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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덕호 Oct 15. 2024

개를 보거나 줍는 일상

검식이, 미란이, 은아, 희나


개를 버리기 좋은 곳


종종 개를 보거나 줍는다. 작업실로 개들이 걸어 들어오기도 하고, 근처에 돌아다니는 개를 발견하기도 한다. 누가 봐도 바깥 생활이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거나 급히 어딘가 가는 중이면 그냥 둔다. 이런 개들은 사람에게 별 관심을 주지도 않는다. 제주도 마을 단위에서는 풀어 키우는 개들이 아직 있어서, 길 잃은 개인줄 알고 졸졸 따라갔는데 어느 집 대문으로 쏙 들어가 버리기도 한다.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재촉하던 게 왜 자꾸 따라오나 싶어서였구나. 


목줄로 보아 주인이 잃어버린 듯하거나, 오래 굶은 모양이면 데려와서 밥을 먹인다. 확실히 사람 손을 탄 개라면 집에 데려가서 씻기고, 인식칩이 있는지 병원에 데려가보고, 주변에 집이 있나 찾아보고, 당근마켓이나 포인핸드 같은 플랫폼에 올려 주인을 수소문한다. 


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들어가 보면 하루에도 수백 마리의 유기동물들이 올라온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구조된 동물들 사진에 국화꽃 모양의 배지가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보호기간이 지나 부득이하게 안락사를 실시하거나(지켜본 바로는 소문처럼 기간이 종료되었다고 바로 시행하지는 않는다) 질병 등으로 자연사한 경우다. 이따금 비슷하게 생긴 새끼들 대여섯 마리가 한꺼번에 올라올 때도 있는데, 이건 떠돌이개가 새끼를 낳은 걸 발견한 경우다. 새끼들은 질병이나 감염에 취약하기 때문인지, 보호소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아 국화꽃이 달리는 경우도 많이 본다. 사실 이 세계도 외모가 중요해서, 귀엽게 생기지 않은 이상 새로운 보호자를 만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냥 돌아다니는 것이 개들의 입장에서는 더 낫겠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어떤 때는 쓰레기나 동물 사체를 뒤지고, 로드킬의 위험에 처하고, 마실 물을 찾아 헤매고, 들판에서 새끼를 낳는 것보다 당장의 안전을 보장받는 편이 나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여태 여기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가급적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공방 근처는 개를 버리기 좋다. 보는 눈도 없고, 차량도 드물어서 그나마 양심의 가책을 덜 받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야밤에 출발하는 차 뒤를 쫓아 달리는 개를 보기도 했다. 개를 버리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개는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이해했을까? 오는 동안 차 안의 미묘한 분위기를 파악하고 의아했을까, 아니면 멀리 놀러 가는 줄 알고 기대했을까. 차에서 내린 뒤 목줄을 풀었을 때 당황했을까? 그래서 뒤돌아서는 주인에게 억척같이 손을 내밀었을까? 사람에게 제 앞발을 내미는 것은 그 와중에 유일하게 떠오른, 확실하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칭찬이나 간식 같은.


작업실에서 만난 개들 중 기억나는 것들이 몇몇 있다. 




검식이


검식이와 가까워지기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 공방 앞 수풀더미에서 처음 나타났는데, 절대 거리를 좁히거나 다가오지 않았다. 목줄은 하고 있었는데 사람을 매우 경계했다. 밥을 부어놓거나 간식을 보여줘도 멀리서 쳐다보기만 하고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분명 이쪽에 관심은 보였다. 안 보이길래 아쉬워했다가 수풀에서 등장했을 때는 반가웠다. 날이 지나면 조금씩 거리가 줄어들었다. 사나흘쯤에 걸쳐 첫 간식을 먹이는 데 성공했다. 그래도 만지거나 잡을 수는 없었다. 까만 털이 빛을 받으면 적갈색으로 빛났다. 발은 (소위 양말이라고 부르는) 끝부분만 흰색이었고, 엎드릴 때 팔짱을 끼듯 앞다리를 서로 교차시키는 게 귀여웠다.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다시 며칠 뒤에는 목줄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격렬하게 저항하다가도 가만히 두면 또 괜찮아졌다. 가까이서 보니 호흡도 가쁘고 몸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았다. 줄을 끌어당기면 난리를 피워대는 통에, 집에 데려가기는커녕 씻기지도 못했다. 결국 구조센터를 불렀는데, 이때도 난리를 피워대서 직원들도 겨우 포획해 갔다. 검진결과를 보니 심장사상충도 있고, 건강상태가 나빴다. 이내 보호소에서 국화꽃이 달렸다. 그래서 많이 후회했다. 




