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내가 만든 길이 아니라, 주님이 열어주신 길을 따라

by Bloomlink

돌아보면, 나는 길을 만들며 살아왔다고 믿었던 시간이 분명히 있었다. 계획을 세우고, 구조를 짜고, 선택지를 넓히며,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 과정은 나름의 책임과 논리를 동반했고, 실제로 많은 일들은 그렇게 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까지도 내가 만든 길의 결과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신앙과 기획, 믿음과 판단이 충돌한다고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성실함과 열심히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믿음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선택들, 내가 개척하고 있다고 믿었던 방향들 속에서 설명되지 않는 멈춤과 전환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길은 예상보다 빨리 닫혔고, 어떤 길은 애써 피하고 싶었음에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더 정교하게 계획하려 했고, 더 설득력 있는 이유를 붙이려 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다른 질문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정말 나는 길을 만들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이미 열려 있던 길 위에서 방향을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돌이켜보면, 때로는 눈이 가리어진 채로 엉뚱한 방향으로, 분명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가면서도 ‘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착각은 열정처럼 보였고, 용기처럼 느껴졌으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증거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 순간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사실은 하나님의 인도를 묻지 않은 채 속도를 선택했던 시간이었음을. 길을 넓히고 있다고 믿었지만, 정작 방향을 확인하지 않았고,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준을 내려놓고 있었음을 말이다.


이 깨달음은 나를 무너뜨리기보다,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내가 길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 내가 설계자라기보다 응답자에 가깝다는 인식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했다. 그제야 나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해 온 한 고백을 다시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게 되었다. Way Maker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길은 내가 열어온 것이 아니라 언제나 주님이 열어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생각해 보면, 중요한 순간마다 길은 늘 내 앞에 있었지만, 그 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길을 관리하려 했고, 설명하려 했으며, 때로는 증명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은 길을 설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고, 그저 따라오라고 부르셨다. 그 부르심은 늘 분명했지만, 내가 그것을 알아듣는 데에는 수많은 우회와 착각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사라지지 않았고, 완전히 닫히지도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또한 은혜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쓰는 동안에도 같은 질문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나는 여전히 길을 신뢰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경로를 더 믿고 있는가. 기술이 발전하고, 선택지가 늘어나며,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이지만, 그 속도와 가능성 앞에서 내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답은 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주어져 있었고, 나는 그 답을 다시 천천히 받아 적고 있었을 뿐이다.


길은 주님이 여신다.

나는 그 길을 읽고, 분별하고, 따라 걷도록 부름 받았다.


믿음은 길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그 길 위에 머무는 일이라는 사실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것, 결과를 알 수 없어도 기준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것, 속도보다 방향을 선택하려는 태도. 그것이 내가 믿음이라고 불러오게 된 모습에 가까웠다. 화려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지만, 끝까지 함께 가시는 분을 신뢰하려는 마음.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나는 이 길을 굳이 설득하려 하지 않게 되었다. 이 길이 옳다는 증명도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 길을 설명하거나, 정리해야 한다는 부담도 이 자리에서는 내려두고 싶다. 다만 주님이 여신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길이 지금도 나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며 받아들이려 한다. 설명이 사라진 자리에서 신뢰가 남고, 해석이 멈춘 자리에서 동행이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는 자리에서 남는 것은 하나의 확신이라기보다, 태도에 가깝다. 길은 여전히 주님이 여신 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도 괜찮다는 믿음.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만든 길이 아니라,

주님이 열어주신 길을 따라 걷는 일.

그 단순한 고백 속에,

길 위에 선 나의 모든 이야기가 조용히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