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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Dec 01. 2022

입원: 쯔쯔가무시

가을이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여름 끝자락부터 떨어지기 시작해서 마당과 주차장과 집 앞에 가득히 쌓인 낙엽을 치우는 일이다. 너무 일찍 치우는 건 사서 고생이다. 옛날 군대에서처럼 눈이 올 때부터 그칠 때까지 계속 눈을 치우는 어리석음을 반복할 순 없다. 나무에 달린 낙엽이 몇 개 남지 않게 되면 이제 청소를 할 때가 된 거다.


며칠 전 큰맘 먹고 몇 시간 동안 마당을 청소했으니 오늘은 가볍게 집 앞 계단을 쓸어본다. 계단을 쓸어내려 가다가 마지막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길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어이가 없었고 창피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 노인 뭐 하는 건가 웃는 거지.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 멋쩍음에서 벗어났다. 다친 곳은 없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것도 나이가 먹은 탓이겠지.


얼마 전 열 살쯤 위인 사촌 형이 넘어져 이빨이 다 부러졌다. 전화를 하면서 아니 어쩌다 그랬어요? 그러게 말이야. 그냥 식당에서 밥 먹고 나왔는데 나도 어떻게 넘어졌는지 모르겠더라고. 높은 데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저 평지에서 발을 헛디딘 정도일 텐데 얼굴을 다치고 이빨이 다 부러졌단다. 형이 그런다. 늙어서 그런가 봐.


불행은 그렇게 작은 일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다리 가랑이,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서혜부가 조금 부었다. 순간,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부은 곳을 세게 비벼댔다. 마사지를 하면 가라앉을 거라 생각한 건가. 순간적인 판단은 합리적 판단을 결여하곤 한다. 부은 곳은 곧 더 커졌고 만지만 약간의 통증도 생겼다. 그리고 덜컥 겁이 났다. 림프종일 수 있겠구나. 친한 친구가 목에 멍울이 생겨 병원에 갔다가 림프종임을 알았고 5년 투병하다 하늘로 떠났다. 그래서 나도 불안했다.


다음 날부터 고열이 시작됐다. 그리고 오한이 왔다. 기침도 안 하고 목도 안 아픈데 고열과 오한이 반복된다. 감기 몸살과는 다르다. 체온계로 재보니 37.5도 정도. 그때 뭔가 잘 못되었음을 알았어야 했는데 계속 망가진 체온계로 고열을 미열로 받아들였다. 괜찮다고 믿고 싶어서 무의적으로 잘 못된 것을 부정했던 건가. 그리고 자는 동안 땀을 너무 흘려 잠 옷을 두 번이나 갈아입어야 했다. 뭔가 달랐다. 감기 몸살아님이 분명하다.


일단 약국에 갔다. 임파선 부은 건 넘어져서 그런 건가요? 그렇죠. 넘어질 때 충격에 근육이 놀래서. 해열제를 준다. 타이레놀보다 잘 들을 겁니다. 전혀 효과가 없었다. 보통과 다른 고열이다. 결국 다음 날 동네 병원에 갔다. 소아과 내과. 의사가 내과 전문의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병원이니까. 병원에 도착하니 간호사가 체온을 잰다. 너무 높네요. 몇 도예요? 39.7도네요. 집에선 늘 38도를 넘지 않았는데 갑자기 40도에 가깝다니. 비로소 집에 있는 체온계의 오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간 알면서도 아닌 척했던 건데.


의사에게 일련의 사건들을 설명했다. 계단에서 떨어진 거. 다음 날 서혜부가 부은 거. 그리고 고열과 오한이 생긴 거. 나는 이 세 가지 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아니 알아야 했다. 넘어져서 임파선이 붓고 그래서 열이 났다? 설득력이 없다. 고열과 오한을 설명하지 못한다. 의사는 고열보다 서혜부가 부은 것이 더 신경 쓰인단다. 임파선이 부은 건 어딘가 염증이 생겨서  몸이 싸우고 있다는 건데 넘어져서 이렇게 되진 않습니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옆구리를 보여줬다. 아, 이것 때문이겠네요. 옆구리에 종기가 있다. 가려워서 긁었던 기억은 있는데 그다음엔 잊고 지냈다. 만져도 눌러봐도 조금도 아프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의사는 이것 때문에 다리 가랑이가 부을 수 있단다. 그리고 열 내리는 주사를 한 대 놔주고 항생제, 해열제를 처방해준다. 역시 약보다 주사. 그날 오후는 모처럼 컨디션이 완벽했다. 열이 없으니 정신도 맑았고 기분도 좋았다. 사람의 몸은 지극히 연약하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다시 고열과 오한이 찾아왔고, 밤에는 또 옷이 다 젖었다. 그리고 다음 날 동네 피부과에 갔다. 내과에서는 염증이 원인이라고 했지만, 염증이 심한 것도 아니었으니 이렇게 심한 고열과 오한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아직도 고열의 원인을 모르는 거다. 피부과 의사는 말한다. 상처를 키웠네. 그리곤 항생제는 먹고 있으니 레이저 치료만 받고 가란다. 며칠 더 오란다. 돌팔이.


