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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Jun 19. 2024

해본 건 많은데, 제대로 하는 것은 없습니다.(1편)

작심삼일 인간...

어른들이 자꾸 물어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를 물어봐.
정말 힘든 질문이야 답이 너무 많아.
먹고 싶은 게 많아서 꿈도 너무 많아.
나쁜 사람 체포하는 경찰. 위용위용 불 끄는 소방관.
지금처럼 랩을 하는 래퍼.
얍! 얍! 얍! 멋진 태권도장 관장
<Happy – 차노을>




나도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다. 그 중 하나라도 꾸준히 했다면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텐데…. 지금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할 줄 아는 건 푸념뿐...

“내가 왕년에, 이것도 할 줄 알고, 저것도 할 줄 알았고... 응?? 다 했어! 마!!‘       





   

어린 시절, TV에서는 바둑 중계를 많이 했다. 바둑 천재 조훈현 9단과 그의 제자 이창호 9단. 스승을 뛰어넘으려는 제자와 그를 멈추려는 스승. 스토리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중계 화면을 봐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규칙을 전혀 모르니 재미도 없었다. 다행히 아빠가 바둑을 둘 줄 알았다. 아빠에게 가서 속성으로 배웠다.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바둑 학원도 다녔다. 학원 이름은 ‘하얀 돌 바둑 학원’. 그곳에서 배우며 바둑이 점점 재밌어졌다.



당시 바둑계에는 떠오르는 신예가 있었다. 바로 ‘이세돌’이었다. 당시에는 3단이었다. 한참 낮은 단수에도 9단들을 상대로 승리를 이어나갔다. 그를 보고 결심했다.

‘바둑 기사가 되어야겠다.’


    

‘하얀 돌 바둑 학원’에서 단체로 바둑 시합을 나간 적이 있었다. 나도 그 시합에 참여했다. 매일 같이 바둑을 두던 친구들과 함께 나간 탓에 긴장되진 않았다. 시합이라는 느낌도 없었다. 그저 학원을 벗어나서 바둑을 둘 수 있어서 좋았다. 첫 번째 경기를 생각보다 가볍게 이겼다. ‘나 좀 잘할지도’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승하는 내 모습을 꿈꿨다. 다음 판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데, 첫 경기에서 진 친구들이 내 주위로 몰려왔다. 그들은 별로 슬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비둘기야! 경기 지면 저기서 선물 줘! 너도 빨리 와!”

그들은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자랑했다. 성미 급한 친구는 이미 포장지를 뜯었다. 선물은 문구 세트였다.      



 원대한 우승의 꿈을 품어서인가. 아무 생각 없이 임했던 첫 번째 판과 달리 두 번째 판은 긴장되었다. 상대는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었다. 그는 긴장한 듯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여유로워 보였다. 긴장한 탓인지, 원래 실력이 부족한 탓인지 승부의 추는 빠르게 기울어졌다. 큰 대마가 잡히며 비참하게 패배했다. 이미 죽은 목숨을 억지로 부지하고 있을 때, ‘하얀 돌 바둑 학원’ 원장 선생님께서 내 옆을 지나가셨다. 살아남은 학생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확인하러 오신 듯했다. 그는 내 바둑판을 보더니, 한마디 던졌다.

“비둘기야. 졌다. 가자….”     



그날 이후 바둑 학원을 그만두었다. 바둑을 전혀 두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까만 바둑돌처럼 새까맣게, 하얀 바둑돌처럼 새하얗게, 바둑 두는 법을 잊었다. 이제 나는 바둑을 안 하는게 아니라, 못한다.       






초등학교 때 TV에서 한 광고를 보았다. 덤블도어처럼 분장한 백인 할아버지가 마법 지팡이를 들고 팔았던 제품은 바로 ‘멀린의 마술학교’. 175가지의 마술을 할 수 있는 도구가 담긴 상자의 가격을 단돈 39,800원! 나에겐 너무나 큰돈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졸랐다. ‘175가지’ 마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다행히 설득에 성공했다. ‘멀린의 마술학교’ 광고가 나오길 손꼽아 기다린 뒤 주문을 했다. 며칠 뒤 집으로 ‘멀린의 마술학교’가 도착했다. TV 광고에서 본 것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TV에서 보았던 고급스러운 마술 도구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중국산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만든 마술 도구였다. 요즘 다이소에서 파는 마술 도구보다도 퀄리티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175가지’라는 숫자는 너무나도 과장되었다. 제대로 할 수 있는 마술은 10가지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멀린의 마술학교’는 몇 가지 깨달음을 주었다. 첫째, TV 광고는 절대 믿으면 안 된다. 둘째, 나 조금 마술 좋아하구나. 셋째, 마술은 마법사 행세하는 ‘멀린’ 할아버지가 아닌 제대로 된 스승에게 배워야겠구나.    


  

스승을 찾기 위해 네이버 검색을 활용했다. ‘마술 배우는 법’이라고 검색했다. 몇 가지 마술 카페를 추천받았다. 카페에 가입하니, 몇 가지 마술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마술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양한 팁도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같이 추천하는 책이 있었다.

“마술을 처음 배운다면 ‘이은결의 눈으로 배우는 마술책’을 읽어보세요. 이 책만 봐도 초급 마술은 다 할 수 있습니다.”     



다음 날 동네 서점을 갔다. ‘이은결의 눈으로 배우는 마술책’을 찾았다. 마술 트릭이 담긴 책이라 그런지 읽어볼 수 없게 비닐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 책 속에 뭐가 들었을지 너무 궁금했다. 가격은 19,800원. 역시나 나에겐 너무 큰 돈이었다. 한 번 더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이 책만 보면 초급 마술을 마스터할 수 있다는 점과 마술책을 보는 것도 엄연한 독서라는 점. 앞으로 마술 관련된 소비는 더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허락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 책을 정말 달달 외울 정도로 보며 연습했다.



그 이후로도 칭찬받을 일이 생길 때마다 마술 도구를 사달라고 졸랐다. 집에 카드가 하나둘 늘어났다. 심지어 광주에 오직 하나밖에 없었던 마술 학원도 잠시 다녔고, 학예회에서 2년 연속 마술 공연을 했으며, 유치원생 사촌 동생이 실수로 내 카드 한 장을 찢었을 때 펑펑 눈물을 흘려 가족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나는 마술에 진심이었다.


      

언제부턴가 마술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마술에 질렸다. 더 이상 마술 도구도 사지 않았고, 마술 연습도 하지 않았다. 마술은 서서히 내 기억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리고 지금. 바둑과 마찬가지로 마술도 더 이상하지 못한다. 역시나 안하는게 아니라 못한다.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단 하나, 동전이 사라지게 하는 마술은 열 명 중 일곱 명은 깜빡 속을 정도로 할 수 있다. 100원만 건네주신다면 얼마든지 보여드릴 테니 믿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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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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