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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iday Oct 03. 2021

밥하기 싫어 안 했다!!

먹고사는 일 - 일일 식단

해야 할 일들은 늘 줄을 서서 나를 밀고 있고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은 너무 무거워서

자꾸자꾸 아래로 처지는 날.

그런 날은...... 밥 하기 싫은 날.



밥하기 싫은 날 냉장고를 열어보면 마치 출구 없는 미로에 빠진 기분이 든다.

뭘 만들어야 하나...

음식 재료는 다 있긴 한가...

무엇부터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명상하듯 냉장고 안을 한참을 들여다 보아도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런 날은 Pantry 앞에서도 작아진다.

문 앞에서 적당한 먹거리를 찾지 못해 여기저기 눈길을 주다 보면

항상 제일 먼저 나와 눈을 맞추고 나를 부르지만, 항상 애써서 외면하고 있는

애증의 먹거리가 오늘도 제일 먼저 인사를 한다.


그래서 아침은......

애들은 안 먹여도 남편에게는 끓여준다는 '라면'

마지막으로 먹었던 라면이 언제였는지 빨리 되감기를 해본다.

일주일이 지났으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뭐...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면서 선택!

마음을 정했으니 반갑게 한번 안아주고 한 끼를 부탁한다. 잘 때워주렴.


 아침 먹고 나서 계속 작업실에 틀어박혀 점심 줄 생각을 안 하니, 늘 배가 고프지만

요리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남편이 햄버거 쿠폰을 찾아서 'Buy 1 Get 1 FREE'

푸짐한 한 끼를 사서 들고 들어왔다.


그래서 점심은......

오랜만에 신선한 햄버거. 점심 해결!




점심을 먹으며 '저녁은 뭘 먹을까' 물어본다.

보통은 가족들에게 묻지 않고 식사 준비를 하는데 , 이렇게 묻는다는 건, 집에 먹을게 마땅치 않거나

오늘은 밥 하기가 쉽지 않다는 무언의 메시지. 평소 눈치가 정말 없지만 이런 메시지는 잘 알아듣는

남편과 딸은 바로 '뭐 사다 먹을까'로 답을 하고 바로 한. 중. 일. 양식의 메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서로 소심하게 의견을 제시해본다. 음식에 별로 진심이 없는 우리 가족은 메뉴 선정에 갈등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Chinese Food!


오늘은 , 단순하게, '밥 안 하는 날' 먹은 끼니에 대한 기록을 하기로 하고 글을 정리하고 있는데

자꾸 내가 왜 밥을 안 했나 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전업주부'라는 이름을 달고 몇십 년을 살아온 오랜 습관이 이렇게 생각을 지배할 수 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나도 살아온 세월만큼 그동안 참 많은 '틀'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앉아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밥을 몇십 년 했으면 가끔 그냥 이유 없이 안 하고 싶을 때도 있는 거지.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가끔 그냥 이유 없이 훌쩍 떠나고 싶을 때도 있는 거지.

가족의 밥줄이지만 회사 가기 싫을 때도 있는 거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싶을 때도 있는 거지.

그림이 좋아 평생 그리지만 그림 팔아서 돈 벌고 싶은 맘이 있는 게 당연한 거지.


그래서...

오늘은 그냥 밥 하기 싫어서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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