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보 편
언제나 여행자가 도시를 느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걷기라고 생각했다.
베트남이 오토바이를 위한 도시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여러모로 베트남은 걷기에 좋은 도시가 많은 곳은 아니지만 걸으며 바라보는 도시는 나만의 속도로 느낄 수 있다.
호찌민에서는 시청과 인민위원회 청사 앞 광장, 통일궁과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 중앙우체국과 오페라 하우스 같은 시내 길과 한인이 많이 사는 7군과 2군 길을 주로 걸었다.
시내 길은 비교적 널찍한 인도도 있고 정비도 잘 되어 있으며 시원스럽게 뻗은 가로수까지 있기에 그 사이로 걷고 있자면 진짜 여행자가 되어 새로운 도시를 탐험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7군 푸미흥은 계획된 동네답게 길들은 네모 반듯하게 이어져 있다. 처음 골목길에 들어서면 다 똑같은 골목 모양으로 첫 번째 골목인지 중간 골목인지 헤매기 일쑤다. 시간이 흘러 골목길의 포인트 같은 가게들을 익히고 나서야 내가 어디쯤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군 타오디엔 골목길은 조금 더 자유분방하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덕분인지 코리아타운 같은 느낌의 푸미흥과는 달리 낮은 주택의 느낌들도 다르고 색도 다양하며 이국적이다.
내가 걸었을 때는 한창 공사 중인 길이 많아 언제나 먼지가 날리고 있었고 비가 많이 오거나 만조 시기 일 때는 도로가 침수되는 일이 많았다.
뜨거운 한낮의 태양 열기에 지치지만 않는다면 깨끗한 공기와 맑고 높은 하늘을 거의 항상 보여주는 호찌민이기에 걷고 싶은 날이 많다. 물론 우기에는 걷기 어려운 폭우가 한꺼번에 쏟아져서 금세 도로가 물에 잠기기에 가능하면 12월~ 4월의 건기에 산책을 추천하지만 스콜과 같은 비는 더위를 식혀주기도 하니 어느 날이든 못 걸을 날은 없다. 모자나 양산을 준비하고 선크림으로 무장한 뒤 에어컨이 있는 카페에서 쉬어가며 이 도시를 걸어보기를
하노이는 천년이나 된 오래된 도시답게 골목이 잘 발달한 도시다.
호찌민에 비해 골목마다 색채가 다르고 걸을 곳도 많아 걷는 도시 산책자에게는 조금 더 흥미로운 곳이다.
호안끼엠을 중심으로 한 구시가지 거리, 미딩과 쭝화 지역, 서호 주변, 롯데 근처 낌마와 링랑 거리, 시푸차와 외교단지의 길을 걷곤 했다.
호수의 도시인 하노이는 크고 작은 호수가 동네 어디에도 있다.
그중 가장 하노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호안끼엠은 그 자체로도 산책하기 좋은 곳이지만 주변에 있는 오래된 거리인 36 거리가 참 매력적이다. 골목마다 종이, 한약재, 공구, 옷감 등을 파는 곳들이 전문적으로 늘어서 있으며 동쑤언 시장까지 이어져 항상 활기찬 곳이다. 관광객들도 많았던 이곳은 주말 저녁이면 야시장이 펼쳐지고 맥주 거리에는 흥겹게 밤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소란스러웠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문묘, 탕롱 황성, 호찌민 묘소가 있는 바딘 광장, 주석궁과 주석 관저 식물원까지 있기에 걸으며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하노이에서 가장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는 길과 장소들이라 생각한다.
쭝화와 미딩 지역은 하노이에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근무지도 있는 곳이다. 초기 쭝화에 한국인들이 많아서 여전히 한식당들이 남아 있고 빈컴센터와 빅씨도 있어 쇼핑을 위해서도 자주 가게 되는 곳이었다. 미딩에는 한인들이 선호하는 아파트들도 많고 베트남어를 전혀 몰라도 살 수 있을 만큼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하노이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많은 부분을 미딩에 기대어 살고 있다. 경남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남중옌 골목과 둥글게 이어지는 미딩의 거리, 그 거리 뒷길인 딩톤 거리까지 골목골목 다니곤 했다.
서호는 워낙 커서 그 크기가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만큼 서호를 산책한다고 하면 나누어서 하곤 했는데, 북동쪽에 거북이 머리처럼 톡 튀어나온 서호 중심부와 쩐꾸옥 사원부터 주석 관저 식물원으로 이어지는 남쪽 지역,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단순한 길인 쌍룡 서호 동상이 있는 서쪽 지역이다.
서호는 사실 도보보다는 자전거로 돌아보며 산책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산책 도보 편이 아닌 자전거 편에서 각각의 지역들을 더 자세히 안내하도록 하겠다.
