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글을 쓰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 어떻게든 글을 써야만 충만함을 느끼는 그런 종류. 이들의 공통점은 뭐라도 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는 독자와 같은 시공간에 있지 않고 독자는 언제나 글을 쓸 당시의 작가와 독대한다. 그러나 글을 매개로 작가와 독자는 과거로부터 현재, 현재로부터 미래로의 방향성을 만들며 진전한다. 현대 비평론에서는 독자의 주도적인 텍스트 의미 재구성이 강조된다. 글이라는 미디어의 본질적 특징은 어쨌든 누군가에게 말을 전한다는 것이다. 어떤 논조로 건네지든 그것은 문서화된 말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글을 쓰는 것은 오직 기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세상에 의견을 던지기 위해서라는 입장을 견지하면 글을 작가의 일방적인 연설이 아니라 누구일지 모르는 미래의 독자와의 대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안해질 것이다.
호모 스크립투스Homo Scriptus와 그 외를 가르는 글 쓰는 사람들 안의 정열은 무엇인지 나는 항상 궁금해했다. 어느 모임을 가든 창작을 하는 사람과 창작을 보는 사람들로 그룹은 나뉜다(교집합도 물론 존재한다). 브런치를 쓰는 사람들도 어디에든지 글을 쓰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글쓰기란 현대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봐서는 그다지 생산적인 일이 아니다. 누가 진솔하게 글 좀 쓴다고 월급만큼의 돈을 매월 지불해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이다지도 텍스트를 생산하는 것일까. 그것이 사람들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살고 싶으니까 쓴다.
언제나 텍스트는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텍스트는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였다. 나는 때로는 상한 물을 토하듯이 글을 썼고 때로는 낭만적인 감상에 취해 대책 없이 사랑의 단어들을 모아 나열했다. 말도 안 되는 스토리의 소설을 써보기도 했고 어디에나 있는 상투적인 말을 적기도 했다. 새로운 텍스트가 있으면 쓰지도 않을 예쁜 것들을 모으듯 주의 깊게 살핀 낱말을 하나씩 고이 주워 담아뒀다가 기억 저편에서 꺼내 썼다. 출처도 모르는 말들은 내 ‘글쓰기 세계’의 밤하늘에 박힌 별들처럼 아무런 이름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떠올라 유성우로 내려왔다. 갑자기 차오르는 어떠한 감상들에 젖어, 그것을 쉬이 떠내려 보내기 아까웠으므로 나는 핸드폰에 메모 앱을 네 개쯤 다운받았다.
아마 열 살 때 글을 쓰던 사람들은 여든이 되어서도 글을 쓸 것이다. 그게 어디가 되었든지 간에 불쑥 고개를 드밀고 찾아오는 ’적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쓰는 인간들이 쓰는 행위로 하여금 살아 있다는 감각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가 나를 재구성하고 동시에 나의 존재를 공고히 해준다. 글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들은 영혼의 생존 수단으로써 글을 향유한다.
나 또한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인터넷 세상의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다. 나를 아는 친구들도 이 글을 읽겠지만 매번 나는 그런 창피함을 무릅쓰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어떨 때는 아무 데도 공개하지 않은 글로 거울 속의 나 자신에게 중얼거린다. 너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상상을 했다. 이런 단어를 썼고 이런 문장 배열을 했다. 그렇게 글로써 나를 바라볼 수 있다. 또 아무 데나 글을 올리고 군중 속에서 외친다. 그게 재미있다. 어쩔 수 없다. 나도 내가 상술한 종류의 인간이므로.
글 쓰는 것의 위대함은 다른 누구 아닌 글 쓰는 자 자신의 삶 속에서 조명된다. 쓰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주관적 일반화는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멜랑꼴리아들이라는 것이다. 말을 떠올리는 뇌와 옮겨 적는 손의 경주 사이에서 끊임없이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되짚어본다. 그 과정은 시간적 고찰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에 쓰는 인간은 누구보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사실 이건 편하게 살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사고방식이다(오직 현재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리라). 그러나 호모 스크립투스는 민망함과 번거로움을 감수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쓰는 사람들이 생명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은 실제로 그들의 글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순환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할 테다.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해도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