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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크게 들을 것

갤럭시 익스프레스

by 비둘기 Jan 15. 2025

우주로 가는 급행열차가 나타났다. 그 이름은 바로 '갤럭시 익스프레스'. 그들은 온 우주에 메시지를 보낸다. 오직 기타, 베이스, 드럼 그리고 목소리 만으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밴드 이름의 뜻을 직접 밝힌 적이 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우주를 고속으로 항해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우주를 헤집어 놓겠다는 격한 뜻은 아닙니다. 음악을 만드는 우리도,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모두 자기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음악이 각자의 우주 안에서 유영하길 바랍니다.”


 

우주가 너무 멀어서였을까?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음악은 시끄럽다. 강렬하다. 거칠다.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의 울음처럼 원초적이고 폭발적이다. 그들의 첫 앨범명이자 오프닝 곡 ‘Noise on fire’만 들어봐도 결코 유영과는 어울리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마 그들은 '유영'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다 꺼져버려(다 꺼져버려)

모두 죽어버려(모두 죽어버려)

오늘 밤 모든 게 끝날 테니까     

다 부숴버려 (다 부숴버려)

이젠 필요 없어 (이젠 필요 없어)

어차피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숨 막혔던 날들 이젠 굿바이

<Bye Bye Planet – 갤럭시 익스프레스>     


유영하길 바란다고? 파도에 휩쓸려가는 걸 바라는 건 아니고?


          

로큰롤 스타라기엔 조금 앳되지만, 미소년이라기엔 눈이 퀭한 기타 박종현. 정통 록밴드의 포스를 온몸으로 풍기지만, 선글라스만 벗으면 순박한 시골 청년으로 변신하는 베이스 이주현. 드럼을 치지 않았다면 사람을 쳤을 수도 있다고 자백하는 드럼 김희권. 이 세 사람은 부평 모텔촌에 있는 라이브 클럽 ‘루비살롱’을 본거지로 삼는다. 루비살롱은 몰락한 라이브 클럽이었다. 아니. 애초에 부흥한 적이 없었다. 관객이라곤 공연을 대기 중인 밴드들 뿐인 이 척박한 곳에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미친듯이 노래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했던 갤럭시 익스프레스. 그들은 로큰롤 마니아들에게 '라이브가 죽이는 밴드'로 입소문을 탄다.




내가 고등학생 때, ‘크라잉넛’, ‘갤럭시 익스프레스’, ‘옐로우 몬스터즈’는 ‘다이너마이트 투어’라는 타이틀로 전국 투어를 했다. 감사하게도 그들은 내 고향 광주를 버리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밴드가 하나도 둘도 아닌 셋씩이나 온다니. 반드시 가야 했다. 쉬는 시간마다 함께 갈 동지를 찾아 나섰다. 친구들이 그나마 알만한 크라잉넛을 미끼로 던졌다.


-크라잉넛 보러 갈 사람?

몇 명의 친구가 관심을 보였다.

“말 달리자 크라잉넛?”

“룩셈부르크도 있잖아. 같이 갈까? 어디서 하냐?”

의외로 친구들은 긍정적이었다.

-예술의 거리에서 해. 너희 갈 거지?

“그래. 같이 가자. ‘말 달리자’도 들어보고.”

-그럼 집에 가서 예매해. 2만 원이야.”

“뭐? 돈 내는 거였어? 2만 원이나? 그럼 안 가지.”

“공짜 아니면 안 가지. 나는 크라잉넛 노래 ‘말 달리자’랑 ‘룩셈부르크’ 밖에 몰라.”

-야! 크라잉넛만 오는 게 아니라 옐로우 몬스터즈, 갤럭시 익스프레스도 오는 거야. 너 크라잉넛 단독 공연 티켓이 얼마인 줄 알아? 5만 원이야. 5만 원. 이건 완전 공짜인 거라니까?

“옐로우 몬스터즈, 갤럭시 익스프레스? 걔들은 누구야. 야! 아무튼 안가!”     



