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2026.01.17)

정말로 지금에 충실한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by 서리달

배배 꼬여있던 날씨가 풀려서 조금 걸었다.


일종의 산책일지도 모르겠는데 산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느긋한 감각으로 걸었던 건 아니라서 그냥 걸었다고 말해본다. 다른 것보다 분명한 목적지가 있으니 산책이라 말하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지. 카페에 가는 길이었다.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카페인데, 가는 길의 경치가 그럭저럭 눈에 담을 만해서 그 카페에 갈 때는 그냥 걷는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있거나 앉아있는 게 하루의 절반 이상이니까, 이렇게나마 부족한 운동량을 충족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10분 남짓 걷는 걸로 채워질 운동량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지만, 아무튼 걷는 행위 자체를 기피하는 편은 아니었다.


집에서 나와 완만하고도 짧은 오르막을 오른다. 강변에 잘 정돈된 산책로가 내려다보이는데 굳이 내려가 그 길을 걷진 않는다. 그저 높은 곳에 잘 정비된 데크를 걸으면서 여름보다 물도 사람도 줄어든 듯한 강변을 내려다보며 걷지. 잘 깔려있는 잔디는 지나간 여름을 진작 덜어냈고, 나무들 또한 놓아준 것들이 많아서 꽤 허전한 풍경이었다. 봄이나 여름 또는 가을엔 그럭저럭 바라보며 걷는 맛이 있었던 것 이곳 같은데, 이곳의 겨울 풍경은 아무래도 심심하단 걸 깨단한다.


그래도 몇 년 전에 머물던 그곳보다는 몇 곱절씩 낫다고 생각했다. 산책이라고는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칙칙했던 그곳. 그 동네에서는 낡고 낡은 철물점과 불이 꺼진 가게들이 많았다. 덧붙여서 낮고 낮은 지붕들의 구불구불한 속사정이 구부정한 탓에 그저 앞만 보고 걸었지. 평생 벗어나지 못할 변두리만 같았던 그곳을, 드디어 벗어났다는 사실을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체감하는 저녁에 맞닿은 오후. 조금 전보다 불그무레해진 하늘을 곁눈질로 흘겨봤다.


조금씩 저물어가는 해가 보이면 좋으련만 건너편의 아파트단지가 너무 높고 넓다. 나의 지금이 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또 하나 깨단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의 걸음은 언제나 그랬었지. 반드시 도착해야만 할 분명한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있던 걸음이었다.






슬슬 자를 예정이라고 말했지만, 아직까지도 치렁치렁 길러둔 머리카락의 끝을 매만진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짧아졌다가 길어지길 반복하는 머리는 언제부터일까. 마주하는 하루하루마다 땅을 향해 죽죽 늘어지기만 하는 중이지. 이제는 묶어두지 않으면 신경에 거슬려서 짧은 문장도 짓지 못할 지경이 됐다.


아무래도 슬슬 자를 때라는 건 아는데, 얼마만큼 다짐을 거듭해도 내 걸음이 미용실로 향하진 않는다. 매일매일 비슷비슷한 경로를 오락가락하기만 할 뿐: 답도 없이 치렁치렁 길러둔 머리카락은, 예외를 허락하지 않고 지내왔던 귀찮음이 길러둔 무심함이었다.


문득 자기 관리라는 말이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지. 그렇다고 해서 나를 아주 포기해 버린 듯이 사는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나를 나중으로 두는 편이었다. 이런 탓에 나를 치장하는 일에도 꽤나 게을러졌지. 예전에는 이것도 저것도 포기할 수 없다면서, 온갖 것에 신경을 쓰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_ 과유불급의 뜻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즈음부턴, 필요와 중요를 저울질하며 우선으로 할 것을 골라잡게 됐지. 이로 말미암아 설정하게 된 우선이라는 것은 끝끝내 내가 아닌 ‘문장’이 돼버린 것이었고. 이를 벗어나는 예외는 어쩔 수 없이, 혹은 당연하게도 일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치렁치렁

길러둔 머리카락의 끝을

매만지는 새벽


마주하는 하루마다 땅을 향해 죽죽, 늘어지기만 하는 머리를 그러모아 질끈 묶어두고 문장을 짓는다. 어쨌든 간에 지금의 내게 중요한 것은, ‘이것’이라는 믿음을 견고히 다지는 중이라고 하자.


