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며 일을 그만두었다. 서른셋,딴에는 임신과 출산에최적의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자녀 계획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인생의 과업을 끝내야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나와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일과 임신을 병행하는 것은자신이 없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경단녀에 대한 두려움도 그때는 없었다.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전업주부가 되어임신을 준비한 지3개월 만에 첫째가 찾아왔다. 역시 계획대로 착착이었다.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을 때야."
육아 선배들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다. 육아는 내가 경험해본 최대의 낯섦이었다. 뭐든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던 내가 작고유약한 존재에게 온종일 쩔쩔매는꼴이란.
모성, 엄마로 느끼는 행복과는 별개로 하나의 독립된 자아로서는매일이좌절이었다. 육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시시때때로 서럽게 울면서 내가 이렇게 못하는 것이 있었나 자문했다.
자존감은 바닥났고, 얼마 못가백기를 들었다.이제까지의 나처럼 육아도 담담하게 잘 해낼 것이라자신했던 건 오만이었다.
육아는 참을 수 없는,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낯섦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연년생 둘째가 생기고나의 하루는더 팍팍해졌지만, 시간이 흐른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에 가면서드디어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게 되었다. 기본적인 욕구 충족이 어느 정도가능해진 것이다. 꿈에 그리던 시간을 만끽하던 어느 날, 남편의 지인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그럼 이제 집에서 뭐하세요?"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좀 쉬어야죠."라고 간단히 답하고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옮겨갔다. 그가 무례하다는 생각을 놓을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떠들었지만 나만 느끼는 화끈거림. 잔상은 꽤 오래 이어졌고,나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받았다.
가끔 그날을 곱씹어본다. 그때 나는 왜 당당하지 못했을까. 얼굴을 붉힌 이유가 단순한 불쾌감 때문이었을까? 나 역시 전업주부라는 틀 속에 스스로를 매몰시켰음을 인지하고 의식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육아가 힘든 것은 인정하지만 전업맘은 매력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 말과 시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