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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코와푸치코 May 29. 2021

미니 에블린 대란

너도 에르메스 가방 살 수 있어!

에르메스 때문에 요즘 난리가 났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에르메스의 미니 에블린이라는 가방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속앓이 중이다. 흔히 에르메스라고 하면 벌킨백(b)이나 켈리백(k),  콘스탄스백(c)을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 미니백 광풍이 불면서 미니 에블린은 bkc 못지않게 인기 많은 가방이 되었다.


천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bkc보다 더 화제가 된 가방. 미니 에블린의 가격은 얼마인가. 바로 233만 원이다. (2021.4월 기준)

그렇다. 미니 에블린이야말로  “나도 에르메스 가방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의 횃불이자 에르메스 가방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어느 날 미니 에블린을 사기 위해 애쓰는 나를 보며 남편이 물었다.


푸치코: 그 가방이 왜 좋아?


피코: 가볍고 수납도 좋아. 애랑 다닐 때 딱이야.

 

푸치코: 에르메스라는 브랜드가 좋은 거겠지!"


피코:  그거 엄청 예쁘거든? 그리고 가격이 착해.


푸치고:  착하다고? 이백만 원 가방이 뭐가 대체 착해?! 가방이 봉사활동을 하냐? 동물보호를 하냐? 대체 뭐가 착해?  


피코: 그래도 당신 맥북보다 싸잖아!


푸치코: 하! 적어도 내 맥북은 이천 개도 넘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 대체 그 가방은 뭘 할 수 있어?


피코:  푸하하하. 가방이 하긴 뭘 해. 예쁘고 예쁘고 예쁘면 되는 거지. ㅎㅎㅎ  


  (그다음 남편이 뭐라고 길게 얘기를 한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미니 에블린 구매를 위해 에르메스 고객 센터에 전화를 한다. 재고 상황을 알려주는 상담원에게 미니 에블린의 안부를 묻자, 역시나 상담원은 예상대로


“죄송합니다. 고객님 현재 미니 에블린은 전국적으로 재고가 없습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다. 미니 에블린은 매장에 가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미니 에블린은 누가 살 수 있는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온다. 사실 정답은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있다. 그렇다. 에르메스의 인기 모델의 가방은 그들의 VIP 고객들에게 넘어간다. 심지어 VIP 고객들이 묻지 않아도 셀러가 먼저 권하기도 한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에요. 하나 들이세요.”


구매 제안을 받은 VIP 고객은 벌킨과 켈리로 향하는 그 길에 무심하게 ‘툭’ 던져진 인기 아이템을 쉽게 소유한다. 그렇게 vip와 셀러와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아는 셀러도, 실적을 쌓을 돈도 없는 '주제에' 나는 그냥, 무작정, 맹목적으로 미니 에블린이 갖고 싶었다. 왜지? 이게 뭐라고? 이 쬐그마한 가방이 뭐라고 전전긍긍하는가? 문득 나의 소유욕에 질문을 던졌다. 이유는 없었다. 정말 나는 남편 말대로 '에르메스'라는 브랜드를 소비하고 싶었던 것일까?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저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저자가 패션의 본질에 대해 “상류 계급이 하류 계급, 좀 더 정확하게는 중간 계급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 지으려는 노력”이라고 표현한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는 상류층의 전유물을 모방하고자 그들이 선도하는 유행을 좇는 하류층이란 말인가. 그것을 부정할 말도, 나의 욕망을 정당화할만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왠지 굴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미니 에블린이 갖고 싶다는 소유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너무 높은 곳에 있어 언감생심 갖고 싶다는 마음은 있으나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버킨백과는 달리 미니 에블린은 내가 조금만 더 높이 팔을 뻗으면 손에 잡힐 것 같았는데 잡히지 않으니 더욱더 간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명품 정보를 주고받는 온라인 카페에 한 회원의 미니 에블린 구매 후기글이 올라왔다. 그녀는(어쩌면 그는) 매장에서 도저히 가방을 구할 수 없어 사흘 밤낮을 에르메스 독일 공식 홈페이지에서 잠복한 결과, 구매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단비 같은 소식인가!  


하지만 문제는...? 그렇다. 홈페이지에 미니 에블린이 올라오기는 하지만 아주 가끔 가뭄에 콩 나듯이 뜬다는 단점이 그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인기가 너무 높아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신이 내린 손가락으로 수강신청보다, 나훈아 님의 콘서트 티켓 예매보다 더 빠르게 집중하여 진행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후일담이 들려왔다. 단 한 번의 입력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로지 '미니 에블린'을 위하려 하루에도 12번씩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던 중에도 한번, 요리를 하다 말고 한번, 잠을 자기 전에도, 꼬박꼬박 확인했다. 한국, 독일, 프랑스, 미국 할 것 없이 전 세계 에르메스 매장을 온라인으로 떠돌며 미니 에블린의  유목민 생활을 자처했다. 독일어 프랑스어로 된 현지 홈페이지를 마치 모국어 대하듯 매우 빠르게 독해하는 능력까지 갖추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진정 3개월 동안 매달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미니 에블린 구매에...


“성. 공. 했. 다.”


매일매일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결제 과정에서 실패를 맛보고 허무하게 잠이 들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불현듯 선물처럼 미니 에블린이 순조롭게 장바구니에 담기고, 결제창으로 화면이 넘어가고 카드 비밀번호 입력까지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처럼 이루어지던 그날. 나는 미니 에블린 구매에 성공했다. 게다가 텍스 리펀까지 가능한 독일 홈페이지에서 1330유로에 구매한 것이다.


세금을 내고(약 17만 원) 배송 대행비(약 4만 원)까지 다 합쳐도 국내가 233만 원 보다 훨씬 낮은 금액이었다.



성공의 맛이란 이런 것인가. 최근에 이토록 짜릿한 순간이 있었던가? 단언하지만 없었다.

나는 결국 해냈다. 실적도 쌓지 않고, 에르메스의 VIP도 아닌 내가 미니 에블린을 손에 넣다니!


그렇게 10일 후, 배송대행지를 통해 따끈한 미니 에블린이 비행기를 타고 먼 길을 거쳐 나에게 왔다.


가방을 메고 거울 속 나를 보았다. 행복해 보였다. 몇 개월 동안 이 과정을 지켜본 남편이 물었다.



푸치고:  좋냐? 그렇게 좋아?

 

피코: 당연하지! 말해 뭐해?


푸치고: 그래. 잘했다. 잘했어. 이제 핸드폰 붙들고 에르메스 홈페이지 보는 건 그만하겠네.


피코: 그러게, 이제 정말 졸업이야. 끝! 이제 내 할 일에 집중할 수 있겠어.



아이들이 잠들었다. 조용히 방에서 나와 소파에 앉는다. 온라인 카페에 접속해 근황을 살펴본다.


'미니 에블린은 유색이 대세라던데... 한번 더 도전해볼까? 혹시 또 알아? 핑크색 미니 에블린이 내 품에 올지도 몰라. 그럼 지금 있는 건 어떻게 하지? 아, 당근 마켓에 팔면 되겠다! 마침 시세도 좋잖아. 어머, 그럼 나 돈 버는 거야? 우와... 우와... 우와..'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자꾸 에르메스 공식 홈페이지를 열어본다. 자꾸 새로고침을 한다. 자꾸만.. 자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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