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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iday Sep 21. 2022

첫 미국 기차여행

Coast Starlight Train - Seattle to S.F

Coast Starlight Train - Amtrak -  Seattle 에서 San Francisco (Emeryville) 까지.

기차 시간표를 보니 출발시간은 시애틀에서 아침 9:50, 도착시간은  다음날 아침 S.F 에 8:30.

하루를 꼬박 잡아먹는 스케줄, 23시간...... 할 수 있을까?  한번 해보지 뭐...


처음 이 기차여행을 생각한 건 사실 꽤 오래전 일이다.  

그동안 미국에 살면서 여행할 때는 주로 비행기나 자동차를 이용하고 기차나 고속버스 같은 교통수단은 이용할 기회가 별로 없다 보니 기차여행에 대한 나름의 로망이 내속에서 계속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국토횡단을 하면 어떨까? 캐나다 횡단은? 내친김에 시베리아 횡단?  횡단에 한이 맺혔나......

실현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더 편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일정도 생각해보고 유튜브도 찾아보며

언젠가 할지도 모를 여행에 대해서 달콤한 상상만 계속 내 마음 저 깊은 곳에 쟁여놓고 꺼내보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 친정엄마가 미국 방문하셨을 때, 동부 여행을 준비하며 미국 지도를 훑어보다가 지도에서 기찻길 표시를 보았다. 그래, 기차여행도 좋지 기차로 가면 얼마나 걸릴까...

대충 찾아보니... 서부에서 동부까지 80시간, 거기다 기차 요금이 1인당 $1500(편도)이다.

무슨 계산법일까?

같은 거리를, 5시간 걸리는 비행기 왕복요금이 $400 정도인데, 기차는 80시간에 편도 요금이 $1500이다.

웬만해야지... 그때는 단순 계산으로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깨끗이 접고, 빠르고 저렴하게,

패키지 관광으로 엄마와 둘이 동부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저 말도 안 되는 비용과 시간의 '국토횡단 기차여행' 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며 '뭔가 특별함이 있겠지..., 느리게 가보는 것도 해볼 만할 거야...' 라며

내 여행 리스트에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몇 해 전 은근슬쩍 저 기차여행에 대한 남편의 의중을 떠보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Why?'

그래... 내가 생각해도 '왜?' 더 느리게 더 비싸게 여행을 할까 설명할 수가 없어서 포기했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휴가를 캐나다  밴쿠버에 사는 조카를 보러 가기로 하고 여행 계획을 짜는데

지도에 또 기찻길이 보인다. 그래서 또 대충 찾아보니 밴쿠버 아래쪽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22시간... 해볼 만하다. 기차요금은 $800 정도(편도 but 2인) 역시 비싸지만 뭐... 해볼 만하다.

다시 한번 은근슬쩍 남편의 의중을 떠보았는데 몇 년 전보다 기운이 많이 빠졌는지 꽤 긍정적이다.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계획 잡고, 티켓 예매하고 나니 여러 가지 이유로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미국에서의 첫 기차여행의 설렘,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결제금액의 액수가 주는 충격... 등등

샌프란시스코에서 밴쿠버까지는 비행기로, 밴쿠버에서 조카가 살고 있는 밴쿠버 아일랜드 까지는

배로 2시간. 조카집에서 2일 지내고 다시 밴쿠버로 나와서, 학교 선배가 살고 있는 시애틀로

가기 위해 Flix Bus를 타고 시애틀까지 가는데 국경을 넘으며 입국절차까지 해야 하니 5시간 정도가 걸린다.

긴 시간이지만 운전을 하지 않아서 몸과 마음이 편하다 보니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2일 동안  선배님 댁에 머물며(감사하게도 차까지 빌려주셨다) 시애틀의 숨은 커피 맛집과 도시 안의

작은 공원들을 구경하며 이틀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왔다.

기차역 대합실 내부는 여느 기차역 대합실처럼 높은 천장이 있고, 실내는 넓고 깨끗했다.

시애틀 킹 스트리트 기차역은  1900년 초에 지어질 당시에는 대리석과 샹들리에, 모자이크 장식 등으로

화려한 모습을 자랑했으나 열차 이용객이 줄어들면서 관리가 쉬운 플라스틱  인테리어로 교체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 후 통근열차역이 생기면서 유동인구가 늘어 시 예산의 도움을 받아 처음과 똑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예전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엿볼 수 있을 만큼 많이 복원되었다.

기차 티켓은 Amtrak site에서 여행 날짜 한 달 전에 구입을 했는데, 생각보다 이용객이 많아서 매진된

날짜가 많았다. 기차 이용객이 이렇게 많은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좌석의 티켓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일반 좌석 (Coach  ) 비즈니스 좌석 (Business  ) 침대칸 (Room )

일반석은 말 그대로 제일 저렴한 티켓이지만 좌석 간의 공간도 넓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트레이도 있다.

