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PD May 25. 2023

평생 먹던 커피를 끊었다

내 인생의 즐거움이자 끊을 수 없었던 나의 중독, 커피

아침에 먹는 아이스 믹커의 맛은 정말 환상이다

 나는 하루에 한잔은 꼭, 많으면 3-4잔까지 커피를 마시는 커피 중독자였다. 출근하고 자리에 앉으면 꼭 맥심 믹스커피 하나를 타온다. 카페 바닐라라떼와는 다른 믹스의 달콤함이 입안에 퍼진다. 고소한 프림의 맛! 믹스는 정말 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즐거움이었다. 사실 오전엔 크게 졸리지 않는데도 커피를 마셨다. 아침에 힘들게 출근했는데,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런 달콤함조차 없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나 - 하는 보상심리로 한잔을 마셨다. 그렇게 믹스 한잔을 시작으로 퇴근시간까지 열심히 카페인을 몸속에 쌓아갔다.


 선천적으로 위가 약한 나는 사실 커피를 많이 먹으면 속이 쓰리다. 젊었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긴 취준생기간부터 취업하고 나서 일했던 기간 내내 끊이지 않게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언제부터인가 쓴 아메리카노가 속에서 잘 받지 않았다. 그래서 아메리카노보단 라떼, 라떼보단 믹스를 주로 먹게 되었다.


 커피를 먹으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집중이 잘 안 되는 날에도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 업무를 순조롭게 진행했다. 맛도 맛이지만 일하면서 능률을 올리고 싶어 먹은 것도 있다. 진한 카페인을 흡수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자면 막혀있는 부분이 술술 써졌다. 그리고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달콤한 커피 한입을 먹으면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스트레스가 쌓여 아무와도 말하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혼자 삭히긴 싫을 때 달달한 커피는 나에게 제일 큰 위로였다.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단숨에 커피를 끊게 되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임신준비. 카페인이 태아에게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나선 임신 준비과정에서 단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바로 아인슈페너. 달콤한 크림과 쌉쌀한 아메리의 조합이 너무 좋다

 사실 난 내가 평생 커피를 끊지 못할 줄 알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는 하루 시작을 못했고, 아침의 달콤한 행복을 놓치기가 싫었다. “이만한 즐거움도 없이 뭣 하러 살리~”라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마셨다. 근데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니 정말 한잔도 입에 대지 않게 되더라. 3주 정도를 카페인 없이 생활하니 첫 일주일은 죽을 맛이었다. 출근하고 찾아오는 피로감이 두배로 늘었고, 오후엔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와 업무에 집중이 안되었다. 당장이라도 믹스 하나를 타서 달콤하게 마시고 싶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이랑 카페에 갈 때면 고를 메뉴가 없었다. 카페엔 왜 이렇게 커피 메뉴가 많은 건지, 커피 이외의 메뉴들은 다 밍밍하고 맛없어 보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커피단식 2주째. 어라? 잠을 잘 자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탓에 몰려오는 피로는 숙면시간을 당겼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뜻하지 않은 아침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커피 없는 하루하루는 우울함으로 가득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생기가 그 빈 공간을 채웠다. 특별히, 매일 달고 살았던 피로감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운동부족, 체력부족 때문에 생긴 줄 알았던 피로였는데 커피를 끊고 나니 조금씩 사라졌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무너무 졸렸던 오후가, 맑은 오후로 바뀌었다. 평소 무겁던 머리는 커피를 마시면 가벼워지는 게 아니었다. 그냥 커피를 끊었더니 일상적으로 무거웠던 머리가 가벼워졌다.


 속이 편했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 조금씩 쓰리던 위를 맹물과 차로 채우니 아프지 않게 되었다. 입은 심심했지만 속은 편했다. 이젠 동료들과 카페에 가서도 커피가 아닌 다른 맛있는 메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철과일로 만든 딸기라떼, 고소한 토피넛라떼, 달콤 상큼한 레몬차. 커피가 아닌 맛있는 음료는 생각보다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임신 준비 때문에 끊게 된 커피였는데, 대자연이 다시 시작되고 커피를 먹어도 되는 몸이 되었다. 그런데 이왕 시작한 커피 끊기를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커피 끊기가 나에게 준 양질의 수면과 맑은 정신. 그리고 편안한 위. 매일 한잔의 커피는 나에게 즐거움을 줬지만, 커피단식은 나에게 건강을 되찾아줬다.

주말 아침에 드립커피를 내리고 있으면 집안이 커피 향으로 가득 차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가끔 주말에 카페에 가서 맛있는 라떼를 먹거나, 집에서 한적한 오후에 정성스레 드립커피를 내려먹는 즐거움을 없애지는 않을 거다. 평생 커피를 입에도 대지 않고 살 생각은 아니다. 다만 매일매일 습관적으로 먹던 커피중독을 줄이는 것뿐이다. 이게 길게 갈지 짧게 끝날지도 사실 모르겠다.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해서 나도 모르게 믹스를 타서 마실수도 있고, 다시 습관적으로 마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커피 끊기로 얻은 이 기간의 경험은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알 수 없는 피로감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한 번쯤 커피를 끊어보는 걸 추천한다. 나도 임신준비가 아니었다면 평생 이런 기간을 가지지 않았을 거다. 당분간은 이 편안함을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 삼아 지내보려고 한다. 오늘의 달콤함도 중요하지만 매일매일의 평온함도 나에겐 소중하다. 습관적으로 마시기보다는 가끔 정말 먹고싶을때만 마시면서, 진정으로 커피맛을 즐기는 커피 소식좌가 되어보아야지.  

작가의 이전글 힘이 들 땐 떡볶이를 먹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