다음 날 차를 몰고 작은 종합병원으로 갔다. 동네 내과도 피부과도 가 봤지만, 아직도 고열의 원인이 뭔지 모른다. 원인을 모른 채 약만 먹을 수는 없었다. 효과도 없다. 의사를 만나 다시 일련의 사건들을 설명하곤 옆구리 종기를 보여줬다. 쯔쯔가무시네요 뭐. 네? 쯔쯔가무시. 산에 가신 적 있습니까? 강아지들 산책시키며 공원에 가기도 하지만 긴 풀 속으로 들어가진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마당을 치울 때가 의심된다. 여름내 자란 잡초들을 뽑고 마냥 자란 긴 가지들을 잘라내고 가득 쌓인 낙엽을 치우는 게 매년 가을 반복되는 일이다. 대부분 손으로 하는 일이고 온 몸에 풀들이 묻을 수밖에 없다. 그때 물렸나 보구나.


CT를 찍고 피를 뽑고 바로 입원을 했다. 팔에는 수액, 항생제, 그리고 가끔 진통제와 해열제가 주렁주렁 달렸다. 순식간에 제법 그럴싸한 환자가 된 거다. 다음 날 검사 결과를 보러 의사에게 갔다. CT 결과를 보면서 말한다. 콩팥도 이상 없고 간도 이상 없고 장기들은 다 좋네요. 그리곤 피검사 결과를 보면서 인상을 쓴다. 백혈구 수치가 낮고 혈소판도 그렇고 간수치는 죄다 200이 넘는다. 그러니까 정상인의 일곱 배 혹은 열 배 정도. 염증 수치도 매우 높다.


입원해서 쯔쯔가무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열이 많이 나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하니 간수치가 너무 높아서 결국 큰 병원에 가서 쯔쯔가무시 병임을 알게 되었단다. 검색을 해보니 모든 것이 내 상황과 일치했다. 고열, 오한, 발진, 높은 간수치, 그리고 물린 자리는 가피라고 하는데 종기와는 전혀 달랐다. 가운데 까만 딱지가 있고 그 주위가 빨갛게 되는 건데 완전히 내가 그랬다. 그런데 동네 내과 의사와 피부과 의사는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몰랐던 거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바로 입원을 하라니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다. 그녀는 늘 그렇다. 병실에 올라갔더니 간호사가 집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가져오란다. 또 전화를 했고 여전히 받지 않는다. 전화를 해주지도 않는다. 집에 오니 아내 차가 있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3층 내 방으로 올라가서 수건과 세면도구, 수저와 젓가락, 책 한 권 등을 챙겨서 다시 조용히 병원으로 왔다. 자기 전에 다시 전화했고 이번에 받는다. 나 병원에 입원했어. 왜? 며칠 고열이었잖아. 쯔쯔가무시란다. 아내는 말한다. 나도 열이 좀 있어 타이레놀 먹고 잤는데. 강아지들은 어떡하지. 내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남편이 아파서 갑자기 입원을 했다는데도 그저 자기 얘기뿐이다. 전화를 끊으니 조금은 서운하다. 그럴 거라 알고 있었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지만, 몸이 아프니 마음이 약해진 거다.


6인실. 병원은 저녁 9시가 되면 조용해진다. 불을 끄고 다들 잠을 청한다. 뭐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까.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우니 그런대로 평안하다. 내가 여기 이렇게 누워있는 건 아무도 모른다. 아내는 알지만 모르는 것과 같다. 자식들도, 친구들도, 누나도. 그러고 보니 내게 관심을 갖는 이가 없다. 내가 아프고 입원한 걸 알아야 하고 걱정해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거의 없었다.


