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사장과 대통령

by 파란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바지사장'의 어원에 관한 글을 봤다.

1. '총알받이'의 '받이'가 '바지'로 변했다는 설

2. '핫바지'에서 '핫'이 탈락하고 '바지'만 남았다는 설

3. 자체 동력 없이 예인선에 끌려 가는 '바지선Barge船'의 '바지'라는 설

국립국어원에서는 정확한 어원을 알 수 없다고는 하지만 항간에 떠도는 세 가지 어원 중 어느 것이든 '바지사장'을 설명하는 그럴듯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명의만 빌려주고 실제는 운영자가 아닌 사장"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온 '바지사장'의 뜻이다.

본인의 능력을 증명한 적이 없이 보수/극우의 깃발이 되어 제일 높은 자리에 올라 하는 것 없이 녹을 축내며 사실상 외국에 놀러 다니는 지금의 대통령에 너무 잘 어울리는 의미 아닌가.

대통령 본인의 의지나 정책 추진 동력 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조중동이라는 예인선이 끌려 한국을 이리저리 좌초하게 만드는 모습은 어원 3번설의 꽤나 그럴싸한 근거처럼 보인다.

그럼에는 나라가 그럭저럭 돌아가는 것은 국민의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원동력일 테지만, 그런 현상 이면에는 국가의 근간이 서서히 스러져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명나라의 대표적인 암군인 만력제(재위 1572~1620) 시기를 보면, 3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지 않았던 황제 시기인데도 명나라는 그럭저럭 돌아갔다. 문제는 황제가 정사를 돌보지 않으니 관리가 병이 들어 사임을 하고 싶어도 황제의 결제가 없으니 아파서 죽을 때까지 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퇴임 관료 자리에 신임 관료로 채워야 하지만 이 역시 황제가 결제를 하지 않아 남은 사람들이 자기 몸을 갈아서 인력 부족을 메워야 했다.

그와 동시에 '민력삼대정'이라는, 명 주변에서 일어난 세 가지 큰 전쟁에는 황제가 돈을 쏟아부었다. 북쪽에서 일어난 '보바이의 난'(1592), 남서쪽에서 일어난 '양응룡의 난'(1597~1600),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임진왜란'(1592~1598)이 그것이다. 특히 임진왜란은 만력제의 가장 주된 관심사였는데, 30년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은 주제에 정말 누구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만력제는 신하들의 간언을 물리치고 조선에 군사와 전비를 들어부었다. 그 덕분에 임진왜란은 수습됐지만 명은 이전보다 더욱 명확하게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내치는 정말 신경도 안 쓰면서 바깥 일에만 신나서 달려드는 모습 요즘과 너무 겹치는데, 어쨌든 청대 사가중 한 명은 명나라 역사를 정리하면서 "명은 숭정제 때 망한 게 아니라 만력제 때 망한 것이다"라는 문장을 남겼다. 만력제가 죽은 지 24년 뒤에 청에게 명이 멸망당했으니, 명은 24년 아니, 50년 정도를 서서히 죽어 간 것이다.

지금은 'K-○○○'이라면서 한국의 이름이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지만, 수십 년 뒤 사가들이 말하길 한국에 망조가 들기 시작한 건 2022년 바로 지금이라는 말을 듣지 않길 바랄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집 앞 맛집과 젠트리피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