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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없는 남자] 7 로베르트 무질

3권 418페이지

by YT

일상의 인물이 정적인 전형(典型)으로 그려짐에 비해 클라리세는 입체적 인물이고, 변화하는 동적 인물로 그려진다. 창조적 직업(음악가, 화가)을 가진 발터조차 현실과 실체의 벽에 막혀 자신의 한계를 벋어나지 못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클라리세는 현실을 넘어 ‘생산’에 도달하는 ‘의지’를 만든다. 의지는 일상에서의 감성을 재료로 민감성으로 버무려진 환상의 길을 통해 그녀 안에서 축적된다. 클라리세는 니체 철학을 몸으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처음에는 발터의 창조성에서 영웅 혹은, 위버멘쉬의 모습을 보려 하지만 3권에 이르러 그녀는 스스로 ‘차라투스트라’가 되고자 한다. 변화된 ‘라인가스트’는 클라리세가 한때 경도한 가짜 차라투스트라에 불과하다. 라인가스트는 클라리세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담을 수 없고, 결국 그녀에게서 도망가게 될 것이다. ‘모스부르거’의 목수라는 직업은 그를 ‘예수’로 상상하게 만든다. 곧, 의지의 화신인 클라리세는 그를 만날 것이다. 클라리세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일까? 아니다. 내 생각에 그녀는 신이 될 것 같다. 모두의 의지를 하나로 모으는 신이 될 것 같다. 의지의 클라리세가 경계를 서서히 넘어가는 주인공 울리히와 나중에 어떻게 조우하게 될까? 무질의 무게는 상대적으로 울리히의 변화에 있지만, 니체 철학은 클라리세를 통해 울리히와 만날 것이다.

니체에게서 의지는 일반적인 욕망에서 비롯되는 지향성의 개념으로, 나에게는 ‘에너지’로 느껴진다. 이런 나의 미진한 의지 이해를 보완하는 것이 무질이 클라리세를 통해 해설한 의지다. 민감함과 감성으로 포착된 세상은 환상을 통해 의지로 드러난다고 무질은 이야기한다. 세상의 모든 의지는 환상의 형태로 발현된다. 그러므로 보르헤스의 환상과 마르케스의 역사적 판타지는 ‘의지’의 발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런 환상으로 변형된 의지는 아름답기만 한 미적 영역에 머물 뿐이다. 혹시 개인의 내부로 들어와 환각 상태나 정신병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여전히 밖으로 나와 실제 사회와 섞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의지 철학자는 개별 인식이 가지는 적극성(내 속에서 조합되는 세계)을 전제로 삼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막연한 기술의 발전(AI 등)에 기대를 품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의 이해에서 의지/환상은 여전히 실체와 분리되어 있다. 이런 분리의 해답이 울리히에게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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