비즈니 좌석은 일반석보다 자리가 좀 더 넓고 의자에 붙어있는 트레이 외에도 접을 수 있는 회의 테이블이 있고 노선과 등급에 따라 음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침대칸은 인원수에 따라서  Roomette (2인용), Bedroom (2인용), Family Bedroom (4인용).

Roomette은 가장 작은 침대칸으로, 서로 마주 보고 앉는 의자를 잘 때는 서로 붙여서 침대로 만들고 머리

위에 접혀있는 벙크 베드를 펴서 2층 침대로 만든다.   

Bedroom 은 Roomette 보다 2배 넓고 팔걸이의자가 하나 더 추가되고 샤워룸과 화장실이 객실 안에 있다. Family Bedroom 도 샤워와 화장실이 룸 안에 있고 4명까지 한방에서 잠을 잘 수 있다.  

그 외에 복도에도 화장실이 따로 있고 타월과 욕실용품이 제공되는 공용 샤워실도 있어서 침대칸 이용승객에

한해서 언제든지 샤워가 가능하고 낮시간 동안 따듯한 커피와 물을 항상 제공하고 있다.

기차에 타기 전에 혹시 몰라서 마실 것과 간식을 조금 샀는데 쓸데없는 짓을 했다.

우리는 2인용 Roomette을 예약하고, 기차에 타서 방 번호를 찾아서 들어갔는데...

기차 내부는 뭐랄까 좋게 말하면 레트로 감성, 기차가 언제부터 운행을 했는지 한눈에 그대로 볼 수 있는

인테리어로 7~80년대 느낌이다.  하지만 노선에 따라 다른 도시에서는 신형기 차가 운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방은 가장 작은 침대칸임을 증명하듯 정~~ 말 작았다.  의자 두 개가 딱 마주 보고 있고 머리 위에는

접혀있는  2층 침대, 마주 앉은 의자 사이에 접고 펼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있다.

기차가 출발 하자 담당 직원이 방마다 돌아다니며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하면서 열심히 안내를 한다.

기본적인 시설 이용안내, 식사시간에 대한 안내, 주의할 점 등등 그리고 잘 때는 와서 침대 셋업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한다. 대충 가방을 정리하고 앉아있으니 또 다른 직원이 와서 식사시간 예약을 받는다.

식당칸에 손님이 몰리는 걸 막기 위해 손님들에게 미리 식사시간 예약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는 배가 고파서 가장 빠른 시간에 점심 예약을 하고 복도에 비치되어있는 커피를 가져다 마시고 있으니 열차 내 안내방송이 나온다.  남편과 나를 절망시킨 안내방송... 인터넷이 안된단다... 오, NO #%>@*><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했었는데 연결이 원활치 않아 손님들이 컴플레인이 많아서... 아예 끊어버렸단다.

상식적으로 와이파이 연결이 원활치 않아서 승객들이 불만이 많으면 연결이 잘되도록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서비스를 안 하기로 했단다. 누구의 결정인지 정말 명료하다 해야 할지... 쿨 하다 해야 할지.

요즘 세상에 당연히 인터넷이 제공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안된다고 하니 계획했던 일이 좀 차질이 생겼다.

남편도 잠깐씩이라도 회사일을 좀 했어야 하고, 나도 이런저런 업데이트를 해야 했는데 모두 못하게 생겼다. 휴가니까... 그냥 일하지 말고 생으로 놀라고 하는 Amtrak의 배려라 생각하기로 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창밖의 풍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보니 예약한 점심시간이다.


식당칸으로 가니 직원이 테이블로 안내를 하는데 다른 손님과 합석을 시킨다, 합석 이라니... 이 또한 레트로 감성이다. 식당칸 테이블이 한정적이기도 하고 또 기차여행의 여유로운 감성으로 식사시간에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 보라며 직원들이 혼자나 둘이 온 손님들을  다른  손님들과 늘 합석을 시켜준다.

우리 앞에 앉은 중년의 미국 아주머니는 다른 주에서 학교 다니는 딸의 기숙사 이사를 돕기 위해 혼자 여행을 한다고 했다. 몇 번의 합석 후에 깨닫게 된 '테이블 합석'의 자연스러운 대화의 흐름은 먼저 간단한 통성명을

시작으로 어디서 출발했고 어디로 가는지,  출발지와 도착지에 대한 이야기, 기차여행에 대한 경험, 현재 하고 있는 일, 가족과 친구 이야기... 여기까지 하면 대충 식사가 끝난다.  대부분은 한번 보고 말 사이다 보니 개인적인 이야기는 상대가 오픈하는 한도 내에서만 이야기하고 너무 깊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침대칸 이용승객들의 식사는 티켓 가격에 포함되어있고 음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다. 사실 비행기 기내식 정도의 음식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만족했다. 모든 식사에 음료와 디저트가 포함되었고 저녁식사는 애피타이저도 포함된 3코스 식사가 제공되었다. 커피와 소다, 주스 등은 식사하는 동안은 무제한 제공되고 맥주나 와인 등의 주류는 첫 번 오더는 무료이고 두 번째 오더부터는 지불을 해야 한다.

