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후 마음은 여전히 공중에 둥둥 떠있다. 겉보기엔 정리가 잘된 것 같은 살림살이, 1센치 남짓 얇은 문 하나 열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어때요? 이렇게 하니괜찮죠?^^"
정리엔 자신있다는 표정의 이삿짐센터 이모님은 손이 닿지 않는 제일 윗칸에 예쁜 커피잔을 일렬로 배치했고,나머지 그릇과 주방도구는 일관성 없이채워넣었다.
결국 정리는 살림하는 사람 몫이라지만 문을 열 때마다 찌푸려지는 미간, 대신 닫으면 말끔했다.
그것을 꺼내어 내 방식대로 배치할 열정까진 없으니 다행인걸까? 유독 주방 살림에만 이런 마인드가 적용되는 건 요리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일까란 생각도 해본다. 짐을 나에게 맞출 것인가 내가 짐에 맞춰 살 것인가의 문제는 조금 더 지켜보기로.
아이들이 새 유치원으로 옮기고 첫 상담을 위해 가져온 종이에 '가훈은 무엇인가요?'란 질문이 있었다. '가훈'이라.. 오랜만에 듣는 단어다. 더듬어보니 어릴 적에도 가훈을 써오라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무엇이었는지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대충 적어냈나보다. 아니면 그 문구가 나의 삶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았을 수도 있고.
"오빠 우리집 가훈이 뭐야? 써내야 돼. 뭐할까?"
"몸 튼튼 마음 튼튼"
오... 간결하지만 마음에 쏙 들어오는 문구다.
며칠 전 코로나 확진으로 혼자 격리를 떠났던 남편의 심정을 반영한 듯했다. 더불어 우리 부부의 육아 철학과도 잘 어울리는 문구다. 유치원 덕분에 가훈을 정했다. 이 가훈은 부디 아이들 마음에 오래 남아 잊지 않고 떠올릴 수 있었으면.
둘째 아이가 요즘 꽂혀있는 노래가 있다. 유치원에서 배운 '모두 다 꽃이야' 라는 국악 동요인데, 우리집에서는 하원 후 수십분간 반복재생된다. 아이는 자신만의 무대를 위해 때론 한복으로 갈아입기도 한다. 노래에 맞추어 사뿐사뿐, 팔도 휘휘 저어가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엄마에겐 무엇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가사를 음미하며 감상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울컥하면 ,
"엄마 이 노래 정말 좋은 것 같아. 가사가 너무 감동적이야~"
라고 말하지만둘째는 추던 춤을 계속 춘다.
"너희들은 모르겠지? 이 가사는 말이야~
어른이 들었을 때 더 감동적으로 느껴질거야~"
첫째는"그래?" 한마디 하고 하던 일을 계속 한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