결국 나홀로 ‘다이너마이트 투어’를 떠났다. 공연장은 광주의 자랑스러운 라이브 클럽 ‘네버 마인드’. (‘네버 마인드’도 할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네버 마인드’에 대한 글도 쓰고싶다) 그곳에서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처음 만났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등장하자마자 말 한마디 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세 곡을 연달아 몰아쳤다. ‘이게 말로만 듣던 탈진 로큰롤이구나’. 그들은 가만히 서있기도 아슬아슬한 좁은 무대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목마 타고 기타를 연주하고, 드럼 위로 다이빙했다. 그 괴이한 광경을 본 순간 혼자 왔다는 부끄러움은 사라졌다. 퍼포먼스만큼이나 사운드도 좋았다. 혼이 담긴 기타와 베이스 소리는 귀에 그대로 때려 박혔다. 그 굉음을 뚫고 터져 나오는 그들의 목소리도 로큰롤 그 자체였다. 나도 함께 포효했다.

     

난 감동을 원해! 진짜 너를 원해!

난 진실을 원해! 진짜 너를 원해!

<진짜 너를 원해 - 갤럭시 익스프레스>     



크라잉넛의 한경록은 ‘다이너마이트 투어 출사의 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음원이나 영상과 라이브의 차이는 포르노와 실제의 차이라고 할까요? 표현이 좀 격하지만 그 이상의 감동을 청춘들과 교감하고 싶습니다. 이 공연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고등학교 2학년 소년은 생각했다.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구나….’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단지 강렬함만 가진 밴드가 아니다. 이들은 부드럽고 따뜻한 음악도 들려줄 줄 안다. 해리포터를 가장 미워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끝까지 해리포터를 지키고자 했던 스네이프 교수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처럼, 늘 시끄러운 줄만 알았던 그들이 건네는 잔잔한 위로는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언제나 지나고 나면

좋았을 테니까

다 괜찮을 거야     

이 순간마저도

때론 그리울 거야

항상 그랬었잖아

<지나고 나면 언제나 좋았어 – 갤럭시 익스프레스> 



다시 상처를 입고 변해가면서도

내가 여기 있다고 나는 살아있다고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할 수 없는 이 순간을 위해

<순간을 위해 – 갤럭시 익스프레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무대를 한 번 보면 쉽게 헤어나오기 힘들다. 그들은 수많은 로큰롤 매니아들을 사로잡는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점점 더 큰 무대로 뻗어나갔다. 처음에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서브 무대에 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인무대를 장악했다. 2009년에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음악상을 수상하며 음악적 성과도 인정받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로큰롤 스타가 된 것이다. 그들은 KBS까지 진출한다. <뮤직뱅크> 최초로 MR 없이 100% 라이브 공연하는 밴드가 되었다. 역사적인 그 순간을 함께하고 싶었지만,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생각에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에 가서 컴퓨터를 켰다. <뮤직뱅크> 다시보기를 봤다.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나오는 부분을 찾았다. 역사적인 무대를 1초라도 놓치기 싫어서 MC들의 소개 멘트부터 봤다. MC들은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미 인디밴드 계에서는 실력으로 정평이 난 밴드죠. 갤럭시 S의 무대입니다.”

아이폰이 한국에 이제 막 출시 되었을 시기. 갤럭시 S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의문의 얼리어답터가 되었다. 이게 대한민국 로큰롤 스타의 현실이었다.      



기분이 몹시 상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미국 진출을 결심한다. 그 여정은 <반드시 크게 들을 것2>라는 영화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진출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미국에선 그 누구도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몰랐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개의치 않는다. 무대만 있다면 공연을 한다. 관객이 두 명 있는 곳. 무대라기보단 자동차 차고 같은 곳. 아무도 공연에는 관심이 없고 로데오만 즐기고 있는 곳. 심지어 피자집 지하에서까지.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에너지를 분출했다. 마침내 그들은 미국에서도 모두에게 인정받는 밴드가 되었다. 는 결말은 아니었지만, 미국인 10명 쯤은 분명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팬이 되었다.

     



2023년, 나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다시 한번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만났다. 여전히 그들은 뜨겁고 강렬했다. 무대를 장악하는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전율을 느끼게 했다. 자연스레 슬램 존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미친 듯이 뛰어놀았다. 나도 그들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따라 불렀다. 잠깐만 방심하면 록밴드들이 소리없이 사라지는 록의 불모지 대한민국. 여전한 그들이 정말 고맙다.

      

올해도 무대에서 만납시다! 꼭 한 번 찾아가겠습니다.      




<비둘기 추천 갤럭시 익스프레스 플레이 리스트>

진짜 너를 원해

Jungle the black

지나고 나면 언제나 좋았어

Bye Bye planet

순간을 위해

언제까지나

호롱불

홀로 이렇게

Oh yeah!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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