팔로 포물선처럼 에워싼 채 버티고 있는 사람, 자리에 앉아 상모 돌리기를 하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 볼륨을 최대치로 높였는지 이어폰 너머로 음악을 줄줄 흘리는 사람. 다양한 인간군상을 접할 수 있는 생생한 삶의 체험 현장이 바로 그 버스 안에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출근하는 여자의 얼굴들은 괜히 한번 더 쳐다보게 되었는데, 이른 시간이었지만 그녀들은 단정한 헤어 스타일과 세련된 메이크업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우아한 어른들 같아 보였다.


반면 그렇지 않은 얼굴들도 있었다. 아침에 늦잠을 잤음이 분명한 부스스한 머리와 스타일이라고 칭할 수 없을만한 간편한 복장, 무엇보다 고루 펴 바르지 못해 조금씩 뭉친 파운데이션의 흔적들. 바쁘고 고단한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중에 취업을 해서 직장인이 되더라도 저런 얼굴은 되지 말아야지 하고. 보이는 것들만으로 타인의 삶을 쉽게 재단하고 규정짓던 오만하고 철없던 시절이었다. 세상이 내 생각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자아가 비대하다 못해 흘러넘치던 시절이었다. 사실 전자와 후자 모두 각자도생을 위한 치열함의 각기 다른 모습이었을 뿐일 텐데.


직장인이 된 나는 자연스럽게 후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은 진작에 깨어졌다.


우아한 삶이란 아침에 부리나케 일어나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푸석한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치덕치덕 바르고, 사람들에게 끼어 힘겹게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회사일로 종종거리고, 퇴근해서는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스마트폰을 끼고 뒹굴거리며 그날의 근심 걱정과 스트레스를 잊기 위한 현실도피에 빠지는, 그런 귀찮고도 구질구질한 일상과는 거리가 먼 세계의 것이었다.


이 모든 귀찮음과 구질구질함은 200만 원 남짓한 돈으로 치환되어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인데, 이런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는 내가 우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뒤져도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막 잠에서 깬 아침마저 29도를 육박하는 살인적인 여름에도 출근은 피할 수 없다. 오늘도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 9분 만에 초스피드 샤워를 하고 젖은 머리의 물기를 대충 손으로 눌러 짜고 아무렇게나 처박아 둔 옷을 입고 서둘러 출근했다.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으로 헐레벌떡 회사를 향해 뜀박질하는 내 모습 어디에서도, 역시 우아함을 찾아볼 수는 없다.


우아한 삶과 맞바꾼, 적지만 소중한 내 월급. 통장에 찍힌 숫자들을 볼 때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최소한 내 삶만큼은 스스로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우아함과 멀어진 내 삶이 그렇게 안타깝지만은 않다.


그러므로 우아하기는커녕 귀찮고 구질구질한 이 생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도 그리 힘들지만은 않은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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