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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불타는 청춘, 우리 제발 사랑하게 해 주세요!

# 나이스한 교사인 척, 속으론 욱 ep.1

by 사랑의 생존자



※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에세이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여러 사례를 종합해 재구성한 가상의 인물입니다.




“선생님, 태웅이한테 소연이랑 헤어지라고 말해주시면 안 될까요?”

퇴근 시간만 기다리던 금요일 오후,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열다섯, 불붙은 청춘의 연애에

괜히 감 놔라 배 놔라 했다간,

불똥은 고스란히 내 몫이거늘.

게다가 사랑이란 게

원래 말릴수록 더 타오르는 법이 아닌가.

로미오와 줄리엣, 걔들도 중학생이었다.


무엇보다도,

금요일 퇴근 시간에 전화하는 건,

법으로 금지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고소감이다, 고소감.


은… 물론 속으로만 말했다.

나는 나이스하고 다정한 교사니까.

수화기를 다시 들고, 최대한 나긋한 목소리로 답한다.


“예, 어머님. 태웅이가 소연이랑 사귀는데 무슨 문제라도?”


“얘가요, 선생님 말은 잘 들어요. 제 말은 안 들어도…”


목소리에 절박함까지 묻어 있다.

중학생 연애라면 보통은 여학생 부모가 불안해하는 법인데, 아들 둔 엄마가 이토록 불안해하다니.


흠, 이런 경우는 십중팔구—

“혹시 태웅이 성적이 떨어졌나요?”


잠시의 정적.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책상에 오래 앉질 못해요. 어딘가 붕 떠 있는 것 같고.”


빙고.

교직 10년 차, 이 정도 눈치는 다 생긴다.

나는 재빨리 모니터를 켜 태웅이의 성적표를 훑었다.

1학기엔 전부 A, 2학기엔 B가 한 개.


성적이 조금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연애 탓이라 하기엔 억울할 수도 있겠다.

좋다, 태웅아.

이번만큼은 네 편을 들어주마.


“걱정할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괜히 이런 문제로 건드리면 마음부터 닫을 수 있으니, 조금만 더 지켜봐 주세요.”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태웅이 엄마의 찝찝한 기색이 남은 목소리를 뒤로한 채 전화를 끊었다. 믿을 만한 정보통에 따르면 —경력직 교사라면 정보통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최근 태웅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짝사랑한 소연이에게 몇 달을 공들인 끝에 드디어 사귀게 된 참이다.


태웅이에겐 그야말로 눈부신 청춘극의 시작이니,

문제집이 지금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하지만….

엄마 입장에선, 이건 호러 스릴러가 따로 없다.

늘 말 잘 듣던 순한 아들이 여자애 하나에 정신 팔려 공부는 소홀해지고, 말대꾸까지 따박따박 늘어가니 겁이 날 만도 하다.


나는 숨을 한번 고르고 휴대폰을 들어 선심 쓰듯 문자를 보냈다. '크게 걱정할 건 아니니 마음 놓으시라'고.


아, 나는 왜 이리도 다정한 걸까.

문자 한 줄 보냈을 뿐인데, 세상을 구한 기분이 드니,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안타깝게도, 나의 다정함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태웅이 엄마의 불안은 여전했다. 2학기 초반에 시작된 연락은 학기 말까지 주에 한 번꼴로, 꼬박꼬박 이어졌다.


“태웅이가 연애를 하더니 핸드폰만 붙잡고 있어요.”

“태웅이가 연애를 하더니 말대꾸가 전보다 심해졌어요.”

“태웅이가 연애를 하더니 이상한 영상을 보는 것 같아요.”


나는 매번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겨우 눌러 삼켰다.


—연애는 연락이 9할입니다. 그거 못 배워두면 나중에 고생해요.

—곧 아예 입을 닫아버려서, 그 말대꾸조차 그리워지실 겁니다.

—야한 영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 겁니다. 제 작고 소중한 이번 달 월급을 걸죠.

