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문제는 왜 낼까?
"다음 보기의 문장 중에서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의 갯수는?"
이것은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영어 내신 문제다. 네모 안에 5~10개의 문장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의 갯수를 선택지에서 고르는 문제다. 선택지에는 1) 1개 2) 2개 3) 3개 4) 4개 5) 5개 식으로 주어진다. 시험기간에는 학부모가 시험감독에 동원된다. 시험 감독을 하면서 영어 시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영어 시험이 끝나자 마자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였다.
"야, 너는 문법 틀린 문장 몇 개라고 했어?"
"나 3개. 넌?"
"아 난 2개? 예린아 넌 몇 개라 했어?"
"나 3개."
"아이 짜증나... 3개로 찍었다가 2개로 고쳤어!”
틀린 문장이 2개라 '찍은' 학생은 울상이 된다. 시험 때마다 이 유형 때문에 쉬는 시간이면 소동이 난다.
틀린 문장이 3개라고 한 친구 둘은 얼굴을 마주보고 어떤 3문장이 틀렸는지 맞춰봤다.
"나는 A, C, D가 틀린거 같애."
"어 그래? 나는 A, C, F 3개가 틀렸다고 했어. 아무튼 네가 3개라고 했으니까 맞은거지 뭐. 아유~다행이다."
교실 한 귀퉁이에서 공부를 잘하는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1학기 영어시험 점수가 외고 합격에 중요한데, 하필 그 문제를 틀린 것이다. 선생님들은 영어 실력이 좋은 외고 지망생들을 위해 변별력이 높은 문제를 내야 한다며 이런 문제를 낸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의도로 틀린 표현 말고도 어색한 문장은 꼭 등장한다. 어떤 부분을 출제 교사가 틀린 부분으로 점찍었는지에 따라 틀린 문장의 갯수는 출렁인다.
울던 아이는 A, C, D 말고도 G가 표현이 틀렸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언어연수를 2년간 했고 영어 학원도 꾸준히 다니면서 원서 읽기며 두루두루 영어에 강한 아이는 4개 표현이 틀렸다고 했다. 나도 아이들이 보고 있는 문장 G를 들여다 보았다. 분명 틀린 표현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출제 교사는 그 문장을 틀린 문장으로 할 의도가 아닌 것 같았다. 그 문제에 대한 아이들의 문제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적표가 나온 이후 나는 중학교 교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교무주임 선생님께 여쭸다.
"선생님 이런 문제를 내시는 이유는 어떤 건가요?"
"아이들이 하도 잘하다보니 변별력 있는 문제를 내야 합 니다. 제 아이가 고등학생인데 이런 문제에서 갯수가 선생님마다 다르게 나오는데도 그냥 원래 출제교사의 원안 답이 강요되는 사태가 생겼습니다. 너무 어이 없어서 저도 이런 문제는 절대 내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이런 문제를 내셨군요.... 제가 문제까지 세세히 살펴서 결제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별력을 주시고자 한다면 차라리 '다음 보기 중에서 틀린 것의 번호를 모두 쓰시오!'로 하면 운보다는 실제 실력을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 어머니 그게 좋겠네요. 그냥 나무라지 않으시고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제안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월요일에 영어 교사 회의가 열리는데 앞으로는 이런 유형을 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내더라도 어머님 제안하신 방식으로 내도록 변경하겠습니다."
그 후 중학교에서 몇 년동안 그 유형이 사라졌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A3 용지 전면에 빼곡한 글의 10개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 중 틀린 문장의 갯수를 맞춰보라는 문제가 나왔다. 그런 문제가 자그만치 세 개나 출제되었다. 교사들 조차도 정답을 일치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출제교사가 최고 연차인지라 젊은 선생님들은 쩔쩔맬 뿐 답안을 정정하지 못했다. 답안을 정정하려면 윗선의 추가 결제가 필요하니 답안 정정을 꺼렸다. 교사의 인사교과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아이들의 등급이 내려가는 것이 낫다거 보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이의제기를 했지만 교사의 위협적인 태도에 포기했다. 영어 출제교사의 답변은 이랬다.
"어떻게 문제가 나왔든 답을 맞추는 학생은 있다....너릐들은 문제제기를 해도 이 문제를 맞은 애들은 있어."
세상에! 그런 답변을 들을 줄이야!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같은 느낌이 독자분들도 들지 않을까.
선생님들조차 의견 일치를 못보고 가장 나이가 많으신 출제교사의 정답이 강요되었다. 그 결과 아이들의 영어 등급이 요동쳤다.
훌륭한 작가가 쓴 글에도 문법적인 오류는 있다. 밑줄 친 표현이 문법적으로 맞았는지 틀렸는지도 아니고, 긴 문장에 전체에 줄을 치고 틀린 문장의 수를 찾으라니… 틀린 부분이 열개도 가능하고 11개도 가능할 수 있는 문제였다. 영어 선생님들은 문제제기는 출제하신 선생님께 직잡 하라며 손수 나서기를 피하셨다. 정당한 이유로도 대화가 불가능한 학교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실력과 별개로 운에 맏기는 부분이 생긴다.
큰 딸은 그 시험을 깃점으로 수시에서 정시 쪽으로 방향을 수정해야 했다. 영어는 수업시수가 많아 등급에 따라 평점에 큰 영향을 끼친다. 소숫점 이하 평점에도 흔들리는 수시전형에 전념하다가는 재수가 필수다 되기 때문이다. 상위권 아이들이 수시로 목표로 하는 대학의 불합격 가능성을 늘렸으나 출제교사는 그 해 인사고과에 자신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는 일만 생각했다. 억울했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약자였다.
상하로 위계가 잡힌 문화만 아니었어도 문제가 잘못 출제 되었으미 전교생이 맞는 것으로 채점해야할 문제였다. 증거등 내신 영어 평가가 실제 생활에서 정보를 습득하는데 도움이 되는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