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는 첫째 딸이다. 벌써 다섯 살 반이 되었나 보다. 나이를 확인하면 조금은 슬퍼진다. 타샤는 벌써 생의 반을 살았다. 게다가 남은 수명은 불확실한 것이다.
별이가 떠났다. 선천적인 콩팥장애로 태어나 겨우 두 살 반을 살았다. 내가 미리 알았다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거란 차책과, 너무 어린애가 죽었다는 안쓰러운 슬픔 때문에 한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때 미국에 살고 있는 제자가 연락을 했고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선 자기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가 사람의 제일 좋은 친구이니 꼭 키우셔야 한단다. 내가 슬픔 속에 지내고 있는 게 걱정되었나 보다. 그리고 그 제자는 놀라운 수단을 동원해서 결국 타샤를 내게 보냈다.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 어렵다. 코카 스패니얼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영국의 찰스 왕의 마음에 들어 왕실견이 되었으니 이름이 킹 찰스 스패니얼이 되었단다. 그러다 왕이 다른 강아지에게 마음을 빼앗기자 왕실견에서 밀려났고 미국으로 건나가면서 카발리에, 그러니까 기사의 작위를 받은 건가. 어쨌든, 그래서 이런 엄청난 이름이 되었다. 부모는 독일의 dog show 챔피언이란다. 그러다가 러시아 브리더가 입양해서 또 러시아 dog show 챔피언을 먹었고, 새끼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타샤다. 러시아에서 태어났으니 이름이 러시아 답게 타샤. 이름이 예뻐서 한국으로 온 후에도 바꾸지 않았다.
타샤는 여권을 들고 러시아에서 인천공항으로 그리고 우리 동네 시골공항으로 날아왔고, 나는 공항에서 브리더를 만나 타샤를 입양했다. 오랫동안 캐리어에 갇혀 비행기를 탔음에도 우리를 만나자 깨발랄이었다. 조수석에 있는 아내가 타샤를 앉았는데 아내의 얼굴을 핥아대고 난리 부르스였고 그때 사실 강아지나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도 이미 타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타샤는 5월생인데 10월에 우리에게 왔다. 한국에서는 강아지가 두 달만 되면 분양을 한다. 어릴수록 인기가 많으니 어쩔 수 없단다. 타샤처럼 다섯 달이 넘으면 어쩌면 데려가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더 어리고 귀여운 강아지들이 경쟁자로서 너무 많으니까. 그런데 타샤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하고 적어도 다섯 달을 지내야 한단다. 젖도 충분히 먹고 배변하는 것을 포함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엄마한테 배워야 하는 거란다. 우리의 또 하나의 부끄러운 현실.
어린 타샤는 완전 깡패였다. 방심하고 외출하고 오면 집은 폭탄 맞은 듯 초토화되어 있다. 화분들은 죄다 흙이 파이고 엎어져있으니 온 집이 흙 천지다. 슬리퍼를 물어뜯는 건 그나마 다행이고 벽지나 벽에 붙어 있는 나무도 물어뜯어놓았다. 아내가 좋아하는 신발을 네 개나 죄다 물어뜯었는데 내 것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기특한 놈. 내 대신 엄마한테 복수해 주는구나. 그런데 신기한 건 아내가 화를 내지 않는 거다. 내가, 아니면 누구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신발을 죄다 망가트렸다면 분명 화를 냈을 것인데. 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강아지들이 무슨 사고를 쳐도 화가 나지 않으니 신기하다.산책을 나가면 온 동네 골목골목 다니느라 한 시간은 보통이고 그나마 억지로 집에 끌고 오는 거다.
