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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Aug 23. 2023

바이크 위에서_In Hanoi

소설을 지향하는 논픽션

"갑자기 지금 오라고? 겨우 이십 분 남았어!!

몰라 우선 끝나면 기다려"


그러게 학교 가자마자 확인해 보라던 나의 말이 무색하게 관심 없어하던 아이는 결국 엄마호출이다.

'그래 할 수 없네, 오늘은 바이크로 갈 수밖에'


핸드폰 앱에서 익숙한 아이콘을 눌러 바이크를 선택한다.

5.7km

다행히 바쁜 시간이 아니라 3분 후면 기사가 도착한다.


Honda Winner

평소라면 바이크 브랜드 따위 보지도 않았을 텐데 내 앞에 멈추는 검은색의, 뒷좌석이 하늘로 샤프하게 올라게 있는, 이 모델을 보자 핸드폰 화면을 한번 더 확인한다.

처음인데 이런 스타일은

언제나 평범하고도 평평한 낮은 오토바이로 하노이를 다녀봤을 뿐, 서호를 누비는 젊은 아이들이 탈 법한 그런 바이크잖아!


기사는 내가 이미 헬멧을 쓰고 있음을 알아챘는지 다시 자신의 헬멧을 꺼내주진 않는다. 

다만 뒷좌석 발판만 내려줬을 뿐


아야.

역시, 익숙지 않은 모델이라 짧은 내 다리로 힘껏 올려 타다가 오른쪽 허벅지 안이 요란한 뒷장식에 걸렸다.

몹시 아픈 느낌인데 다시 내려 문지르고 있을 틈이 없다.

왜냐면 이제부터 달리니까

부아앙.

살짝 높아진 높이인데 여태껏 본 적 없는 도시의 각도가 펼쳐진다. 두꺼워보인 타이어 덕인가. 도로의 요철이 오늘은 엉덩이 전체로 느껴지지 않는다. 신호가 바뀌고 속도가 나는 고가도로로 진입하자마자 내 몸이 뒤로 남겨졌다가 순식간에 앞으로 쏠린다.


이 속도로는 또 내 헬멧 날아가겠군

리어 페어링을 잡고 있던 오른손으로 헬멧을 꾹 눌러본다. 숄더백 끈을 왼손으로 한번 더 감고 허벅지 사이에 꽉 끼운다.

겨울에는 느린 속도여도 바이크 탈 때마다 뼈에 바람이 들어오는 느낌인데 오늘은 목덜미로도 한기가 느껴진다. 왜 하노이안처럼 패딩을 안 입었지, 목도리는 어디다 둔 거고

후회가 되지만 살짝 정체가 시작되는 도로에서 특히, 자동차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며 빠질 때면 오늘 역시 바이크를 선택한 나 자신 칭찬한다. 훌륭해. 10분 전 나라는 사람


잘 가던 바이크도 멈춰야 하는 구간이다.

학교 가는 길 만나는 첫 번째 사거리

오늘따라 오토바이 인구가 더 많아 보이는 건 왜 그럴까

그랩 아저씨는 거의 내 다리를 치기 직전까지 옆에 붙어서 들어온다.

앞에 보이는 아이 엄마는 저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도 운전이 가능한가.

학교 수업을 마쳤는지 짧은 치마 엄마 뒤에 탄 아이는 스케치북이며 미술용품이 든 가방인지

한가득 담긴 자신의 등보다 큰 배낭을 메고 있다.

 

신호등 바로 앞에 기다리고 있는 저 아저씨 둘은 또 분명 신호불이 초록색으로 바뀌기도 전에 예측 출발을 하겠지? 뒷좌석 아저씨가 들고 있는_거의 안고 있는_유리는 너무 엉성하게 묶어 둔 것 같은데 괜찮을까 모르겠네


푸드덕푸드덕 소리가 나는 왼쪽을 보니 오토바이 뒤로 닭을 한가득 싣고 가는 아저씨

트럭으로 옮기시지... 아저씨 무게보다 타고 있는 닭들의 무게가 더 나갈 것 같다.

비어허이 어딘가로 가서 오늘 저녁이 될 녀석들인가. 우리 집 옆 광장술집의 칠면조가 오늘 두 마리만 남았나, 한 마리만 남았나... 생각나게 하네


잠시 멈췄을 때 내 옆을 생생히 채우고 있는, 하노이를 채우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는데

또 한 번 부우웅- 하며 몸이 휘청해지자 우리 바이크가 거의 선두로 달리는 걸 알았다.