그러니까 내일에 머물 내 꼬락서니란 게 조금 더 추레해져도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마음을 먹으려다가 멈칫했다. 제아무리 우선이 아니라지만 나를 너무 뒤로 밀어두는 건 아닐까, 이러다가는 내게 사람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어려워지는 건 아니겠는지. 영 답답하기만 한 물음들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는데_ 이제는 주변의 눈치를 살필 때가 아니라 지나가버린 어제보다 더욱더 지금에 몰입해야 될 때였다.


문득 자기 관리라는 말이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치렁치렁 길러둔 머리카락의 끝을 매만지며 낱말과 소리를 고민하는 새벽. 마주하는 하루마다 땅을 향해 죽죽, 늘어지기만 하는 머리를 또다시 그러모아 질끈 묶어두고.


지금에 머물지만 기어코

다음으로 나아갈 문장을 지었다.






시간은 흘러가버리는 강물 따위가 아니라고 일갈해 봅니다. 시간이란 본디 머무는 것, 이른바 ‘존재하는 시간’이라는 낭만 같은 추측에 확신을 뒤섞어 신앙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말을 들어도 내 신앙은 뒤집어지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내가 지어냈던 문장들이 엮어낸 한 편의 세계에서는 이런 신앙이 곧 법칙이었습니다. 나 비록 지금을 기록하는 문장을 지었더라도, 그 문장에는 분명한 과거가 존재하고 요구된 미래가 존재합니다.


시간이란 본디 머무는 것,


이른바 존재하는 시간이라는 낭만 같은 추측은: 이미 지어진 문장에서만큼은 가장 확실한 사실이 됩니다. 나는 늘 그렇게 지어왔습니다. 이미 다 지나가버린 과거를 지어낼 때조차 나는 어렴풋한 지금을 남겨뒀고, 돌아올 미래가 머물 자리를 남겨두곤 했었으니까요. 시간의 구분이 그렇게 흐릿해서 ‘개연성’은 어쩔 거냐는 핀잔을 들어봤자, 딱히 달라지지 않을 버릇이며 뒤집어지지도 않을 신앙이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버릴 강물 따위가 아니라고 일갈해 봅니다. 그러고 보면 다들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모두들 충실히 지금을 살아간다고들 믿지만, 그런 지금을 분석해 주는 경험이란 하나 같이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다른 것보다 정말로 지금에 충실한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지금에 머무는 당신들의 의미를 소상히 들어보면 거기엔 언제나, 당신이 요구하는 미래가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진실로 지금에 충실한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외려 사람보다는 사람이 아닌 것들에게나 더욱 어울리는 표현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자꾸만 옆길로 빠지는 생각을 바로잡으려 했던 말을 반복해 봅니다. 시간이란 흘러가버리는 강물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지나갔다고 믿는 과거 또한 결국 현재라 일컫는 지금에 머물며, 아직 오지 않았다는 미래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중첩’된 채로 존재하는 시간이라는 뜻이지요.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말에 희석돼버릴 신앙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지어냈던 문장들이 엮어낸 한 편의 세계에서만큼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가장 분명한 법칙이었습니다.


난 늘 이렇게 문장을 지어왔습니다. 이어서 그런 문장들로 지어낸 한 편의 세계에선,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헛소리조차도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지요. 벌써부터 시간의 구분이 그리 흐릿해서 ‘개연성’은 어쩔 거냐는 핀잔을 들어봤자, 딱히 달라지지 않을 버릇이며 뒤집어지지도 않을 신앙이었습니다. 나 비록 지금을 기록하는 문장을 지었더라도, 그 문장에는 분명한 과거가 존재했었고 요구돼 돌아올 미래가 존재했었습니다. 시간이란 본디 머무는 것, 이른바 존재하는 시간이라는 낭만 같은 추측은:


이미 지어진 문장에서만큼은

가장 믿음직한 진실이었습니다.



_2026.01.17作


*유감(遺憾):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