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인 나에게 겨울은 손을 호호 불며 먹던 붕어빵과 호빵, 뜨거운 어묵 국물, 타닥타닥 나무 타는 냄새와 함께 맛있게 익어가던 군고구마, 이런 것들이다. 그러나 거리엔 캐럴 음악이 사라지고 붕어빵 트럭도 찾기 어려워 '붕세권'이라는 말까지 나온 요즘, 겨울을 겨울답게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때가 많아졌다. 2024년이 시작되는 새해 카운트 다운도 시시해져 한밤중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아, 1월 1일이구나.'라고 알아챌 정도로 낭만이 사라졌다. 새해가 되면 또 나이를 먹는다는 게 서글플 뿐. 겨울이면 으레 하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도 먼지만 날리다 당근으로 보내버린 지 오래다.
올해는 유달리 눈이 많이 온다. 날씨가 내 멱살을 잡고 '겨울이야, 겨울이라고!'라고 외치는 것처럼. 눈오리를 만들어 볼 감성은 메말라서 창 밖이나 내다보며 내일 길이 얼지 말기를 바라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래도 눈 내리는 풍경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 겨울이구나.
연탄 나눔 봉사는 내가 겨울을 느끼는 방법 중 하나다. 어느 봉사 단체에서 영등포 쪽방촌에 연탄 나눔 봉사자를 모집하는 공고문을 보고 호기심에 신청해 본 게 시작이었다. 영등포역 6번 출구로 나가서 조금만 걸으면 지상철 아래에 쪽방촌 구역이 넓게 퍼져 있다.
"연탄 한 장이 4킬로 정도 되거든요. 오늘 돌아가시면 팔이랑 허리가 뻐근하실 거예요. 너무 욕심내지 마시고 한 장씩 천천히 옮기세요."
오늘 할 일은 연탄을 어르신들 집 창고에 예쁘게 쌓아놓는 것. 차로 배달하면 금방이겠지만 쪽방촌의 골목은 비좁다. 수레로 실어 나를 수 있는 곳은 수레로 옮기고, 나머지는 사람의 손으로 직접 옮겨야 했다. 연탄을 가득 실은 수레 무게도 만만치 않아서, 사람 4명이 달라붙어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스텝의 인솔에 따라 나머지 사람들은 한 팔 간격으로 길게 줄을 섰다.
"이제 한 장씩 연탄을 옆으로 전달할 거예요. 연탄 놓치지 않게 다들 조심하세요."
처음엔 이 정도 무게야 별 거 아니라 생각했는데도 수십 번을 반복하다 보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평소 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반복되는 동작에 손이 저린 게 느껴졌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연탄을 모두 전달할 수 있었다. 봉사 단체에서 나눠주는 생수 한 병이 그렇게 달게 느껴질 수 없었다.
연탄 봉사의 매력을 알게 되고 그다음 해에는 강남 구룡마을에서 봉사를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산 중턱에 있는 연탄 트럭에서 봉사자들 집 근처의 연탄 창고까지 옮기는 작업이었다. 부모님을 따라온 아이들은 하나씩, 어른들은 두세 장씩 들었다. 그래도 경력자라고 나도 이번에는 연탄 두 장을 들어보았다. 묵직하긴 하지만 거뜬히 들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트럭과 창고 사이를 몇 번 오가다 보니 연탄을 드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산길을 오르내리는 게 더 힘겨웠다. 간격이 멀다 보니 중간중간 사람들이 잡담을 하며 쉬어가는 게 보였다. 슬슬 짜증이 났다.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더 많이 옮겨야 하는데. 극단의 효율을 따지는 습관이 여기에서도 발동되었다.
"트럭을 마을 근처에 두면 되는 걸 왜 멀리 대놨대? 괜히 힘만 빼는 거 같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앞서 가던 사람의 말에 귀가 쫑긋했다. 트럭에 있던 연탄을 내려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사람들이 연탄을 들고 하나하나 나르는 과정이 내가 생각해도 불필요한 과정인 거 같았다. 그 말을 듣던 옆 사람이 나직이 말을 꺼냈다.
"봉사라는 게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때로는 비효율적이라고 느끼는 것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효율성을 따지려고 봉사를 온 건 아니잖아. 불필요하더라도, 번거로워 보여도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부분이 있겠지."
몸이 힘드니 마음마저도 고단해졌던 걸까. 나는 부끄러워졌다. 연탄을 나르러 왔지 작업의 효율성 유무를 따지러 온 게 아니었는데. 불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불평과 비난을 할 필요는 없었다. 즐거운 마음을 애써 망치려 했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태도가 아니었을까.
연탄 봉사는 겨울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난방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쪽방촌에서 여름철 습기를 잡기 위해서는 연탄을 뗄 수밖에 없다. 갑작스러운 재해로 전기나 가스 공급이 끊겼을 때에도 임시방편으로 연탄을 떼기도 한다.
연탄 봉사를 하며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영등포에서도 구룡마을에서도 쪽방촌 머리 위로는 고층 빌딩과 화려한 아파트 단지가 높게 솟아 있었다.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누군가는 이 쪽방에서 지내야 한다는 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동안 부디 이곳에서 편안하길. 연탄 3.65kg의 무게가 따뜻한 온기로 전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