타샤는 여자애다. 나는 타샤의 아기들을 낳아서 한 마리는 키우고 나머지는 분양할까 생각을 했다. 집에서 새끼 강아지가 태어나는 걸 상상만 해도 너무 감동이고 행복했다. 게다가 타샤는 왕실견이 아니던가. 그것도 100프로 순종. 부모가 유럽의 독쇼를 휩쓴 챔피언이고. 그러나 아내가 반대했다.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애가 새끼를 낳으면 너무 힘들고 뼈도 약해지고 영양분을 뺏겨서 털도 거칠어지고 등등.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출생의 고통과 후유증인가 보다. 결국 아내가 이겼다. 그러나 내가 항복한 이유 중에는 타샤의 짝을 찾기가 어렵다는 현실이 있었다. 한국에 타샤와 같은 종을 찾는 것이 일단 너무 어려웠다. 서울에는 몇 마리 있을 수 있겠지만 어찌 찾나. 그리고 찾아서 결혼을 시키려면 서울로 가야 하는 건가. 등등. 결국 영국 왕실견이고 유럽을 제패한 챔피언의 후예는 나에게 와서 동네 똥개로 살게 되었다.
타샤는 별로 인기가 없다. 까맣고 소형견 중에선 큰 편이니작고 앙증맞지도 않다. 인기 있는 강아지는 작고 털이 백설기처럼 하얀 아이들이다. 가끔 묻는 사람이 있다. 이 아이는 무슨 종이예요? 네,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입니다. 네? 뭐라고요? 그다음부터는 혹시 누가 물어도 난 그냥 코카 스패니얼 종류라고 대답한다. 타샤의 족보와 탁월함을 설명하는 난감함을 포기했다.
새끼 낳는 것을 포기했으니 중성화수술을 해야 했다. 동네에서 제일 큰 동물병원에 갔다. 가까운 작은 곳에서도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왕실견인데 최대한 조심을 한다. 타샤를 맡기고 왔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수술을 할 수 없단다. 피검사를 하니 혈소판 수가 너무 적단다. 그럼 수술하다 피가 나면 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몇 시간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의사가 학교 다닐 때 들었던 것 같아 논문을 찾아보니 혈소판 부족은 킹짤(킹 찰스.. 의 애칭)의 특징이란다. 그러니까 몸에 이상은 없으니 수술할 수 있다고. 유별난 애로구만.
강아지의 시간은 사람의 그것보다 빠르다. 사람의 하루는 강아지한테 일주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타샤가 중년이 되었다. 엄마와 떨어져 이국만리 내게 왔던 어린 타샤와의 첫 만남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데. 다섯 살이 넘으니 많이 달라졌다. 산책을 나가면 똥오줌만 해결하고는 휙 돌아 집으로 간다. 집에서도 사고 치는 일은 전혀 없고 그저 잠만 잔다. 근육이 약해질까 봐 산책할 때는 억지로 좀 오래 걷게 한다. 타샤가 놀라울 정도의 열정과 에너지를 발휘하는 건 먹을 때뿐이다. 간식을 주면 거의 내 손을 물어뜯을 정도로 달려들고, 동생들에게 그저 순둥이지만, 먹을 것 앞에서는 동생들을 가차 없이 응징한다. 무서운 큰 누나로 돌변한다.
작년부터 이사를 계획했다.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으로 갈 것이다.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문제들이 생기고 너무 늦어진다. 봄에는 갈 수 있으려나. 늙으니 마당에서 땅을 밟고 나무와 꽃을 키우며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그럴 것이나, 마당 있는 집으로 가려는 것은 타샤를 위함이기도 하다. 타샤가 더 늙기 전에 마당에서 온종일 뛰고 냄새맞고 놀게 하고 싶다.
타샤는 집에서 똥오줌을 눟지 않는다. 산책을 많이 하는 강아지들이 종종 그렇듯이 타샤는 밖에서만 일을 해결한다. 물론 산책을 나가지 않으면 참다가 결국 집에서 배변을 하겠지만 그럼 억지로 오래 참는 거다. 그런 타샤를 위해 하루 세 번 산책을 나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타샤를 데리고 나가는 일이다. 그럼 타샤는 밤새 참았던 오줌과 똥을 시원하게 해결한다. 그리고 오후에 한번 더 나가고 마지막으로 자기 전에 또 나간다. 일 년에 삼백육십일을 그렇게 한다. 비가 와도 나간다. 잠시 비가 멎거나 약해지는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어떨 때는 힘이 들기도 하지만 귀찮거나 싫지는 않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그렇겠지. 그러나 마당에 풀어놓으면 나도 편하고 타샤도 자기가 원할 때 맘껏 똥오줌을 해결하리라.
