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놓은 것이 없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겨울이 되길 바라며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기 직전의 이 시기는 유난히 마음이 섬세해지는 때입니다.
햇빛이 짧아지고 바람이 차가워지면, 사람 마음도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추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속도가 느려지는 순간, 저는 종종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올해 나는 무엇을 해냈을까, 달라진 게 있긴 할까?”
이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부터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올해 해야지, 해볼까, 도전해볼까 했던 것들이 방 한쪽에 쌓여 있는 종이상자처럼 가끔 눈에 들어옵니다.
열어볼 용기는 없는데, 존재는 계속 느껴지는… 그런 마음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요.
우리가 잘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기대하는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작은 간격이 생겼을 뿐입니다.
그 간격이 커질수록 겨울은 더 무겁게 느껴지곤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겨울이 쉼의 계절이겠지만, 제게 겨울은 늘 조금 더 솔직해야 하는 계절이었습니다.
정리해야 하는 일도 많고, 돌아봐야 하는 마음도 많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겨울의 문턱 앞에 서면 저는 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됩니다.
“지금의 나는 괜찮은가요?”
이 질문이 마음속에 남아 있는 만큼, 겨울은 조용하고 깊게 내려앉습니다.
겨울이 무거운 이유는 우리가 멈춰서 있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계절 앞에서 준비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도 사실은 마음이 정리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종종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불안할 뿐이죠.
하지만 멈춤이 있어야 다음 계절에서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것처럼,
겨울의 조용한 시간은 결국 우리를 다시 앞으로 밀어주는 힘이 되곤 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이야기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버텨낸 날들도 분명히 성과입니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관계를 유지하고, 마음이 무너지는 날에도 다시 일어난 것.
그 모든 것이 올해 당신이 해낸 ‘조용한 성취’입니다.
겨울이 무거운 이유는, 그 성취까지도 우리가 잊고 지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대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바람도 달라지고, 사람의 마음도 그 바람을 따라 조금씩 움직입니다.
겨울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여전히 ‘더 잘 살고 싶다’고 바라는 사람이라는 증거일 것입니다.
해놓은 것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도 괜찮습니다.
겨울은 끝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