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를 믿는 나이
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의 스페셜 데이, 크리스마스가 3일 앞으로 다가왔다. 나의 어릴 적 크리스마스를 떠올려 보면 초등학교 3학년 때 살포시 내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나간 존재를 알게 되었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난 그날 그동안 애써 부정해 왔던 ‘산타는 엄마, 아빠야!’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 마지막 선물은 커다랗고 하얀 곰돌이 인형이었다. 그 후론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던가 소원을 비는 일은 없어졌다. 산타가 사라진 나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먹고 싶은 주전부리를 마음껏 먹으며 TV에서 방영해주는 특선영화를 늦게까지 보는 날이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의 크리스마스는 친구나 애인과 보내는 휴일 정도였다.
다시 산타의 존재가 등장한 건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였다.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모으고 산타할아버지에게 소원을 비는 아이의 소망을 부모라면 모른 체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산타가 되었고, 24일 밤 아이가 잠든 시간에 몰래 포장한 선물을 트리 아래 두었다. 그리고 ‘24일 밤엔 빨리 자야 산타할아버지가 오신다.’는 협박을 빌미로 나와 신랑은 공동 육아 동지로서 서로 고생한다며 위로주를 곁들인 이브의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집엔 거대한 레고들이 쌓여 나가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난 아이가 오래오래 산타를 믿는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 그런데 올해, 내가 산타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그 나이가 된 아이에게 산타의 존재를 밝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봉착했다.
요것이 알면서도 산타를 믿어야 선물을 받을 수 있으니 믿는 척하는 거다! 친구들 사이에서 바보 된다!라고 말하는 신랑은 아이에게 “넌 이제 그만 선물 받아도 될 거 같아.”라고 말했단다. 그날 밤 아이는 울적한 목소리로 “엄마, 아빠가 난 이제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안 받아도 된대.”라는 말을 들었고 오래오래 산타를 믿는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나의 생각이 순간 강하게 나의 뇌리를 장악해버리는 바람에 “산타할아버지를 믿는다면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라며 신나 하는 아이를 보고, 난 아이가 말한 레고를 어김없이 올해도 주문한다. ‘넌 어쩜 산타할아버지한테 그 비싼 레고만 받고 싶은 거니…’ 주문을 하며 왜 10살에 산타가 마지막이 되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게 해 준, 나에게 걸었던 주문이 있다. “너희만 행복하다면…”.
하지만 이 주문은 아이가 커감에 따라 “엄마, 아빠도 행복하자.”로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