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로 받은 기획력
나는 오랫동안 기획이라는 일을 붙잡고 살아왔다. 누군가는 숫자와 전략으로 승부를 걸었고, 또 누군가는 네트워크와 영향력으로 길을 열어갔다. 하지만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그 모든 요소를 포괄하는 무언가가 늘 중심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서의 기획력,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실력이었다.
나는 이 실력이 단순한 기술이나 노하우가 아니라는 것을 점점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경험이 쌓일수록, 그리고 여러 번의 방황과 시도를 거듭할수록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애써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은사였구나’라는 깨달음이다.
올해 6월, 우리에게 의뢰한 단체가 C은행 본사 로비에서 진행한 환경 캠페인이 있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자료를 모으고 메시지를 정리하며 나름대로 준비를 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 어려워했다. 은행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바쁘게 지나쳤고, 부스 앞에 서 있는 직원들의 목소리는 웅장한 건물의 로비 안에서 쉽게 묻혀버렸다. 그들이 애써 준비한 메시지는 정작 가장 필요한 순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메시지는 틀린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는 방식은 아니었다. 자료집 속에서는 논리적으로 완벽해 보였지만, 눈앞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귀에는 닿지 못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준비해 온 몇 가지 메시지를 꺼내 다시 조율했다. 고민 끝에 고른 문장은 단순했다.
“3만 원이면 이 로비만 한 해안가를 정화할 수 있습니다.”
그 문장을 직접 입 밖으로 내어 시민들에게 건넸을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고개를 들고 멈춰 선 사람들이 있었다. 몇몇은 다시 발걸음을 돌려 다가왔고, 어떤 이는 “아, 그게 무슨 뜻이죠?”라고 물었다. 그 짧은 한 문장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현장에서 함께 있던 단체 실무자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정비된 메시지가 귀에 쏙 들어와요. 우리가 준비한 건 이렇게 간결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때, 실력이란 이런 순간에 드러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감각이었고, 은사였다. 자료와 논리를 다 합쳐도 결국 현장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메시지의 뼈대를 잡아주는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실력이었다.
비슷한 경험은 기업과의 협업 속에서도 나타났다. 몇 해 전, 나는 한 대기업의 CSR 팀으로부터 제안 요청을 받았다. 그들은 사회공헌 활동을 새롭게 기획하고 싶어 했지만, 어떻게 기업의 정체성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기업의 연차보고서, 비전 선언문, 그리고 내부 직원 인터뷰 자료를 꼼꼼히 분석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그들이 가진 핵심 가치와 사회적 요구 사이에 놓인 간극이었다. 기업은 ‘혁신’과 ‘기술’을 강조했지만, 정작 사회는 그들에게 ‘환경 책임’과 ‘미래세대에 대한 기여’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제안서의 구조를 단순히 프로그램 나열로 채우지 않았다. 대신 그 기업의 언어와 사회의 언어를 연결하는 다리처럼 설계했다. ‘혁신’이라는 단어를 ‘지속가능한 혁신’으로, ‘기술’이라는 표현을 ‘환경을 위한 기술’로 바꿔 세웠다. 내부적으로 익숙한 단어를 사회적 가치와 직결시킴으로써, 직원들에게는 친숙하고 외부에는 설득력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제안서를 발표하던 날, CSR 담당 임원은 발표가 끝난 후 내게 말했다.
“우리가 늘 고민하던 걸 이렇게 정리해 줄 수 있다니… 우리가 가진 것을 사회와 연결하는 방식이 이렇게나 명확할 수 있군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마음속 깊이 감사했다. 그 자리에서 드러난 것은 내가 쌓아온 경험의 총합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연결의 은사’였다. 수많은 단어 속에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세워야 할지 감각적으로 알아차리는 힘, 그건 내가 애써 만든 게 아니었다.
세 번째로 기억에 남는 사건은 몇 년 전의 강연 모금 현장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행사장은 절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신청자는 많았지만, 실제 참석자는 그보다 훨씬 적었다. 누군가에게는 실패로 보였을 자리였다. 하지만 강연이 끝난 뒤, 한 젊은 공무원이 다가와 말했다.
“오늘 강연에서 제 마음이 깊이 찔렸습니다. 후원을 안 할 수 없었어요.”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숫자는 부족했지만, 울림은 충분했다. 내가 준비한 메시지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실력이란 단순히 성과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의 마음에 닿도록 흐름을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세 가지 사건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일어났지만, 하나로 이어진다. C은행 로비 캠페인에서는 단순한 문장이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기업 CSR 제안서에서는 가치의 언어가 다리를 놓았다. 강연모금 현장에서는 숫자가 아닌 마음의 울림이 진짜 결실을 맺었다.
이 모든 순간에 흐르고 있던 것은, 내가 애써 만든 능력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 곧 실력이었다. 나는 종종 스스로를 의심하며 ‘내가 가진 게 뭘까’ 고민했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이미 내게 주어진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감각, 복잡한 흐름 속에서 본질을 붙잡아내는 눈, 그리고 준비된 메시지를 적절한 순간에 꺼내는 담대함.
이 실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나는 단지 그것을 흘려보내는 통로일 뿐이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실력이란, 내가 쌓아 올린 결과물이 아니라 내가 맡겨 받은 은사라는 것을.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고자 하시는 일을 이루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두신 도구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
“하나님, 제게 주신 이 은사를 제 힘으로만 쓰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길을 따라 쓰게 하소서. 숫자와 성과보다 마음과 진심을 향해 흘러가게 하소서.”
그 기도가 내 실력을 단단히 붙들어준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 길 끝에서, 내가 걷고 있는 이 모든 흐름은 결국 하나님의 완전한 설계 안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