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기획자
책상 위에 놓인 계획은 언제나 완벽해 보인다. 색깔을 맞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깔끔하게 정리된 수치와 그래프, 일정표 위에 빼곡히 적힌 단계들. 그것들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모든 것이 예정된 시간표대로 흘러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늘 달랐다. 현장은 문서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관계는 수치로 설명되지 않았고, 돌발 상황은 언제나 나타났다. 설계와 실행 사이에는 늘 예측할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나는 여러 번 그 간극에서 무너졌다. 기업 CSR 제안서를 준비했던 어느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몇 주 동안 수치를 모으고, 논리를 세우고, 빈틈없는 구조를 짰다. 제안서를 완성했을 때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다. 발표 전날에는 거울 앞에서 여러 번 리허설을 하며 자신감을 다졌다. 슬라이드 하나하나에 넣은 색과 수치, 정렬된 그래프는 완벽했다. 마치 그 구조 안에서만 움직이면 모든 일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러나 회의실에 들어선 순간, 그 확신은 흔들렸다. 깔끔하게 정돈된 대리석 탁자, 창밖으로 보이는 도심의 풍경, 맞은편에 앉은 임원들의 무표정한 얼굴. 첫 장을 열며 힘차게 말문을 열었지만, 공기는 차가웠다. 내 말은 슬라이드를 따라갔으나, 상대방의 마음은 따라오지 않았다. 중간쯤에 한 임원이 손을 들었다. “이 모델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한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단 한 문장이 발표의 균형을 흔들었다.
나는 대답을 이어가려 했지만 목소리가 떨렸고, 자료를 보여줄수록 공백은 더 커졌다. 그날 회의실에서 나는 완벽한 설계가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발표는 무사히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그 끝은 차갑고 무거웠다. 회의실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손에 들린 서류철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카페 한 구석에 앉아 한참 동안 창밖만 바라봤다. 눈앞의 불빛은 화려했지만, 내 마음은 어두웠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준비가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틀린 길을 간 걸까?’ 자책이 밀려왔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또 다른 울림이 들려왔다. ‘너는 구조를 세웠지만,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았구나.’ 그 깨달음은 가슴을 후벼 팠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진심 어린 기도를 했다. “주님, 제가 만든 이 구조가 아니라, 주님이 만나길 원하시는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세요.”
NGO 캠페인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거리의 바람은 차가웠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바빴다. 나는 준비한 멘트를 큰 소리로 외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다. 어떤 이는 핸드폰만 보며 스쳐 지나갔고, 어떤 이는 짜증 섞인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준비한 대본을 기계처럼 반복했지만, 말은 공기 중에 흩어졌다. 마이크를 쥔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고,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캠페인이 끝난 뒤, 팸플릿이 담긴 박스를 정리하며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팀원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데, 나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나를 붙든 것은 기도였다. “주님, 오늘 제가 준비한 말이 닿지 못했지만, 주님이 만나길 원하셨던 누군가는 분명 계셨을 겁니다. 제가 눈으로 보지 못했을 뿐이지요.” 그 기도는 작은 위로가 되었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어느 프로젝트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중도에 계획을 바꿔야 했다. 모두가 불안했고, 나는 책임자로서 죄책감에 눌려 있었다. 그날 새벽, 교회에 홀로 앉아 기도했다. 텅 빈 예배당에 앉아 두 손을 모으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주님, 제 계획이 무너졌습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마음속 깊이 들려온 음성은 단순했다. “네가 짠 계획이 아니라, 내가 여는 길을 따라라.” 그 음성에 가슴이 무너졌고, 오히려 평안이 찾아왔다. 우리는 작은 규모로 방향을 바꾸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실패처럼 보였던 순간이 오히려 새로운 길이 되었다.
시니어 펀드레이저 교육 과정에서도 같은 경험이 있었다. 나는 교안을 완벽히 준비했다. 그러나 첫 수업 날, 참가자들은 교재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잠시 고민하다 나는 교안을 덮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교재보다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먼저 나눠 봅시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며 시작해요.” 그 자리에서 흘러나온 눈물과 고백은 어떤 강의보다 강력했다. 준비한 구조는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그 자리를 채웠다.
이 경험들은 내게 한 가지 진리를 가르쳐 주었다. 설계는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계획은 인간의 몫이지만, 실행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기도는 설계와 실행 사이의 다리다. 내가 짠 계획이 흔들려도, 기도로 붙든 길은 다시 선다.
나는 점점 깨닫는다. 기획자는 단순한 설계자가 아니다. 기도하는 설계자다. 설계와 실행 사이,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그 틈을 기도로 메우는 사람이 진짜 기획자다.
메타프레임워크 역시 이 원리를 피해 갈 수 없다. 아무리 정교해도 완벽하지 않다. 프레임워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건 사람이고, 사람을 살리는 건 하나님의 능력, 주님의 역사하심이다. 구조는 수단일 뿐이다. 주님의 손길이 그 안에 역사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실제가 된다. 그것이 개인을 바꾸고, 조직을 새롭게 하고, 결국 사회를 흔든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때로는 성과를 좇아 흔들리고, 때로는 계획을 고집하며 불안을 감추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나를 기도의 자리로 이끄신다. 설계와 실행 사이의 공백은 두려움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길을 여시는 자리였다. 그 사실을 기억할 때, 나는 안도할 수 있다.
돌아보면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기억은 내게 기도의 힘을 더 깊이 새겨 주었다. 내가 세운 계획은 언젠가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기도로 붙든 기획은 흔들려도 다시 세워진다. 기도하는 순간, 내가 만든 길이 아니라 주님이 여신 길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내가 세우는 모든 구조 위에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시기를. 내가 걷는 모든 실행의 현장에서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시기를. 기획자로 불리는 이름보다, 기도하는 설계자라는 정체성이 더 분명히 드러나기를. 설계와 실행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손길이다.
나는 그 손길을 신뢰한다. 오늘도, 내일도, 내가 계획한 길이 아니라 주님이 여신 길을 따라 걷기를 원한다. 그 길에서만 참된 실행이 시작되고, 그 길에서만 사람을 세우는 하나님의 시선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