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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민준 Oct 02. 2021

석자(惜字)의 시린 칼

“우리 엄마 미친 여자 아니야, 엄마 욕하지 마.”라고 소리쳤다

동네에 행색이 남루한 여자가 돌아다녔다. 초등학생인 내가 보아도 그녀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늙어 보였다. 우리는 그녀를 가르켜 “미친 여자”라고 부르며 침을 뱉고 손가락질을 하며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는 놀림과 욕설에 익숙한 듯 아무런 저항 없이 웃기만 하였다. 우리에게 그녀의 별명은 ‘거지·괴물·미친 여자’로 통했다. 그녀는 세탁하지 않은 옷을 여러 겹 걸치고 몸에서는 악취가 났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광대뼈와 앞니가 돌출된 얼굴은 흉측하게 생겼다. 겉으로 드러난 차림은 우리의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했고 사람의 시선과 욕설에서 주어진 처지를 아는 듯했다. 흉물스럽게 태어난 것을 남 탓하지 않고 누구도 원망할 힘조차 없었다. 추우면 햇살을 찾고 더우면 그늘을 찾는 것 이외 그 이상의 욕심조차 없어 보였다. 


그녀는 주는 대로 받고 적게 얻어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부족해도 스스로 만족하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디서 먹고 자는지 알 수 없던 그녀가 가끔 동네에 나타나면 어른조차 욕하며 재수 없다고 비아냥 거렸다. 아름다워야 할 그녀의 일생은 수모를 당하며 측은한 삶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귀 막고·입 막고·보고도 못 본 척 평생 그렇게 세상의 시집살이에 시달렸다. 그녀는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고 혼자 외롭게 살았다. 그녀는 행복이란 단어의 뜻을 알기나 할까. 평범한 삶조차 허용하지 않는 세상에 그녀의 응어리는 커져만 갔다. 

  

중학교 때 그녀가 동네에 나타나자 어떤 아주머니가 “세상에 저걸 어쩌나 불쌍해서 어떡해, 어떤 놈이 장난질을 쯧쯧 몹쓸 것,”라고 혀를 찼다. 유년 시절에 보았던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배는 볼록해져 힘들게 걸었다. 그녀의 몸은 출산을 앞둔 임부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외모는 형편없어도 아기를 품은 몸은 연꽃 봉오리 같았다. 진흙탕에서 자라는 연꽃의 씨앗은 늘 꿈을 꾼다. 위대하고 평범한 삶은 아니더라도 엄마를 보호하는 본능적인 사랑이 자라고 있다. 그녀도 임신이라는 걸 아는지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배를 받치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모성애가 그녀를 웃는 얼굴로 변화시켰다. 

  

군부대에서 말년 휴가 나온 며칠째 되던 날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그녀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그녀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고 아들도 엄마와 차림새가 다르지 않았다. 지나가던 어떤 사내가 “미친 여자가 아이를 어떻게 낳았지!”라고 말하자, 아이가 달려들어 사내 손목을 물었다. “우리 엄마 미친 여자 아니야, 엄마 욕하지 마.”라고 소리쳤다. 사내가 아이를 손으로 밀쳐내 넘어지고 그녀가 달려가 아들을 감싸 안았다. 말을 할 줄도 모르고 수화도 모르던 그녀가 두 손으로 용서를 빌었다. 아들이 벌떡 일어나 엄마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애를 썼다. 사내는 모자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는 말을 스스럼없이 쏟아냈다. 참다못한 나는 그에게 그만하라고 소리치며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아들은 청년으로 성장했다. 아들은 엄마 흉보는 사람에게 욕하지 말라며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 싸웠다. 삶의 악조건에 맞서 싸우며 엄마를 지키려고 아들은 노심초사했다. 모자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우리에게는 무시할 권리가 없다. 도움과 사랑을 받지 못했던 그 시절 사회는 복지 정책이 미비해 가난으로 방치된 사람이 더러 있었다.

  

이웃이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주면 좋겠지만, 이웃 모두가 외면해도 두말하지 않고 삶의 동반자는 서로 의지한다. 모자(母字)는 서로 속속들이 진심으로 이해하고 의지하며 외롭게 살아간다. 서로 마주 보기만 해도 기쁘고 행복해하며 일생을 단둘이 살아가는 모자의 정은 진흙에서 핀 연꽃 같았다. 모자는 서로 사랑하며 제각기 하늘이 준 힘을 다하여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며 엄마는 아들을, 아들은 엄마를 두 팔 벌려 천륜으로 품는다. 기구한 삶을 살면서 모자의 사랑은 더욱더 값지고 따뜻한 동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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