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벌, 나나니벌, 대마도황슭감탕벌
* 주의: 끝부분에 곤충 근접사진이 있습니다. (위에도 있지만요...)
호박벌
벌이 꿀을 얻기 위해 엉덩이만 내민 채 꽃 속으로 파고드는 모습은 참 귀엽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다. 벌들의 몸통은 잔털로 덮여 있어서 꽃가루가 온몸에 덕지덕지 붙는다. 입가에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채 맛있는 과자라도 먹고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귀여움으로 따져 단연 최고는 호박벌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호박벌의 유달리 통통하고 둥근 몸통은 전체가 보드라운 솜털로 덮여 있다. 몸통에 비해 조그마한 날개는 깜찍함을 더한다. 사실 이런 신체구조는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꿀이나 꽃가루를 모아야 하는 벌에게 적합하지 않다. 무거운 몸통에 비해 보잘것없는 날개는 비행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인간이 이것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든 호박벌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열심히 날기 때문에’ 날아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설명을 좋아한다. 나도 그렇다. (실제로는 호박벌의 발달된 가슴근육이 초당 200회가 넘는 날갯짓을 하고 있지만) 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뚱뚱한 몸을 공중에 둥실 띄운 채 꽃들 사이를 바지런히 오가는 모습은 얼마나 위대한가.
2019년 겨울, 회사를 그만두고 목공방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에 처음 한 외부활동은 U2 내한공연을 보러 가는 거였다. 예매는 여름에 미리 해 뒀는데, 당시만 해도 자유인 신분으로 공연장에 갈 줄은 몰랐다. (회사 일 때문에 못 가게 되면 때려치우고서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U2의 <더 조슈아 트리 투어> 오프닝은 The Waterboys의 <The Whole of the Moon>이라는 곡으로 시작한다. 내가 초승달을 바라볼 때 넌 달의 전체 모습을 본다거나, 사람들이 날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넌 그냥 날아버린다는(I spoke about wings, You just flew) 가사의 노래다. 당시 음향 문제로 곡이 재생되지 않았는데, 두어 번 정도 시도하다 ‘인트로 따위 없어도 그냥 하면 된다’는 식의 멘트를 밴드가 외치며 본공연 세트리스트를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그냥 해버리면 되는 거였다. 음향 장비가 고장이 났든, 날개가 작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든 그저 믿고 날아버리면 되는 거다.
어리호박벌
어리호박벌은 호박벌과 이름도, 덩치도 비슷하지만 명확히 구분되는 부분이 있다. 엉덩이가 덜 귀엽다는 것이다. 어리호박벌은 엉덩이를 포함한 배 전체가 털 없이 매끈한 검은색을 띤다. 커다란 선글라스나 헬멧을 쓴 것 같은 얼굴도 특징적이다. 초여름이면 한 장소에서 붕붕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몸집이 크고 날아다니는 소리도 대단해서 처음 마주치면 살짝 겁날 수도 있다. (다른 벌들처럼 독침 역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성격이 매우 유순한 편이다. 공방에 들어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포획해서 밖에 풀어주곤 하는데, 그때도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는다. (물론 손으로 잡지는 않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호박벌은 뒤영벌 종류에 속하고, 대체로 땅 속에 집을 짓는다. 반면에 어리호박벌은 처마나 서까래, 고목 따위에 구멍을 뚫어 집으로 삼는다. 나무를 잘 다루는 벌이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목수를 뜻하는 카펜터 비(carpenter bee)라고 부른다. 나는 동물을 대체로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비버나 다람쥐, 딱따구리 등 동종업계 종사자들에게 조금은 더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어리호박벌은 사회성 곤충인 꿀벌이나 호박벌과는 달리 단독생활을 한다고 했다. 혼자 다니고, 나무를 다룬다는 점에서 우리는 더더욱 비슷한 구석이 있다.
