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암환자의 복직 일기
22년 6월에 시작했던 항암을 5번까지 받으니 어느새 9월, 가을에 들어섰다. 10월에 나머지 1회를 하고 나면 끝날 예정이었다. 회사에 10월부터 복직을 하겠다고 연락을 했다.
쉬면 쉰다고 걱정, 바쁘면 바쁘다고 난리
주변 사람들은 복직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고 우려 섞인 이야기들을 했다. 항암을 다 끝내고 컨디션을 살펴가며 돌아가야 하지 않냐고. 그러나 내 머릿속에서 남들은 경력을 쌓고 있을 시간에 나는 뒤쳐지고 있다는 강박 비슷한 게 맴돌았다. 항암 약물 투여 후 대략 4~5일 정도만 버티면 나머지 2주 동안은 살만해지니까 회사에 돌아가서 그때만 휴가를 쓰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4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의 휴직을 끝내고 칼같이 10월의 첫날에 출근을 감행했다.
항암약물이 앗아간 내 온몸의 털들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터라 가발을 쓰고 열심히 눈썹을 그렸다. 여름엔 가발이 덥게 느껴졌는데, 가을이 되어 선선해지니 따뜻하게 느껴졌다. 복직 첫날 아침, 몇 달치 월요병을 느끼며 한참 동안 거울을 쳐다보았다.
"가발 쓴 것 같아?"
남편에게 몇 번을 거듭해 내 모습에서 이상한 부분이 없는지 물어봤다. 다른 사람들은 내 본래 머리인 것으로 착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는데, 마치 수감생활을 끝내고 일반사회로 돌아가는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 몸과 마음은 많이 달라졌지만 회사의 풍경은 달라진 것 하나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고 하면, 코로나로 전면 재택근무로 운영되고 있어 동료들의 자리가 대부분 비어있었다는 것. 또 몇몇은 그 사이 퇴사하고 새로 입사한 분들이 있어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는 것.
우울증이 왔다
바쁜 광고회사 특성상, 복귀하고 적응할 새도 없이 빠르게 업무를 인계받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워낙 업무량이 많은 프로젝트라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일을 진행했는데, 현저하게 저하된 체력 탓에 자꾸만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처음 해보는 분야의 프로젝트를 받게 되어 정신적인 압박이 더해졌다. 모르는 것들이 태산이라 동료들에게 질문하는 게 일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다가온 마지막 항암. 내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내 업무를 동료에게 인계를 하고 한주 간 항암을 위한 휴가를 냈다.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조급하게 서두른 복직이 어찌나 후회가 되던 지 모르겠다. 약물이 온몸을 훑고 가자 다시 한번 삼사 일간은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일주일 후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서도 업무를 따라가느라 내 멘털은 회복되지 못한 채로 바쁘게 갈려나갔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근을 해야 할 때면 더욱 세차게 무너져 내릴 때도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주말에 강릉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다. 넓은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면 복잡한 생각을 비워내기에 좋으니까. 나는 특히 사람들이 북적이는 여름보다 가을, 겨울의 조용하고 서정적인 바다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마저도 내 머릿속 반절은 일 생각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풍경을 보다가도 클라이언트 측에서 문의사항이라도 보내면 주말에도 대응을 해야 했기에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연애할 때부터 다툰 적은 기억에 없을 정도로 평탄하게 지내온 우리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크게 싸우기까지 했다. 내 예민함은 극에 달해 있었고 눈물만 났다. 남편이 나를 위해 계획해서 데려가 준 주말여행이었는데, 도저히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제 발로 찾은 정신과
6차례의 항암을 거치며 심신이 지친 가운데 회사 일이 벅차게만 느껴졌다. 하던 일이라 금방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필이면 모르는 것 투성이인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복직하자마자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다시 일을 하면 다시 예전처럼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나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복직이 너무 성급했다는 후회만 하기에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불면증에 잠 한숨 못 자고 출근한 날도 있었다.
그러다 유학생활 중에 공황장애를 앓았다는 대학 동문 친구 이야기가 떠올랐다. 친구는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증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본인 의지로는 도저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음을 인정하고 동네에 괜찮아 보이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무엇보다 같이 사는 남편과 대화가 어려워지고,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게 돼 그게 너무 미안했다. 항상 내 옆에서 힘이 되어주려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든 밝았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초진을 가면 우울의 정도를 진단해볼 수 있는 자가 설문을 한다. 그 후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진단을 받게 된다. 심하진 않았지만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불면증 때문에 힘들다고 말씀드리니 취침 전 약을 함께 처방받았다. 그렇게 3주 간격으로 정기 진료를 받았다. 약에 대한 반응이 어떤지 질문과 답을 나누게 되고 상황에 따라 용량을 조절하기도 한다.
불면증이 시작되면 보통 4, 5시에 겨우 잠이 들곤 했는데, 약을 먹기 시작하고 나서는 잠드는 시간이 점차 2시에서 1시, 1시에서 12시로 이르게 되기 시작했다. 낮에 일을 할 때도 아주 서서히 마음가짐이 달라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정신과를 다닌 지 3개월 정도 후였다.
꾸준히 약을 복용하며 업무에도 차츰 적응을 해서인지 불면증과 불안증세는 호전되어갔다. 흔히 우울증은 현대인들에겐 마음의 감기라고 회자된다. 그러니 생활이 힘들 정도로 우울하다면 약 처방을 받는 게 맞다. 하지만 약에 의존하지 않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내가 정말 우울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근원을 찾아 해결하려는 노력, 그것이 같이 이루어지면 마음의 감기를 떨쳐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복직 타이밍은 어떻게 정하나
일을 다시 시작하는 시점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사람마다 성격, 성향, 항암 부작용에 대한 컨디션이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은 한, 복직 타이밍은 되도록 조급하게 하시지 말라 추천드리고 싶다. 안타깝지만 항암 부작용이 심하지 않더라도 예전의 에너지와 정신력이 마법처럼 금방 다시 되살아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항암 중에 복직하는 것이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아니다. 힘든 치료를 일을 하며 잊을 수 있다는 환우 분들의 경험담을 인터넷 카페에서 종종 보았다. 집에 누워서만 시간을 보낼 때보다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의 만족감도 분명 느꼈다.
그래도 몸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기에, 복직하고서는 회사 업무강도에 대한 협의가 잘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처음 복귀하자마자 남들 일하는 만큼 똑같이 해낼 수 있다고 자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필자처럼 조직 안에서 자기 효용 감을 중요시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이 힘들어질 확률이 높다. 그러니 나 자신을 배려한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조금씩 일의 범위를 늘려가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