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일

음력 6월 12일

by 비둘기

1차 항암을 잘 마치고 퇴원을 했다. 운 좋게도 처음의 두드러기 빼곤 별 부작용은 없었다. 입맛이 떨어지는 게 부작용이라는데 아직은 밥만 잘 먹는다. 근육통은 조금 있다. 몸에 근육이 전혀 없는데 근육통이 있다. 신호등을 건너다 초록불이 곧 꺼지려 해서 5초 정도 뛰었다. 뱃살이 출렁거릴 때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근육통이 느껴진다.

근육통이 아니라 뱃살통이다.



그래도 퇴원을 하니 기분이 좋다. 꼭 군대 휴가를 나온 기분이다. 군대에서 가장 길게 나간 휴가가 15일이었다. 이번에도 딱 15일을 집에서 쉬고, 다시 병원에 들어가야 한다. 새파란 이등병처럼 휴가를 밤새 즐길 에너지가 이젠 없다. 서서히 동네 한 바퀴 걷는 게 외출의 전부다. 집에선 출근한 아내 대신 집안일을 한다. 빨래를 돌리고,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다 보면 금세 아내가 퇴근한다. 집안일이 이렇게 많구나.. 새삼 아내에게 고맙다.



오늘은 엄마 생일이었다. 부모의 생일을 축하하러 마땅히 자식이 고향에 내려가야 하지만, 간호사님의 당부가 떠올랐다.

“퇴원하시고도 늘 입원할 때처럼 캐리어는 미리 싸두세요. 항암 부작용으로 열이 나거나, 오한이 있거나 할 수 있어요. 진통제 먹어도 나아지지 않으면 바로 캐리어 들고 응급실로 오세요.”

언제든 병원에 실려가도 이상하지 않을 몸으로 고향 광주까지 가긴 리스크가 있다. 혹시나 그곳에서 못 볼 꼴을 보이면 그것 만한 불효가 없다. 엄마 생일 며칠 전 엄마에게 전화했다.

“생일에 누나랑 한번 올라 와. 여기서 같이 놀게.”

“됐다. 아들이 그러고 있는데, 어떤 엄마가 생일이라고 파티나 하고 있겠냐. 이번엔 그냥 여기 있고, 너 다음에 입원하면 한번 갈게. 엄마도 자주 면회 가고 싶은데 너무 머니까..”



알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나 때문에 생일에도 마음껏 기뻐할 수 없다. 용돈이나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휴대폰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더니 고향집에 꽃바구니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가족 단톡방에 꽃 사진을 보냈다.

-꽃바구니 고맙다~ 참 예쁘다~ 너희들도 잘 지내고~ 엄마가 시가래서 한번 갈게

-시간내서~

잠시나마 기뻐하실 수 있어 참 다행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물은 없을까 고민했다. 행복한 내 모습을 선물하기로 했다. 아내와 함께 파주를 놀러 갔다. 율곡 수목원에 가서 산책을 했다. 너무나 더운 여름이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땀이 쏟아졌다. 벌레도 정말 많았다. 최대한 빠르게 멋진 곳을 골라 사진을 찍었다. 그중 가장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빠르게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 쉼터로 도망쳤다. 휴가 간 이등병이 부대에 칼같이 보고하듯, 장소를 옮길 때마다 엄마에게 즐거운 내 모습을 보냈다. 점심으로 먹은 들깨 수제비와 도토리묵사발 사진도 보내고, 밥 먹고 간 멋진 카페도 보냈다.


엄마가 답을 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꽤 괜찮은 생일 선물을 드린 것 같다.


2025년 항암 치료를 마친 후 완전관해 되었습니다.
현재는 정기 검진을 받으며 회복 중입니다.
이제야 지난 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
투병기를 남깁니다.
제 투병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작가의 말

벌써 설 연휴 마지막 날이네요.

행복한 연휴 보내셨길 바랍니다.

이번 설은 가까운 처가만 들르고,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휴직 중이라서 쉬고 있으니,

막히는 설 연휴 말고 다음 주에 내려오라는

엄마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어제 아침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고 있는데,

밖에서 아내가 통화하며 방에 들어왔습니다.

통화 대화 내용과 분위기를 보니,

저희 부모님인 것 같았습니다.

저도 잠시 통화로 안부 인사를 나누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아내가 제가 듣지 못했던 대화를 전해줬습니다.


아빠: 비둘기도 지금 옆에 있냐?

아내: 아니요. 비둘기는 방에서 글 쓰고 있어요.

엄마: 푸하하하하, 무슨 이 아침부터 글을 쓴다냐??

누나: 깔깔깔깔, 대단한 작가님 납셨네ㅋㅋㅋㅋㅋㅋ


제가 이런 조롱을 다 이겨내고 쓴 글이니,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전 17화Knockin' on heaven's do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