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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코와푸치코 Feb 19. 2023

모든 것이 오픈런, 인생 자체가 오픈런!

사장님, 그냥 좀 많이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작년, 포켓몬빵 광풍이 한반도를 휩쓸었다. 유니클로 불매운동이 한창일 때, 아니 그전부터 전범기업이라는 딱지가 붙은 일본의 제품은 구입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닌텐도 동물의 숲도 사지 않았고. 이세이미야케 옷은 입지 않았다. 심지어 모기에 물려도 호빵맨 패치는 절대 붙이지 않겠다 결심하고 간지러움을 참고 견뎠다는 말이다. 그러나 결국 난 지고 말았다. 자식이 뭔지. 전의를 상실한 채 신념을 어겼다. 제발 한 번만이라도 먹어보고 싶다는 딸의 애원에 난 야밤에 포켓몬 빵 입고 시간을 검색하고 동네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동네를 다 돌았지만 이미 입고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 있는 남녀노소 할 것 없는 인파에 밀려 포켓몬 빵은 구경도 못했다.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기대에 잔뜩 찬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는 딸의 얼굴을 보니 미안했다. 내 잘못이 아닌데, 왜 나는 딸아이에게 미안해하는 걸까. 이런 사정을 읍소하자 동네 친한 편의점 사장님이 안타까운 마음에 몰래 한 개를 빼주셔서 겨우 맛이라도 볼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뭐라고 부모와 조부모들을 애달복달하게 만들고 한밤중 길고 긴 시간 동안 줄을 서게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주말을 맞아 서울숲도 갈 겸 가족들과 성수동에 갔다. 오늘은 진짜 맛있는 것들, 맨날 먹는 똑같은 그저 그런 음식들 말고 진짜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그런 소문난 음식들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나에게는 먹음직스러운 고급빵들을 주문하고 사진 찍어 SNS에 올릴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 인플루언서가 다녀간 성수동 유명 빵집의 빵들은 “재료소진”이라는 명목 하에 구경도 할 수 없었다.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해가 지지 않은 오후의 시간이었다. 이쯤 되면 직접 묻고 싶다.

            

 "사장님 정말 재료소진 맞아요? 그냥 빨리 퇴근하고 싶으신 건 아니죠?"



  여행을 위한 호텔예약도 마찬가지이다. 회원권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다. 아이들 방학에 주말여행을 가려면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손가락이 터져라 핸드폰 화면을 두드려야 한다. 연말 호텔 뷔페는 어떠한가. 예약을 위한 통화 연결조차 힘들다. 한 끼에 20만 원 가까이하는 식사권인데 예약조차 못해서 동동거리는 현실이 진짜 사실인가?   

  인기 강사의 학원 등록도, 에버랜드 사파리 투어 예약도, 백화점 샤넬 쇼핑도, 성시경 콘서트 티켓도, 소아과 진료도, 던킨도너츠의 내돈내산 사은품 구입도, 크리스마스 케이크 주문도, 나이키 운동화 드로우도 모든 것들이 다 줄서기다.


 줄, 줄, 줄, 줄을 서시오! 줄을 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소!   


  아! 정말 살아가는 게 뭐가 이리 피곤하냐. 줄을 안 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대충 아무거나 먹고 아무거나 사고 아무 데나 가면 되는데 그러면 이렇게 피로하지 않을 텐데. 왜 나는 굳이.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돈을 쓰겠다고 이렇게 소비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걸까. 안 사고 안 먹고 안 가면 그만이지만 나라는 인간은 그렇게 고결하고 줏대있는 성격이 아닌지라 매일 하는 것 말고, 가끔은 남들이 하는 것을 해보고 싶고. 남들이 먹는 것도 먹고 싶고 남들이 가는 곳에 가고 싶다! 비록 그것이 이미 철 지난 촌스러운 물빠진 유행일지라도 남들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하고 나만 못 먹어보고 못 사고 못 가본 상실감 대신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기억을 소유하고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유행패션 따라가기도 벅찬 세상에 모든 유행을 따라하려니 가랑이가 찢어지고 지갑이 가벼워진다.

  화면 속 모든 것을 경험하고 인증하고 공유하는 세상에서 내 통장 잔고를 지키고 나만의 고유한 개성을 소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눈을 감고, 입을 닫고, 귀를 막고 살아갈 수 없다면 유행에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 유행에 관심두지 않을 결심, 그래서 결국 나만의 세상을 나만의 것으로 채우는 훈련이 절실하다.  

  

  런던베이글의 식감이 어떠한지 몰라도, 연말에 신라호텔 뷔페에 가지 못해도, 나이키 드로우에 응모하지 않아도,  해외여행 인증샷이 없어도 모두 다 괜찮을 마음. 이 모든 것을 인스타그램에 자랑하지 못해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고 지금보다 조금 덜 피곤한 힐링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을 나의 2023년 새로운 목표로 설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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