하지만 그 말을 꺼냈다간 태웅이 어머니가 뒷목 잡고 쓰러질 게 뻔했으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언제나 같았다.


“많이 속상하시죠. 제가 더 잘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건 어김없이 깊은 태웅이 엄마의 깊은 한숨소리뿐.




교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태웅이 엄마 같은 유형은 낯설지 않다. 아들의 공부, 친구, 연애까지 빠짐없이 관리하는 엄마. 분명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사랑도 지나치면 결국 독이 된다.


과잉 사랑의 결과는?

엄마 말을 고분고분 들으면 마마보이,

등을 지면 불효자.

둘 다 비극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소위 ‘괜찮은’ 남학생들 뒤에는 십중팔구 태웅이 엄마 같은 이들이 있다. 그런 걸 보고 있자면, 내 머릿속은 쓸데없는 상상으로 바빠진다.


생각해 보자.

이런 상황이라면, 십수 년 뒤 결혼 시장에서 소위 말해 조건 좋은 남자들은 마마보이 거나, 불효자일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이제 밸런스 게임이다.

남편감으로 마마보이냐, 불효자냐.


마마보이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니,

차라리 불효자가 낫다고 치자.

하지만 불효자가 아내에게 다정할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처음엔 잘해주는 듯 보여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편해지면 엄마에게 하듯 아내에게도 모난 구석을 드러낼 게 뻔하다.


잠깐!

거기서 끝이 아니다.

결혼하면 덤으로 따라오는 시어머니까지 있다.

그리고 그 시어머니가 태웅이 엄마라면?

매일같이 아들의 문제로 전화하는 시어머니라…

아… 그건, 진짜 곤란한데.


“으아아아앙—”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찰나, 돌도 안 된 아이 울음에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아이를 달래며 생각해 보니, 이거 남 일이 아니다.

나는 우리 아들을 마마보이도, 불효자도 아닌 괜찮은 남편감으로 키울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고뇌가 깊어지는 밤이었다.



얼마 뒤, 태웅이는 결국 소연이와 헤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차였다.


들리는 말로는, 태웅이 엄마가 기어이 소연이에게 전화를 직접 걸었다 한다.

“중학생에게 연애는 이르지 않냐”며.


성실하기까지 한 태웅이 엄마의 그 집념엔

혀를 차야 하나, 박수를 쳐야 하나.


똑 부러지는 소연이는 “니는 아직도 엄마 말 듣냐”는 한마디를 남기고 단칼에 돌아섰다.

세기의 사랑에 실패한 태웅이는 친구들 앞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부렸다.


“김소연, 내가 찬 거라고!!!”


물론 녀석의 허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곧 소연이의 절친들이 우르르 몰려와 “차인 건 너잖아!”를 외치며 몰아세웠고, 분을 못 이긴 태웅이는 교실 한쪽에 있던 애꿎은 우산꽂이를 발로 차버렸다.



산산조각 난 플라스틱 우산꽂이.

소연이는 못 찼으니, 대신 우산꽂이라도 찬 셈이었다.

그래도 결국은, 차긴 찼다.


교실에 흩어진 플라스틱 조각만큼이나 태웅이의 마음도 산산이 부서졌을 테지만, 담임교사로서 이런 행패를 눈감아 줄 수는 없었다. 아이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나는 낮은 목소리로 태웅이에게 읊조렸다.

“뭐 하는 짓이야.”

평소 실실 웃기만 하던 담임의 서늘한 목소리에 순간, 교실 공기가 얼어붙었고, 아이들은 재빨리 흩어졌다. 혼자 남은 태웅이도 눈빛이 흔들렸지만, 그 또래 남자애들이 으레 그렇듯 부러 센 척하며 대답했다.


“아, 물어주면 될 거 아니에요!”


나는 속으로 한숨을 길게 쉬었다.

하여튼,

애건, 어른이건 좋게 말하면 알아들질 못하지.

단전에 힘을 모아 교실 천장을 울리듯 외쳤다.


“이거 지금 당장 고쳐와!!!!!!”