나나니벌
구멍벌과에 속하는 나나니벌은 허리가 잘록하고 매우 가냘프게 생겼다. 하지만 제 몸보다 몇 곱절은 무거움직한 큰 애벌레를 사냥해서 들고 다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신기한 광경이지만, 커다란 애벌레를 들고 비척거리며 낮게 날아다니기에 포착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다리로 애벌레의 몸통을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양 꼭 끌어안고 있다.
이 애벌레는 나나니벌 새끼들을 위한 산지직송, 영양만점 도시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소중히 다룰만하다. 나나니벌은 나방의 유충 등을 산 채로 마비시켜 거기다 알을 낳는데,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이 이것을 먹고 자란다. 요점은 죽이는 게 아니라 마취시켜서 생매장하는 것이다. 먹이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녀석만의 기술이다.
어두운 땅굴 속에서 정신이 돌아왔을 때, 반쯤 남은 제 몸뚱이를 내려다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진다. 애벌레들이 내 살을 뜯어먹는 소리가 하반신(이 있던 곳) 언저리에서 들려오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저 풀밭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포식과 피식의 사슬에서 비껴나 안전한 관찰자로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은 내심 다행인 일이다. 나는 기절한 채 들려가는 나방 유충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다, 나나니벌의 생태에 관해 인터넷을 한참 뒤적거리며 흥미롭게 살펴보고, 괴물이 산채로 인간을 잡아다 알을 까는 영화들을 찾아보기도 하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작업에 몰두한다.
대마도황슭감탕벌
푸른빛이 감도는 짙은 흑색의 벌이 작업 중인 나를 계속해서 스쳐 날아다녔다. 공방 안의 특정 경로를 계속해서 오고 가는 것 같았는데, 대체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았다. 목적지는 공방 한구석에 있는 나무 선반이었다. 소나무 각재를 재활용해서 임시로 만든 것이었는데, 나사못이 들어간 구멍을 틀어막아서 깔끔하게 마감하려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싶어 그냥 뒀었다. 그래서 나사를 박은 자리에 꽤 깊은 구멍이 남아있었는데, 거기에 들락거리고 있었다.
구멍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니 동그랗게 몸이 말린 애벌레가 보인다. 여기에 산란방을 꾸린 모양이다. 벌은 구멍에서 톱밥을 가지고 나와 밖에다 버리기도 하고, 어디서 벌레를 잡아와 물고 들어가기도 한다. 소문을 들었는지 어느새 한 마리가 더 늘어나 기웃거리길래, 이놈들이 자리를 비운 틈에 구멍을 몇 개 더 내주었다. 지름과 깊이를 조금씩 달리해서 취향에 맞는 공간을 선택하게 했다. (이 정도 사이즈는 몇 개라도 넉넉하게 해 줄 여유가 있다) 녀석들의 왕래가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이 시기에는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퇴근했다. 나름 마음에 들었는지 꽤 오랜 기간 동안 부지런히 드나들더니, 구멍들 중 몇 개는 진흙으로 입구를 막아두고 떠났다. 새끼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완성한 것이다. 나는 지금껏 살며 임차인으로서의 이력만을 모아 왔지만, 임대인으로의 첫 데뷔가 이것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열두 개의 구멍 중 총 네 개에 문이 달렸다. 언제쯤 성충이 입구를 허물고 나올지 궁금했는데, 통 소식이 없었다. 해를 넘기고 어느 날 보니, 그중 하나는 내가 못 본 사이에 문을 열고 나온 모양이다. 나머지는 좀 더 기다려 봤지만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노크해도 대답은 없을 테니 살짝 구멍이라도 뚫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냥 뒀다. 기계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나, 아님 겨울에 난방이 너무 박했나. 서툰 임대인의 첫 도전은 25%의 성공만을 거둔 채 마무리됐다. 역시 그쪽으로는 자질이 없는 모양이라 괜스레 미안해졌다. 이들의 생명 주기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혹시 다음에도 찾아오면 내가 잘하는 임차인으로서 맞이해 볼까. 같은 땅 위에 잠시 깃들어 사는 임차인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