아침 7시에 식사가 시작된다. 방에 불이 켜지고 환자들은 모두 침대에 앉아 밥을 받는다. 그리곤 조금 후 하나둘씩 식판을 들고나간다. 어떤 이는 칫솔을 들고 이를 닦으러 가고, 어떤 이는 담배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우리 방에는 중학생 정도의 사내애가 다리를 다쳐 입원해 있는데 할머니가 간병인으로 같이 계신다. 밥 먹어. 싫어. 밥 안 먹고 또 빵, 라면 이런 것만 먹을라고 그러지? 응. 안돼. 왜 안돼. 할머니와 손주의 티격 거림이 정겹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손주의 오줌을 받아내고, 매점에 가서 빵과 라면을 사 오신다. 아직 철없는 손주가 마냥 귀여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부모를 간병하는 자식은 없지만  자식을 간병하는 부모는 많다. 그런 건가. 자식들은 공부하고 직장 다니느라 바쁘니까 그렇겠지. 마음은 다르지 않을 거라 억지 부려본다.


매일 똑같은 일과가 반복된다. 아침밥 먹고, 이빨 닦고, 1층에 내려가 로비에 앉아 책 읽으면서 커피 마시는 일이 좋다. 우울한 병실이 아니라 밝고 활기찬 로비에 있는 것 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점심을 먹고, 간호사가 수액과 진통제, 가끔 해열제를 갈아주고, 아침저녁으로 쯔쯔가무시 치료약을 먹는다. 때도 없이 잠을 자고, 잠시 깨어선 책을 보고, 또 1층에 내려가고, 핸드폰으로 영화를 본다. 머리가 가려워 할 수 없이 약을 주렁주렁 달고 샤워실에 가서 한 손으로 머리를 감기도 했다. 하루 만에 병원 밥이 지겨워져서 샌드위치를 사 먹는다. 열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하루에 0.5도 정도 내려가는가. 그래도 이틀이 지나니 39도를 넘는 일은 없고 이젠 38도 대에서 머문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니 가끔 37도 대로 내려가기 했고 나흘이 지나자 37도에서 37.5도 사이를 왕복한다. 그렇게 다섯 밤을 지나고 나니 의사가 퇴원하란다. 완쾌된 것은 아니나 이미 병세는 꺾였으니 더 이상 입원해 있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내 옆 침대의 남자는 바쁘다. 아침, 저녁으로 아내가 전화를 하고, 매일 집에서 뭘 가져온다. 그럼 남자는 로비로 내려가 잠시 데이트를 즐기곤 아내가 사 온 빵과 마실 것들을 들고 올라온다. 자식들도 전화하고 어쨌든 바쁜데, 나는 온종일 전화 오는 곳도 없고 로비에 뭘 받으러 내려갈 일도 없다. 남자는 내가 안돼 보였나 보다. 아내가 가져온 빵도 주고 마실 것도 준다. 왜 아무도 전화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어 하는 남자에게 대답했다. 저는 이혼했습니다. 그날 밤 아내가 전화를 했다. 웬일인가. 우리 집 마당에 길 고양이가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살고 있다. 내가 없으니 밥과 물을 못 먹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말한다. 화단에 새끼 한 마리가 죽어있다고. 자기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집에 오면 치우란다. 그리곤 전화를 끊는다. 하도 어이가 없어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좀 어떠냐고 한마디도 안 묻냐? 서운했어? 너무 놀래 가지고. 그게 내 아내고 그게 내 처지다.


밤에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뭐라고 하는지 잘 몰랐는데 계속 반복하니 알아듣겠다. 도와주세요. 감금입니다. 감금. 아들이 자신을 여기에 감금시켰단다. 현상금 20만 원 줄 테니 자신을 나가게 해 달란다. 그 남자는 절실하고 진심일 수 있겠으나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저 밤에 시끄럽게 소리치지 말고 조용히 자라는 심정뿐이다. 그 남자가 조용하니 다른 남자가 갑자기 욕을 해대면서 벽을 주먹으로 내려친다. 그리곤 옆에 있는 환자에게 말한다. 나와 보시오. 끌려나갔던 환자는 결국 다음날 방을 옮겼다.