레이싱 대회도 아닌데 내 양쪽 발끝에도 힘이 꽉 들어간다.

요리조리 도로 위의 우리보다 느린 속력의 차와 오토바이를 제치며 나아가니 이제 강 옆 둑길로 진입이다.


이미 초입에 교통 공안이 나와있는 걸 보니 러시아워가 시작되었나 보다.

속력이 줄어든 좁은 도로에서 바이크 기사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중앙선 넘기!

왼쪽 편 노란 실선을 거침없이 넘어 멈춰있는 차들 옆으로 속력을 한 층 높인다. 어어라 마주 오는 차가 있단 말이다. 입으로는 나오지 않는 '뜨뜨!! 뜨뜨!!(천천히!! 천천히!!)' '응위히엠~~(위험~~)'만 머릿속을 채운다.

마주 보며 달리다 오른쪽으로 쏙

아니 이게 오토바이니 가능하지, 차였어봐. 어쩔뻔했어.

혼자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이번에는 또 어어어

엉덩이가 두어 번 튀며 덜컹덜컹. 오른쪽으로 너무 붙는 다했더니 인도로 올라서 달린다.

이미 우리 앞뒤로도 오토바이가 함께 달리는 것으로 보아 이건 그냥 그 순간 새로 생긴 오토바이길이라 해두자.

그래 뭐 여기의 인도란 사람만 이용하는 건 아니잖아.

그마저도 끊기는 길이면 이 바이크가 강물로 뛰어들지 않음을 감사해한다. 

오토바이는 물 위를 빼고 하노이에서, 베트남에서 못 갈 길이란 없음을 알고 있었잖아?


이제 저 다리만 지나면 한가한 학교 앞 주택가

가방 속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예상했던 20분이 지난 모양이다.

아이는 엄마 도대체 언제 와! 하는 문자를 보냈겠지.

근데 말이다. 엄마가 도저히 지금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가방을 쥔 왼손과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는 오른손은 뒷좌석 날개를 꽉 잡고 있어 얼얼할 지경이다.

이거 때문에 내 허벅지 다쳤는데, 분명 퍼런 멍이 들어 있을 거야 싶지만 지금 이 덜컹거리는 도로 위에서 내 몸을 잡아줄 건, 내가 의지할 건 이것뿐이다.

얼굴은 또 어떻고, 힘을 얼굴과 이마로 다 보내야 헬멧이 안 떨어질 테고, 바이크 기사와 같이 브레이크 잡는 양 양발 끝은 여전히 발 지지대를 꾹 누르고 있는 중이다.

엉덩이는 도로 위 봉긋 솟은 무언가가 나타날 때마다 살짝 들어줘야 충격이 덜하지.

그리고 이 모든 힘을 고르게 보내고 지탱해 주는 건 가엾은 내 두 허벅지


차와 오토바이가 덜하니 모래와 흙이 온통 날리는 길이다.

살짝 높은 안장에 앉아있다 해도 오토바이는 공기 중에 내 온몸을 그대로 선보이는 교통수단일 뿐

나를 방어해 주는 막이란 하나도 없다.

그 말인 즉, 나는 이미 땀과 먼지로 뒤엉킨 상태라는 것


학교 담벼락이 보인다.

'오케 쑤엉더이녜'

내가 자전거를 탄 것도 아닌데 그 높디높은 혼다 위너의 안장에서 내리니 순간 다리가 휘청한다.

온몸은 땀과 먼지투성이에 긴장한 두 어깨는 다리가 땅에 닿자마자 뭉침이 바로 느껴진다.

무사히 덕분에 잘 왔어. 시간도 늦지 않았는걸

감사의 마음으로 기사에게 40,000동을 건넨다.

차로 온 금액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다.

아마도 차를 차고 왔다면 난 아직도 뚝방길 옆 어딘가에서 아이와 카톡으로 계속 연락만 주고받고 있었겠지.


'엄마'

뒤에서 부르며 달려오는 아이가 보인다.

이제 헬멧을 벗고 땀을 좀 닦아본다. 돌아보며 아이에게 손을 흔든다.


"많이 기다렸지? 아휴, 엄마가 어떻게 왔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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