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내를 위한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개장 시간이 한 참 지났는데도 백화점 앞에는 사람들이 긴 줄로 서있었다. 도대체 이 줄 끝에는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기다리는지 궁금했다. 줄 서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모 브랜드의 명품시계에서 신제품이 출시된 날이라고 한다.
이날 언론 기사에서 이 백화점에서 본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그 제품이 매우 인기라 오랜 시간 동안 줄을 서더라도 사서 되팔게 되면 두 배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침에 본 그 줄을 다시 생각해보니 기다림에 보람도 있고 돈도 되는 줄이었다. 게다가 요즘엔 이런 재테크 방법도 있다는 것을 새삼 배우게 된다.
백화점 앞에서 줄을 선 사람들은 그 상품을 사용하기 위해서 혹은 재테크로 돈을 벌기 위해서 줄을 선 사람도 있다. 그들은 모두 그 줄 끝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줄을 선 목적이 확실하다. 이처럼 성공을 원하는 사람은 기다리는 것도, 줄도 잘 서야 한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명품시계를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처럼 목적이 정확해야 한다. 목적이 정확하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목적(目的)과 목표(目標)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목적은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가는 방향이고, 목표는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을 말한다. 즉, 목적이 도달해야 하는 곳이 목표다.[1] 두 단어가 유사어 같지만 분명 다른 단어다. 그러니까 당신이 성공을 원한다면 그것은 목표가 되는 것이고, 목적은 그 성공을 실현하려고 나가는 방향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성공이라는 목표만 있고, 목적은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은 올바른 목표를 먼저 세우고 목적을 중요하게 여긴다. 성공으로 가는 방향이 옳다면, 성공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선택의 문 앞에 서 있게 된다. 대학교 진학만 놓고 보더라도 어느 대학교, 어떤 학과를 선택해야 좋을지 심사숙고한다. 심지어 결혼할 사람을 만나고, 선택할 때는 더 심사숙고한다. (그러나 결혼은 감정에 따른 선택이 더 많은 것 같다. 내가 그랬다!)
사람들이 이렇게 심사숙고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 문을 열었을 때 어떤 상황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멈칫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공을 향한 선택의 문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성공을 향한 길은 결혼과 비슷해서 마치 미지의 세계를 걷는 것 같다. 그래서 아무 문이나 열기가 무서울 때도 있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말이다. 이것은 실패하는 경우 만나게 되는 두려움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성공을 원해서는 안 된다. 실패는 성공과 친구는 아니지만, 늘 함께 따라다닌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 봐라. 당신에게 좋은 친구도 있고, 나쁜 친구도 있다. 그러나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는 계속 만나야 한다. 이렇게 계속 봐야 할 바에는 나쁜 친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게 최선이다. 더구나 당신에게 실패는 어떤 짓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해야 결과가 나오는데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않은가? 최소한 문이라도 열어 봐야 그 뒤에 누가 기다리는지,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당신이 성공하기 위해선 다음 단계의 문을 열어보는 도전이 필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 앞에 잠겨 있는 문을 열어라. 그리고 확인해라. 만약 문 뒤에 작은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면, 당신은 성취감을 얻을 것이다. 혹여나 실패가 기다린다고 해도 받아 드려라. 그것을 받아 드리고 인정하는 순간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다. 복권전문점에서 로또를 사 봐라. 1등보다 꽝이 더 많지 않은 가! 나도 가끔 아내에게 로또를 사다 준다. 이번 주에는 1등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그런 행운은 아직 오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사다 준 로또는 대부분 낙첨이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 1등에 당첨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때마다 우리 부부는 이번에도 좋은 일에 기부했다고 웃으며, 서로를 칭찬해 준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실패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분도 망치지 않는다.
이처럼 일상생활 중에서 당신이 성취감의 문을 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한 가지 들어 본다. 당신은 직장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고 퇴근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집으로 돌아간다. 현관문을 열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가 방긋 웃으며 반겨준다. (물론, 당신의 아내가 안 웃고 기다리는 심각한 상황도 있다.) 반려견도 함께 꼬리를 흔들며 말이다. 이때 당신은 피곤했던 하루의 기분이 어느새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게 바로 당신이 퇴근 후 보상받게 되는 작은 성취감이다. 이때 당신이 한 행동은 고작 현관문을 연 것뿐이다.
사람들은 큰 성공만 원해서 이런 작은 성취감을 무시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러니 성취감의 문이 열렸을 때 그 안에서 무엇이 기다리는지 못 보는 거다. 당신이 어떤 목적을 이루었을 때마다 성취감의 문은 열린다. 조금 전 사례를 보더라도 당신이 퇴근이라는 목적을 이루었을 때, 아내와 반려견이 당신의 피곤함을 사라지게 하고 그 자리에 행복이라는 성취감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은 성공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작은 성취감부터 제대로 느껴야 한다. 당신의 일상에서 가장 작은 것부터 만족할 수 없다면 큰 성공을 하고, 부자가 된다고 한들 뭣이 중요한가? 마음에 만족과 평안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이것이 제대로 된 성공이 아님을 당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아무튼, 내가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언자는 아니지만, 당신 앞에 진짜 성공의 문이 열리기 전까지 그전에 수많은 문들이 존재할 것은 확실하다. 나는 그 문의 이름을 ‘성취감’이라고 부른다. 성취감은 당신이 성공으로 나가는 순간마다 꼭 만나게 되는 문이다. 그러나 성취감의 문이 열리고 만나는 결과는 오직 당신만이 알 수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문을 열어라.
성취감의 문을 열어서 나오는 것은 다행히 나쁜 것이 없다. 내가 성취감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한 말을 기억하라. 당신이 성취감의 문을 열게 되면 오직 만족과, 행복, 기쁨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런 작은 성취감들이 모여야 당신이 목표로 하는 최종 성공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만나는 성취감이 당신에게 가장 큰 성취감 될 것이다.
기독교에서 신(GOD)이 성취감을 이루신 위대한 사건이 있다. 신의 아들로 오신 인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사형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로마시대에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속에서 죽으면서 남긴 마지막 한 마디가 있다. 바로 “다 이루었다”이다. 이 말은 예수께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신의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다. 이때 예수는 가시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손과 발과 몸은 로마 군인들이 찌른 창에 피가 쏟아지고 있는 죽음 앞의 상황이었다. 기독교에서 이 사건은 신이 예수의 죽음을 통해 그를 믿는 자(인간)마다 구원을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아마도 신에게 이보다 더 큰 성취감은 없었을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신의 목적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끝으로 성공을 원하는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 당신이 원하는 성공의 목표가 돈인지, 명예인지 혹은 다른 것인지 자신의 성공 목표에 대한 정확한 분별을 먼저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성취감의 문을 열 때마다 제대로 된 만족을 누리게 될 것이고, 올바른 목적을 향해 더 빨리 갈 수 있다. 더불어 돈만 무조건 많이 벌겠다는 막연한 성공은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것에만 성공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르지 않다. 돈은 당신이 목표로 한 성공을 이루어 냈을 때 따라오는 부속물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이 번 많은 돈을 다스릴 수 있으며, 돈에 종속된 삶을 살지 않게 된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성공까지 도달하려면 몇 개의 도전의 문이 열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는 당신이 원하는 성공의 크기를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추론하기를 당신이 성공에 대한 욕심이 클수록 시간은 오래 걸리고, 문의 숫자는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신이 가야 하는 긴 시간 동안 지치지 않기 위해서 성취감과 동행하여 성공하길 바란다.
<참고 자료>
[1] 국어사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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