미란이


미란이는 공방 근처에서 만났다. 더운 여름이었는데, 출근길에 일하기가 싫어서 작업실을 지나쳐 계속 운전해 갔다. 그때 수풀 속에서 머리만 내민 개가 이쪽을 보고 있던 것 같았다. 갓길도 없는 도로라서 차를 댈만한 곳까지 가서 주차한 후 걸어 돌아왔다. 


밭에서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는데, 슬쩍 다가가자 꼬리를 다리 사이에 넣고 귀를 뒤로 젖힌 채 한껏 불쌍한 표정을 보였다. 물을 가져오는 걸 깜빡해서 차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인데, 갔다 올 때까지 녀석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장담하지 못했다. 그래서 같이 가자고 했더니 심지어 앞서 걸으며, 가끔 내가 잘 따라오는지 한 번씩 돌아보면서 함께 걸었다. 


물을 꺼내 목을 축이게 하고, 조수석 문을 열었더니 훌쩍 뛰어들었다. (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내 신세를 끼쳐서 상당히 미안하다는 듯한 얼굴이었기에 나도 그러려니 했다. 같이 편의점에 가서 간식을 사 먹었다. 집에 데려가서 씻기고, 진드기를 떼주고, 우리집 개도 소개해줬다. 걱정과는 달리 둘은 사이가 좋았다. 참 영리하고, 잘 생겼고(암컷입니다), 눈치가 빠른 개였다. 어쩌다 보니 4주 정도 같이 지냈는데, 우리집 개까지 덩달아 똑똑해지는 것 같았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 미란이는 새로운 보호자가 제주도까지 와서 상호면접을 보고, 이후에 다시 한 차례 내려와 적응기까지 거친 뒤 모셔갔다. 지금은 새로운 이름을 받아 잘 살고 있다. 




은아와 희나


해가 갓 떨어진 저녁에, 허리라도 좀 펴려고 작업실 밖으로 나갔는데 강아지 두 마리가 쫄쫄거리며 달려온다. 밖으로 나간 딱 그 순간 처음 보는 새까맣고 새하얀 털뭉치들이 반갑게 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은 상당히 비현실적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일단 안아 들고 길가로 나갔지만, 이놈들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목걸이에 리드줄까지 달고 있었기에 당연히 주인이 찾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미 어두웠기에 하루 재운 뒤, 다음날 근처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 일대는 민가가 매우 드물어서 반나절 정도면 1.5km 반경 안의 거의 모든 집을 돌아다닐 수 있다. 강아지들이 그 이상의 거리를 이 상태로 달려왔을 것 같지도 않으니 금세 찾을 것 같았다. 개를 키우고 있는 집들을 중심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이곳의 주택들은 초인종이나 대문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시커먼 아저씨가 무턱대고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것은 상당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므로, 강아지들이 잘 보이게 앞으로 안고 접근했다. (가급적 무해한 미소와 함께) 사람들은 나를 보고 흠칫 경계하면서도, 강아지들을 알아차리면 반가워하고 같이 안타까워했다. 이 동네 개 키우는 집들을 다 안다고 앞장서서 안내해 주시는 분도 있었다. 지금은 영업하지 않는 식당집 할머니는 건강이 조금만 괜찮았어도 한 마리 데려가서 키울 건데, 하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해 줬지만, 이 둘은 끝내 해피엔딩을 맞이하진 못했다. 활발한 것에 비해 몸상태는 좋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누구의 품으로도 돌아가지 못한 채, 그저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짧게 머물렀던 그 순간에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검식이
미란이
(검)은아, 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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