퇴원하는 날 새벽에 다시 피검사를 했다. 회진 온 의사가 말한다. 염증 수치는 다 내려갔네요. 퇴원하세요. 그런데 간수치는 안 내려갔네요. 그런데 퇴원하라니. 자기는 쯔쯔가무시 치료했으니 간은 알아서 하라는 태도. 간수치가 서서히 내려가는 건지, 그럼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건지, 혹은 정말 간이 손상된 건지, 의사로서 뭐라도 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더 묻고 성의 없는 대답을 또 듣다간 화가 나고 욕하게 될까 봐 조용히 퇴원하기로 했다.


병원에서 다섯 밤을 자고 다시 집에 왔다. 반겨주는 건 역시 강아지들뿐. 집 여기저기 가득한 애들 똥오줌과 쓰레기들을 치운다. 애들 정수기를 청소하고 새 물로 채운다. 첫째를 데리고 나가 똥오줌을 해결한다. 마당에 내려가 길고양이 밥과 물을 채운다. 그리고 그동안 화단에서 죽은 새끼 한 마리를 치운다. 엄마한테 가서 잘 지냈냐고 안부를 묻고 잠시 같이 시간을 보낸다. 저녁이 되자 퇴근한 아내가 잠시 3층으로 올라왔다. 굴전을 만들었다며 세 조각 주고는 밥 먹어야 한다면 바로 내려간다.


아파서 입원했고 어느 정도 치료가 돼서 다시 집에 왔다. 일상으로의 복귀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복귀가 아니다. 대학병원에 간전문 의사를 만나기로 예약을 했다. 역시 2주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에 간이 더 나빠지거나 아니면 수치가 정상이 되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아직도 쯔쯔가무시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체온이 여전히 37도를 넘는다. 병원에서 37도 초반이면 열 없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건 정상인의 경우다. 나처럼 고열에서 정상체온으로 내려오는 상황이면 아직 정상이 아니란 말이다. 무서운 쯔쯔가무시. 퇴원 서류를 보니 퇴원 시 상태가 완쾌가 아니라 경쾌란다. 회복 안됨이나 사망이 아니니 다행이지만, 병이 끝나가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란 말이겠지.


퇴원 전에 체온계를 주문했다. 간호사들이 쓰는 체온계는 모두 BRAUN이었다. 입원 전 고열일 때도 내 엉터리 체온계는 미열이라고 주장했으니 어이가 없다. 새 체온계로 한 시간마다 열을 잰다. 37도에서 37.5도 사이로 안정적이다. 36이란 숫자를 언제나 보게 될까. 퇴원 후에도 잘 때 옷이 젖는 걸 보면 난 아직도 쯔쯔가무시의 지배를 받고 있는 거다.


퇴원했지만 마음은 밝지 못하다. 아직도 체온이 정상이 아니고 간 수치가 회복되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확인한 아내의 무관심과 나의 고립은 우울의 바닥을 더 깊게 만들었다. 사실 아내에게 서운해할 건 없다. 아픈 남편을 걱정하거나 돌봐주지 않는 건 그녀가 그렇게 할 마음이 없기 때문인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아내에게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내의 잘못은 아니다. 내 잘못일 수도 있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닐 수 있다. 길을 걷다가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여인을 본다. 그런데 그 여인이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듯이 내 아내의 무심함도 그렇다. 그냥 내 처지가 조금은 안됬다고 생각할 뿐이다.


오랫만에 다시 산책을 하다가 늘 만나던 남자를 본다. 지팡이를 집고 팔과 다리를 절면서 열심히 걷는다. 두 다리가 멀쩡한 나는 행복한 거다. 감사할 일이다. 아침저녁 괜찮냐고 전화하고 매일 먹을 것을 챙겨다 주는 아내를 둔 옆 병상 남자는 내게  열등감과 서운함을 불러일으킨다. 난 불행한 거다. 그러나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감사할 이유가 넘친다.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우울과 원망의 이유도 넘친다.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행복과 감사를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은 더 높은 곳을 보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면서 사는 게 더 일반적일 것이다. 가끔 병원에 가게 되면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 새삼 놀란다. 그럼 난 내 처지에 만족하고 삶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오래가지 못하는 다짐.


늙었으니 곧 또 아플 것이고 결국 죽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난 여전히 고립되고 외로울 것인데 마음을 비워야 한다. 기대하지 말아야 하고 내 삶이 이렇게 된 것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나보다 더 아프고 더 외롭고 더 힘든 사람들이 많다.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히면 삶이 낭비될 뿐이다. 인정하고 감사하는 습관이 생기면 삶이 밝아지고 힘이 생긴다. 쯔쯔가무시가 되살려준 당연한 깨달음을 이번에는 쉽게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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