서호 남쪽 롯데센터와 투레공원 근처는 낌마 거리, 링랑 거리가 있는데 미딩이 한인촌이라면 이곳은 작은 일본 같은 지역이다. 일본대사관도 있고 일본인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지 일식당도 많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롯데가 있고 빈컴 메트로폴리스에는 한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기에 이 근방은 산책을 종종 하게 되는 곳이다.
작은 동물원을 품고 있는 투레공원을 산책하기에도 좋고 일본어로만 써져 있는 식당과 소품 가게, 카페 베이커리가 있는 골목을 걷다 보면 마치 일본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지막은 요새 한국인들이 많이 이사 가고 있는 지역인 시푸차와 외교단지이다. 주베트남 대한민국 대사관이 이전한 지역이 외교단지인데 앞으로 각국의 대사관들이 들어설 예정인 곳이다. 계획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지역이기에 도로와 인도도 넓고 반듯하게 만들어져 걷기 좋은 길이 많다. 아직 공사 중인 곳이 많고 볼거리가 특별히 많지 않은 곳이지만 앞으로 달라질 모습이 궁금하긴 하다. 외교단지 북쪽에 이미 거주지로 개발된 시푸차라는 지역은 아파트와 빌라들이 넓은 부지에 자리 잡고 있다. 단지 내에 학교와 작은 호수, 골프연습장을 품고 있는 곳이며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고 관리가 잘 되어 있다. 또한 이렇게 정돈이 잘 된 시푸차 단지 길만 3km 정도 되기에 단독 산책길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외부인의 조깅코스로 이용되지 않도록 곳곳의 문에서 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이다.
하노이는 나름 사계절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한국과 같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대략 3~4월의 봄, 9~11월의 가을은 산책을 하기 좋은 계절이다. 여름은 높은 습도의 더위로 걷는 것이 불가능하고 겨울은 맑은 하늘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흐린 하늘에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 많다. 겨울철 아침저녁은 생각보다 쌀쌀한 날에 외투가 필요한 날들도 있다. 미세먼지와 매연을 대비한 마스크(이제는 코로나 때문에라도 필수지만)를 꼭 챙기고 하노이의 맑은 하늘이 빼꼼하게 보인다면 무조건 문 밖을 나서 보시길
도보 산책을 위한 주의사항
1. 차도를 향해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으며 가방은 길 안쪽으로 메고 다닌다
_ 오토바이 날치기인 알리바바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한 가장 방어적인 도보 지침 1위
2. 인도를 점령한 오토바이가 있더라도 잘 피해 간다
_ 가게들이 주차장으로 쓰기도 하고 보행자 우선이 아니기에 인도 위에는 사람만 있다는 생각을 버린다.
3. 풀어진 커다란 개가 다가와도 당황하지 않는다
_ 대형견 크기의 개들이 돌아다니는 곳이다. 개뿐만 아니라 닭이나 오리 염소가 출몰하기도 한다.
4. 바닥에 수시로 보이는 개똥을 조심한다
_ 3번의 이유로 길가에는 개똥이 많다. 공사장 인근이나 가게 앞이 아닐 경우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음으로 발 밑을 잘 살펴야 한다.
5. 횡단보도 신호가 들어와도 오토바이의 습격에 놀라지 않는다
_ 예측출발, 꼬리물기가 일상화된 곳이기에 보행자 신호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언제 어디서나 길을 건널 때에는 차조심. 특히 오토바이 조심
6. 정비되지 않은 보도블록을 조심한다
_ 가로수의 뿌리가 금방 자라는지 보도블록이 고르지 않다. 가끔 맨홀 뚜껑이 열려있기도 하다. 비 오는 날 기울어진 보도블록을 밟았다가는 원치 않은 구정물 세례를 받을 수 있다.
7. 바퀴벌레, 쥐, 도마뱀이(산채로 죽은 채로) 곳곳에 나온다 놀라지 말 것
_ 인간에게도 벌레나 설치류, 파충류에게도 풍요로운 나라다. 어디서나 살고 있다.
8. 인도를 향해 앉아 있는 베트남인들의 시선에 적응한다
_ 카페의 의자 배치는 모두 거리를 향해 있다. 마주 보는 것보다 한 곳을 함께 보는 것을 선호하는 그들의 문화이니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도 거리의 일부인 듯 내 속도로 걸어가면 된다.
9. 쎄옴 기사들의 부름에 일일이 응답하지 않는다
_ 베트남 거리를 걷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짧은 거리라도 무조건 태우고 싶어 하는 오토바이(쎄옴) 기사들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올 것이지만 그냥 지나치면 된다.
10. 종종 인도는 길가 식당과 가게들의 영업장이라고 생각한다
_ 인도에는 차나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식당의 테이블이 나와 있기도 하고 아예 작업을 하는 작업장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길만 맞다면 주저 말고 지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