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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이한 Jan 02. 2024

새해엔 누구나 피트니스를 등록하죠

나의 처절한 운동 실패담

누가 체력을 키워 달랬지 인싸력을 키워 달랬어요 [출처: 유튜브 '오마르의 삶']


다니던 필라테스 센터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겨우 정착할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낙담했다. 이 세상에 많고 많은 필라테스 선생님 중에 나에게 맞는 선생님을 찾기란 왜 이리 어려운지.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마침 2년여간 계속 다니며 정체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던 터. 운동을 하고 나면 뻐근한 근육통이 며칠간은 아릿하게 있어야 하는데 최근엔 그냥 가뿐한 정도였다. 이제 방랑의 길을 떠나야 했다. 필라테스만 하는 것도 이젠 지겨우니 이왕이면 다른 종목으로. 


처음 시도는 필라테스의 카테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발레핏, 발레와 피트니스의 합성어로 발레 동작에 기반한 피트니스를 한다... 는 설명이 어쩐지 혼종스러웠지만 발레는 어렸을 적 잠깐 접해봤기에 친숙했다. 하늘하늘한 치마에 우아한 몸놀림, 유연하게 움직이는 팔과 다리. 무대 위 백조의 호수가 되는 상상도 잠시, 발레 하면 코어 근육이 아니던가. 우아한 몸놀림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근육이 필요했다. 클래식 음악에 맞게 복근 운동을 하고 있노라면 이게 발레인지 극기 훈련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필라테스에서 배웠던 게 있지 이 정도에 굴할쏘냐! 불굴의 의지로 유연성 파트로 넘어가는데 내 다리는 왜 90도밖에 벌어지지 않는 것인지. 몸이 말랑했던 어렸을 때도 다리를 180도로 찢지 못했는데 굳을 대로 굳은 내 다리가 지금에서야 벌어질 리 없었다. 주변의 고인 물들은 다리를 앞으로 찢었다 뒤로 찢었다 난리가 났는데 나는 그 상태에서 뻣뻣한 돌이 되고야 말았다. 결정적으로 내가 '무용'인 발레를 포기하게 된 이유는 '음악'에 맞춰 동작을 해야 했기 때문. 딴딴 따-에 점프를 해야 한다면 나는 딴딴 따다-에 엉거주춤 점프를 하고 있는 꼴이랄까. 우아함을 위해서는 따라가야 할 게 너무나 많았다. 실패. 


다음은 여자라면 근육이지! 라는 마음에 신청했던 근력 트레이닝 수업. 복근 있는 여자가 상여자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나 또한 탄탄한 어깨와 팔다리를 만드는 게 로망이었다. 게다가 보디빌딩 자격증을 소지한 코치 선생님이라니! 선생님의 자신감 넘치는 프로필 사진을 보며 이 수업만 들으면 나도 아마추어 보디빌딩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첫 수업부터 덤벨의 무게가 2킬로라니. 그냥 들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지만 런지 동작만 3가지에 스쾃 4 동작을 2세트씩 반복하며 중량을 치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제자리 뛰기조차 발목이 꺾일까 무서워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코치님은 어리둥절. 나중엔 어깨 위에 덤벨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몸이 힘들어지니 잔꾀가 발동했다. "건강해지려고 운동하지 이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날로 수업은 포기. 1주일간 허벅지 근육통 때문에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며 수업료를 톡톡히 치렀다. 


그래도 아직은 새로운 운동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나에게 딱 맞는 운동, 어딘가에는 있을 거야...


1월 1일을 맞아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등록했다. 20초 고강도 운동을 한 다음 10초를 쉬는 식으로 단시간에 최대의 운동 효과를 일으킨다는 타바타. 그동안 여러 운동 수업만 헤매며 느슨해진 근육을 다시 붙잡아 줄 것만 같았다. 필라테스 동작을 좀 더 단 시간 내에 집중적으로 하는 정도겠지, 하며 호기롭게 운동 센터로 들어서는데 아니, 오전 10시부터 사이키 조명이 웬일인가. 


여기가 무슨 클럽도 아니고...


앞 타임에서 이제 마무리 동작을 하는 선생님의 구호 소리가 문 밖까지 들려왔다. 내향형 인간인 I로서 참을 수 없는 순간이다. '이건 무조건 도망가야 해...! 하지만 아침부터 일찍 왔는데 그냥 왔다 돌아가기엔...' 망설이는 사이 수업 시간이 되었다. "오늘 하루만 체험해 보는 거야."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어서 오세요~ 처음이시죠? (웃음)

... 선생님은 무려 호피 무늬 레깅스를 입고 계셨다. 나는 더욱더 도망가고 싶어졌다. 


그 이후부터는 절망의 연속. 사이키 조명 아래 강렬한 댄스 음악이 나왔다. 수업 장소가 피트니스실이 아니라 무용실이라고 했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건만, 타바타는 댄스 강좌였나? 20초의 몸풀기 동작에서부터 나는 이미 틀려먹었다. 일부러 반 박자씩 엇박을 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 정도면 예술이 아니라 예능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내 갈길을 가련다. 나 홀로의 리듬에 맞춰 쿵쿵 짠짠 동작을 이어갔다. 내 엇박에 옆에 있던 수강생도 따라 엇박을 치고, 나는 어느새 주요 인물이 되어 강사 선생님의 밀착 마크가 이어졌다. 더욱더 부담스러워지고 있었다. 


"오늘은 좀 강도가 약했죠? 다음 시간에는 유산소 운동을 좀 늘려볼게요~"


그 말에 확신을 얻었다. 환불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래, 운동 강도가 너무 높았어. 내 실력보다 조금 높은 정도였다면 좋았을 텐데 저 정도의 텐션은 극복할... 아니, 그래도 사이키 조명은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아. 유튜브 타바타 선생님들은 사이키까진 안 틀었다고! 


역시 사람은 하던 걸 해야 한다고, 내향형 I 인간은 그 길로 필라테스 수업을 신청하러 갔다. 이번엔 부디 잘 적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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