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설계
가끔은 뒤를 돌아보아야 지금 걷는 이 길의 의미가 보인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길을 걸어왔다. 그 길들 중에는 스스로 선택한 것도 있었고, 원치 않았지만 떠밀리듯 걸어야 했던 길도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이어져 있었다. 당시는 몰랐지만, 이제 와서야 알겠다. 그것이 방황이라 부르던 시절에도, 하나님은 나를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이끌고 계셨다는 것을.
나는 이직 경험이 많다. 열 번 남짓. 누군가 들으면 놀랄 만큼 잦은 변화였다. 초반 몇 번은 비슷한 분야에서 옮겨 다니는 정도였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완전히 다른 분야로 뛰어드는 일도 많았다. 그 시절의 나는 방향을 잃은 것 같았고, 스스로 망가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주변에서도 “왜 이렇게 자주 옮기느냐”는 말을 들었다. 안정된 길을 포기하고 또 다른 길로 들어서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문득 ‘믿네’라는 찬양의 가사가 마음 깊이 파고들던 순간이 있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내가 거쳐 온 모든 곳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완벽하게 종합하고 융합한 결과였다. 과거의 선택이 실패나 방황이 아니라, 모두 현재를 위해 준비된 길이었다는 사실을. 그 깨달음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전율과 위로였다. 내가 스스로 무너져 간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설계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 통찰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의심과 혼란 속에서 걸어온 길이었다. “정말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실까?” 하는 의문은 내 마음을 자주 흔들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의 작은 경험들이 조금씩 그 의심을 녹였다. 내가 준비하지 않은 만남, 우연처럼 보였던 기회, 예상치 못한 배움의 순간들이 쌓이며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갔다. 나는 그 그림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동안의 모든 길이, 다음 길을 위한 설계였다는 것을.
이 깨달음이 확실해진 순간은 CCM ‘Way Maker’를 처음 들었을 때였다. 가사 속 ‘길을 만드시는 분, 기적을 행하시는 분,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고백이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그 노래는 마치 하나님이 내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네 길을 만들고 있다. 네가 보지 못해도, 느끼지 못해도 나는 일하고 있다.” 그 음성이 내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찬양을 듣기 불과 며칠 전, 성경 속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구절이 유난히 크게 눈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평소에도 여러 번 읽었던 말씀이었지만, 그날은 마치 활자로 새겨진 문장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듯했다. 그리고 며칠 후, ‘Way Maker’를 통해 그 말씀의 의미가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귀를 열어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하시려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길 위에서의 작은 사인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때로는 그것이 사람의 말로, 때로는 환경의 변화로, 또 때로는 마음속 깊이 울리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하나의 의미 있는 흐름이라는 사실을 잘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설계 속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직장에서 배운 기술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중요한 무기가 되었고, 이전 직장에서의 관계가 훗날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믿음은 그렇게 자라 갔다.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기를 구하며, 성령님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되기를 기도하는 여정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졌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진짜 실력은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분의 눈으로 흐름을 읽고 사랑으로 구조를 짜는 감각에서 나오는 것임을.
길 위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곤 했다. 멈춤의 순간은 때로 불안했다. 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은 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멈춤이 있었기에, 나는 더 깊이 들을 수 있었고, 더 넓게 볼 수 있었다. 나의 방황과 멈춤, 그리고 방향을 바꾼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퍼즐 조각이었다.
그 조각들이 맞춰져 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제 안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우연히 여기 두신 적이 없다는 것을.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도, 앞으로 걸어갈 길도, 모두 그분의 완전한 설계 속에 있다는 것을.
내가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돌아보면, 그 길목마다 그때는 몰랐던 의미가 숨어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짧은 시간만 머물렀는데도, 거기서 만난 한 사람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오랜 시간 뿌리내리고 있었지만, 떠나고 나서야 거기서 배운 인내와 기다림의 가치가 내 안에 깊이 새겨져 있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은 흔히 ‘커리어 경로’를 직선으로 그리고 싶어 한다. 좋은 학교, 안정된 직장, 꾸준한 경력, 그리고 은퇴까지 이어지는 일정한 궤도. 하지만 나의 경로는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지그재그였고, 때로는 크게 우회하는 듯 보였다. 그 안에서 나는 자주 스스로를 평가절하했고, 남과 비교하며 불안해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그 지그재그가 바로 나를 만드는 길이었다는 것을.
