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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민준 Sep 27. 2021

시작과 끝의 배려

혼주는 ‘당연히 참석하겠지.’라고 믿었기에

사람은 태어나서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하고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결혼하면 모두가 축하하고 죽음을 맞으면 조의를 한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모이는 대부분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다. 친구 아들 결혼식 모바일 청첩장이 도착했다. 


경조사는 참석해서 축하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어야 하지만, 코로나19 후의 새로운 문화는 과도기 상태다. 코로나19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대면 시대가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기에 사회 체계나 문화도 이에 맞춰 바꿔야 할 것 같다.

  

대표적인 게 경조사(慶弔事)에 부고 문자와 결혼식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면서 계좌번호를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코로나19의 상황을 고려해 참석하지 못하면 마음이라도 전하라고 경조사에 계좌번호를 찍어서 보낸다. 경조사의 계좌번호는 바빠서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위한 혼주나 상주의 배려다. 반면에 어떤 이는 “청첩장이나 부고장에 계좌번호를 찍는 것은 속 보이는 행동이며 부고의 안타까움이 계좌번호를 보는 순간 사라진다.”라며 예의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코로나19를 고려해 계좌번호 보내기는 상대방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가장 현실적 방법이 아닐까. 어쩌면 굳이 봉투에 현금을 넣어서 직접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다. 

  

요즘 2,000명 넘는 확산에 거리두기 4단계가 연장 유지되어 마스크를 하고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대전에 사는 사촌 동생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집합 금지 기간이라 송금 후 전화로 축하하고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했다. 경조사에 참석하지 못한 이는 혼주와 상주를 만나게 되면 미안해지기 마련이다. ‘어때, 코로나로 생긴 문화인데 그냥 송금해도 이해하겠지.’라는 생각은 새로운 문화의 정착 과정이다. 

  

장례식에는 가족들과 친인척 외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는 분위기다. 고인의 운명(殞命)에 마땅히 명복을 빌어야 하지만, 새로운 문화에 맞게 조의금만 송금하는 이의 마음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 참석하지 못하고 조의금만 송금하는 마음에는 미안함과 애도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사정상 참석할 수 없는 축하객과 조문객은 “봉투만 보내면 이익이 아니냐.”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혼주와 상주는 이익을 위해 경조사를 알리는 것은 아니다. 펜데믹 시대에 우리는 현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 참석하지 않고 송금만 하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올해 1·2월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600~1,000여 명 넘게 발생했다. 혼주는 예식을 미룰 수가 없어서 예정된 날짜에 청첩장을 보낼 수밖에 없다. 결혼식에 참석하자니 코로나가 불안하고 불참하자니 지인이 섭섭해할까 걱정이다. 혼주와 상주는 경조사에 참석하면 아군이라 생각하고 불참하면 서운함을 감출 수 없다. 당연히 예식에 참석할 줄 알았던 지인에게서 불참 의사를 밝히면 혼주는 섭섭한 마음이 든다. 혼주는 ‘당연히 참석하겠지.’라고 믿었기에 ‘내가 세상을 잘못 살았나.’라는 미묘한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혼인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축하를 받는 것이 먼저인지 축하하러 오지 않더라도 축의금을 받겠다는 것이 먼저인지 그 목적이 무엇이든 의심할 필요는 없다. 꼭 참석해서 봉투를 전달해야 하는 고정관념과 예의나 도리를 꼭 지켜야 하는 관습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코로나19의 변수에 참석할 수 없다면 전화해서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면 혼주와 상주는 이해해 줄 것이다. 사람이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를 서로 불편하지 않게 새로운 분위기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이나 코로나19 전파 장소가 되면 혼주와 상주는 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계좌번호 보내기는 혼주·상주·하객·조문객 모두 부담 없는 방법이 아닐까. 며칠 전 상주 본인이 모임방에 “코로나19가 극성이니 조문은 오지 말라.”라고 글을 올렸다. 배려해서 통지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조문하지 못하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 친구 참 쓸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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