순간, 하얗게 얼굴이 질린 태웅이는 허겁지겁 부서진 우산꽂이 조각들을 쓰레받기에 쓸어 담아갔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교실을 나가는 태웅이를 나는 끝까지 째려봐주었다. 나이스한 교사답게.




다음 날 아침.

책상 위엔 말끔히 복원된 우산꽂이가 놓여 있었다. 순간접착제로 조각 하나하나를 이어 붙인 솜씨.

웬만한 박물관 유물 복원가 못지않았다.


오호라.

서태웅, 새로운 재능 발견.

교무실 문 앞에서 쭈뼛거리던 태웅이를 불렀다.


“잘못했냐?”


“…네.”


“다시는 그러지 마라. 기물 파손은 규칙대로 복도 청소 세 번.”


“…네.”


작게 대답하고 돌아서는 녀석의 뒷모습이 어쩐지 짠하다. 여자친구한테 차이고, 친구들에게 놀림당하고, 담임에게 혼나 잔소리까지 듣고, 밤새 우산꽂이 조각 맞추느라 잠도 못 잔 아이. 사춘기 소년에게는 조금 가혹한 하루였다.


문득, 중학교 때 짝사랑하던 오빠가 다른 반 애와 손잡고 가는 걸 보 열받아, 방 안에서 먹던 콜라 캔을 집어던졌다가 엄마한테 등짝을 세차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슬프지만, 태웅아

이런 게 인생이란다.



한 달 뒤.

태웅이와 소연이가 다시 만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연이한테 며칠이고 빌고 또 빌더니, 중학생 주제에 꽃다발까지 바쳤단다.


“안녕하십니까~”


복도에서 건들거리며 인사하는 태웅이.

중2병은 더 짙어졌지만, 얼굴은 오히려 환하다.

재결합의 힘일 테지.


나는 고개만 까딱, 근엄한 척 인사를 받고

돌아서며 씨익 웃었다.


짜식.

그러니까—

엄마 말 안 듣고

다시 소연이랑 사귄다는 거지.

장하다!


모든 어머니에겐 서글픈 이야기겠지만,

엄마 말을 조금씩 안 듣기 시작하는 것.

그게 한 남자가 제 몫의 어른으로 자라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엄마 말을 고분고분 들으면 마마보이가 되고,

매번 반기를 들면 불효자가 된다.

둘 다 아닌 길은 결국—

엄마 말을 슬슬 흘려듣는 것.

열다섯, 한참 사춘기,

지금부터 이렇게 조금씩 속을 썩여야 한다.


“아, 이 애는 내 뜻대로 안 되는구나.”


그 좌절과 체념이 쌓여야 엄마도 비로소 손을 놓는다. 그렇게 서로를 놓아야 아이도 독립을 하고, 부모도 겨우 어른이 된다.


사실 이건 남 얘기가 아니다. 태웅이 엄마의 불안은 남 일이 아니었다. 내 아들이 크면, 나도 똑같아질 게 뻔하다.


아이가 내 뜻대로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

그 밑바닥엔 자식의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진짜 행복을 위해서는 내 품에서 멀어지도록 서서히 아이를 놓아야 한다.


집에 돌아와, 8개월짜리 아들을 품에 안고 슬며시 예행연습을 해본다.


“아들, 너는 엄마 말 듣지 마.”


… 이건 좀 아닌가.

방긋거리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말을 고쳐 다시 중얼거린다.


“엄마 말 조금만, 조금만… 들어.”

그래, 아들. ‘조금만’이다.

부모로서 내 그릇이란 게 간장 종지만 하니

그만한 타협이 최선일 테다.

그러면 너도, 나도 어쩌면

괜찮은 시어머니, 남편감이 될 수도 있지 않겠니.


…근데 지금 똥 싼 거니?

하여간,

앞날 창창한 사춘기 준비생 씨.

일단 기저귀부터 갈자.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한동안 브런치에 뜸했지요.

그간에 읽고 싶은 소설책도 실컷 읽고,

낮잠도 실컷 자고, 잘 쉬다 왔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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