이직을 거듭할수록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처음 보는 조직 문화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빠르게 배우고 유연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런 과정에서 내 안에 있는 ‘적응력’과 ‘관찰력’이 날카롭게 다듬어졌다. 지금의 나는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내 안의 도구들을 준비시키는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특히 전혀 다른 분야로 옮겨갔을 때, 나는 처음으로 ‘배운 것을 버리지 않는다’는 원리를 체감했다. 이전 직장에서 익힌 기획 감각이 전혀 다른 산업의 프로젝트 설계에 쓰였고, 과거에 다뤘던 자료 분석 기술이 새로운 분야의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나님은 나의 과거를 허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하나 재료로 모아, 나만의 독특한 조합을 만들어 가셨다.
그렇기에 ‘Way Maker’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은 단순한 음악적 울림이 아니었다. 그 노래는 내 지난 시간 전부를 해석해 주는 열쇠였다. ‘네가 보지 못해도, 내가 일하고 있다’는 고백이 내 가슴속에 깊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고백은 나의 삶 전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나는 방황 속에서도 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경 속에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구절이 유난히 크게 다가왔던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미 내 귀를 열어 두셨다. 단지 내가 그분의 속삭임에 귀 기울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나는 그 속삭임을 선명히 들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말씀과 음악, 사람과 환경을 통해 나를 부르셨다.
그 후로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인을 더 민감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평범한 대화 속 한 마디, 우연히 읽은 책의 문장, 심지어 지하철에서 스쳐 들은 라디오 방송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일 수 있다는 마음이 열리자,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마치 눈앞에 투명한 지도가 펼쳐진 것 같았다. 그 지도에는 내가 가야 할 길만 아니라, 이미 걸어온 길의 의미도 함께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한 번에 명확해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흔들렸고, 길 위에서 멈칫거렸다. 때로는 다시 의심이 고개를 들었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은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건, 이제 나는 그 침묵마저도 하나님의 설계 안에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 믿음이 나를 다시 걷게 했다.
그 믿음은 하루아침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불안과 의심, 그리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후회가 조금씩 정리되고 사라진 건, 오랜 여정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쌓인 결과였다. 나는 수없이 기도했다.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기를,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기를, 성령님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되기를. 그 기도가 처음엔 그저 바람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나를 견고하게 세우는 기둥이 되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달았다. 진짜 실력은 기술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과 닮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분의 눈으로 흐름을 읽고, 사랑으로 구조를 짜는 감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내 삶의 무대가 바뀌고, 사람과 환경이 변하더라도 그 감각만은 잃지 않는다면, 나는 어디서든 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직이 잦았던 시절, 나는 종종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겼다. 주변의 시선이 무겁게 다가왔고, 나조차 내 선택을 의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그때의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빚어냈다. 회사에서 기획서를 쓰던 경험이 NGO 캠페인 설계에 쓰였고, 데이터 분석을 배우던 시절이 기업 컨설팅 자료 작성에 연결됐다. 심지어 한 번은,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취미 생활에서 익힌 기술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살린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는 순간, 나는 하나님의 설계가 얼마나 정교한지 실감했다.
그 길 위에서, 하나님은 나를 여러 번 낮추셨다. 내가 내 힘과 능력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할 때, 그분은 조용히 내 손을 멈추게 하셨다. 대신, 사람을 보내셨다. 때로는 스승 같은 분을, 때로는 동역자를, 때로는 한 번 스치고 지나가는 낯선 이를 통해서도 말씀하셨다. 그 사람들은 의도치 않게 나의 생각을 깨트리고, 시야를 넓혔다. 나는 점점 배웠다. 하나님의 일은 내가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예비하신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Way Maker"를 처음 들었던 날, 나는 그동안 붙잡지 못했던 한 줄의 진실을 붙들었다. ‘당신은 길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 고백이 내 안에서 깊게 울렸다. 내가 아무리 방황하고 헤매도, 하나님은 이미 길을 만들고 계셨다. 그리고 그 길은 단지 나를 위한 길이 아니라,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과 함께 걸을 길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계획이 틀어질 때는 당황하지만, 그 안에서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는다. 때로는 내가 준비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길이 열리고,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이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그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설계라는 걸 믿고 나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방황 속에서 배운 건 단순히 ‘참아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믿음이었다. 그 믿음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나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준다.
그래서 지금 나는, 누군가 길을 잃었다고 느끼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은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경험도, 언젠가 놀랍게 연결될 날이 온다고. 그리고 그 연결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나 역시 그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여기서 본 풍경과 배운 감각을 나누려 한다.
그 감각은 방향을 잃은 사람에게는 나침반이 되고, 힘이 빠진 사람에게는 작은 불씨가 될 것이다. 그것이 나를 이끌어 온 하나님의 설계이자, 내가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