타샤는 조심성이 많다. 병원에서는 겁이 많다고 하지는 않고 매우 신중한 아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독특한 특기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땅에 납작 붙는 거다. 산책할 때억지로 목줄을 당기면 타샤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그러고 보니 빠떼루 자세 바로 그거다. 그럼 어찌나 무거운지 꼼짝도 않는다. 목욕을 할 때도 욕실 바닥에서 빠떼루다. 타샤는 털이 많고 빨리 자라서 가끔씩 동물병원에 가서 미용을 한다. 거기서도 타샤는 유명하다. 바닥에 붙어서 꼼짝을 안 해요. 예방접종을 하러 가도 병원 책상에서 또 빠떼루다. 강아지 레슬링 대회 있음 우리 타샤가 금메달인데.
그리고 타샤는 늘 긁는다. 피부병인지 알레르기인지 진드기 때문인지. 한 번은 머리 쪽에 부스럼이 보여 병원에 모시고 가서 뭔지 알 수 없는 주사를 한방 맞고 나니, 삼일 치 약을 먹이기도 전에 긁기를 딱 멈췄다. 이렇게 갑자기 나을 수가 있는 건가. 일주일 정도 지나자 조금씩 다시 긁어 대기 시작한다. 그리 심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완치라고 여겼기에 낙심이다. 하여 오늘 털을 죄다 밀어버리고 피부병이 있는지 전면적으로 살폈는데 수의사 왈 깨끗하네요. 돈 워리.
좋아라 집에 오자마자 다시 오른쪽 뒷발로 오른쪽 앞발 쪽을 긁어댄다. 하긴 오른쪽 뒷발로 왼쪽 앞발을 긁을 수는 없을 테니까. 아,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어쨌든, 타샤를 책상에 올리고 등을 켜고 면밀히 피부를 살피다 보니, 아뿔싸 진드기가, 분명 죽은 시체이겠지만, 오른쪽 옆구리 두 군데 박혀 있는 게 아닌가. 아, 이래서 타샤가 계속 긁었구나. 이제 너를 평안히 해 주겠노라.
진드기는 침인지 주둥인지, 하여튼 뭔가를 살 깊이 박아 넣어 몸뚱이가 잘려도 마지막 몹쓸 부분을 빼내기 어렵다는 걸 어디선가 봤는데, 역시 까맣게 박혀있는 몹쓸 것이 빠지질 않는다. 타샤야 네 가려움을 이 아빠가 해결하고야 말겠다. 계속 여드름 짜듯 짜다 보니 피부가 벌겋게 벗어지고 타샤는 깨갱대고 난리 부르스.
할 수 없이 병원에 전화했더니 일단 데리고 와 보란다. 아니 선생님! 이건 젖꼭지잖아요. 아이고 우리 타샤 얼마나 아팠을까. 아빠가 젖꼭지를 파내다니. 상처만 내고. 낭패. 의사한테 창피하고 타샤한테 미안하고 나의 무식이 한심하고. 잘 오셨네요. 밤새 타샤 젖꼭지 파낼 뻔했잖아요. 큰일 날 뻔했네.
집에 오는 내내 타샤에게 사과하고 집에 오자마자 타샤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을 마구 주고 또 빌고 빌었다. 사람 같으면 결코 날 용서하지 않았겠지만 타샤는 화도 안 내고 날 즉시 이해해 준다. 이래서 사람보다 낫다. 타샤, 쏘리 베리 마치.
타샤를 안으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럼 타샤와 눈을 맞추고 말한다. 타샤, 아빠하고 십 년만 더 건강하게 같이 살자. 십오 년, 이십 년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진심이 아닌 거다. 열다섯 살까지만 내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건 진심이고 가능한 기대다. 타샤와의 일기는 진행형이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