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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May 27. 2022

와이셔츠 목때와 길들여짐

일상에 수시로 찾아드는 현타이야기


 부쩍 늦은 술자리가 많아진 남편, 어제도 남편은 술을 마시고 자기 차를 놓고 들어왔다.아침에는 엊그제 끓여 놓은 콩나물국을 무심한 듯 데워서 내주고 남편과 두 딸을 차에 태웠다  두 딸은 먼저 학교 앞에 내려주고(학교와 집이 좀 멀다),  그 다음은 남편을 출근 시키는 길,막히는 차들 때문에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오전 출근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일이다. 막히는 출근길 도로에서 신호를 몇번씩 기다려야 하고 차를 천천히 몰면서 멈칫멈칫 해야 하는 답답함이 짜증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밖에서 술마시는 걸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소모적인 술모임을 좋아하지도 않아서 집에  일찍 오는 편이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하면서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는 사람이다. 그런데 직장에서 위치가 올라가고 본인이 책임져야 할 일들과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만큼 술자리가 늘기 시작했다.  위치가 올라간다는 것은 술자리에서도 그만큼 도망치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높은 사람은 도망치면 티가 나서 도망도 못친다면서....


 두어 달 전 쯤부터,   일의 연장선으로 술자리를 갖는 남편이  힘들어 보여서  아침에 내 차로 남편을 태워다 주고 돌아오곤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제는 술만 마시고 오면 그 다음 날 나는 의레 그 사람의 운전기사가 되었다. 벌써 두달 사이에 몇번 째인지.. '몇번째야?'라고 횟수를 세니 더 화가 났다(어린왕자가  그랬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고)


 가뜩이나 나도 어제는 늦은 수업을 하고  밤 퇴근을 했으며,  느닷없이 한 학부모에게  교양없는 소리를 들어서 자존심이 구겨졌으며, 잊을만 하면 터지는 돈구멍에 돈을 메꿔넣어야  하는 상황들(남편은 술마시느라 몰랐고, 내가 해결)이 있었다. 내 마음이 시끄럽고 감정이 평온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숙취해소가 될 된 남편을 차에 태우고 출근을 시키노라니... 사는게 뭔지.. 현타가 온다.


'나 지금 뭐하고 있지? 이러다 술만 마시면 이제 맨날 이렇게 출근시켜야겠네. H언니가 남편이 술만 마시면 태우러 오라고 해서 환장하겠다고 했는데... 언니한테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뭔가? 이러다 나도 남편 퇴직까지 맨날 기사 하는거 아니야?'


남편을 중간쯤 버스정류장에 내려고 유턴을 해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나


 안방에 널부러진 남편의 와이셔츠가 보인다. 집어들었다. 목때가 보인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큰 대야에 물을 받고 과탄산소다를 풀고 남편의 와이셔츠를 담근다. 15분 정도 여유있게 불린 다음 자연스럽게 목때를 비볐다. 남편이 밖에서 깔끔하지 못한게 싫은 나는 늘 남편의 셔츠 목때를 손으로 비벼서 빨고, 나이든 남자의 쿰쿰한 냄새가 나지 않도록 빨래에 향기를 넣는다. 그리고 깨끗한 손수건을 챙겨주고 깔끔함을 강조해서 생활화시킨다. 그렇게 나는 남편에게 마음을 쓰고 시간을 쓰며 산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길들인다는 것'은  서로에게 세상 단 하나뿐인 소중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시간을 내주어야 하고, 중요한 것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그런 관계라고 했다. 어린왕자에서의 길들임은 부정의 느낌은 전혀 없는 긍정적이고 아주 따뜻하고 좋은 느낌이었다.

내 일상에서의 길들임은...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반쪽의 와이셔츠 목때를 손으로 비벼 빠는 수고와 시간을 들이며 살다가도,  술마시고 들어온 남편을 위해 하는 운전의 시간이 남편을 '잘못 길들이는 것'으로 변질 될까봐 성질을 내버렸다. 인내심이 없었다.


'길들인다'는 것

한 참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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