식사 후에는 소화도 시키지 못한 채 좁은 객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넓은 창문으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Observation 기차 칸으로 가 보았다. 의자들을 큰 창문을 향하게 돌려놓아서 그냥 넋 놓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 좋고 자리도 넓어서 편히 있을 수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웬만해선 움직이지 않는다.

겨우 두 자리를 찾아 앉아서  지나가는 풍경 속에 있는 산과, 물과, 낯선 마을들을 보다 보니 시간이 어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시애틀에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까지 22시간을 달리면서 17개 정도의 역에 정차를 하고

스케줄에 따라서 중간에 좀 큰 도시에 정차를 하게 되면 20~30분 정도 시간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정에 쫓겨서 가다 보니 예정시간보다 1~2시간 연착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저녁식사 후에 직원이 와서 침대 셋업을 도와주었는데 마주 보고 있는 의자의 손잡이를 조절해서 평평하게

만들고 그 위에 얇은 매트리스를 깔고 깨끗한 베개와 담요를 주고, 이 층 침대도 마찬가지로 준비해 주었다.

룸은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실내등과 에어컨 조절도 가능하고 전기 아웃렛도 있어서 전자기기 충전도 가능하다.  기차의 침대칸에서 잠을 자는 것에 대한 승객들의 리뷰는 크게 반반으로 나뉘었다, 기차의 소음과 계속 반복되는 진동이 숙면에 방해된다는 사람들과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사람들. 잠자리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나는 2층 칸에서 기차의 소음과 진동에 별 영향을 안 받고 숙면을 할 수 있었고, 나름 잠자리에 예민하다고

주장하던 남편은 아래층 칸에서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코를 골며 떨어졌다.

기차여행을 준비하면서 기차 안에서 일출과 일몰을 꼭 보고 싶었는데 일몰은 식당칸에서 저녁을 먹으며 볼 수 있었다. 저녁식사 시간에 기차는 오레곤주의 중간쯤을 지나고 있었는데,  어느 바다같이 넓은 호수의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떨어지면서 맞은편 산에 반사되던 황금빛 해 그림자의 화려한 빛을 눈에 담으려 다들 저녁을 먹다 말고 창가로 모여들었다.  저녁을 먹으며 미리 확인해본 다음날의 일출 시간은 오전 6시 정도,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새벽에 눈을 떠보니 5시 30분이다. 혼자 살짝 나가려고 준비하는데, 이 높지도 않은 2층 침대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올라갈 땐 쉬웠는데... 끙끙 용을 쓰며 온몸을 굴려서 간신히 내려와, 자고 있는 남편이 깨지 않게 살짝 나와서, Observation Car로 가 보았다.  

아니, 이 사람들이 잠도 안자나? 그 이른 시간에 다들 일출을 보려고 온 건지 아님 거기서 밤을 보낸 건지 Observation칸에는 사람들이 가득해서 겨우 자리를 하나 찾아 자리 잡았다. California 북쪽 어디쯤 지나고 있는 거 같은데 숲과 강이 계속 지나가고 저 멀리 낮은 산과 넓은 밭의 끝자락이 만나는 곳에 붉은색이 올라오니 사람들은 또 창문으로 모여든다. 매일 보는 해와 하늘도 배경이 다르니 이렇게 또 새롭게 보인다.

해가 낮은 산 위로 한 뼘쯤 올라왔을 때 남편이 커피를 가지고 왔다, 커피 마시며 보는 풍경은 항상 옳다

더구나 기차 안에서 라니... 마지막 식사로 푸짐한 아침을 먹으며 시간을 보니 2시간 정도 후면 도착이다.

22시간을 어찌 보내나 걱정했는데(사실 연착해서 거의 24시간이 걸림) 주는 밥 먹고 한잠 자고 나니까 언제 지나갔는지... 아쉽기까지 하다. 나는 워낙 기차여행에 로망이 있었고 저렇게 한 곳에 묶여서 여행하는 게 체질에 맞는 사람이라 24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이라도 얼마든지 기차여행이 가능하지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좁은 공간에 오래 있는 게 힘든 사람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든 사람들, 일없이 멍 때리는 게 어려운 사람들 에게는 추천하기 힘든 여행이다. 하지만 막상 경험해보면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남편도 첨에는 이번 기차여행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고, 그냥 자포자기 상태로 따라나섰는데 막상 여행을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지루하지 않았고(인터넷 연결이 없었음에도 ^^)  다음번에도 하루(24시간) 정도의 기차여행은 이제 충분히 감당(?)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한다.  식사 테이블에 합석했던 미국 초등학교 미술 선생님이 온갖 미사여구로 가을과 겨울의 기차여행을 강력히 추천했던 것도 다음번 기차여행을 함께 계획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번 기차여행을 준비하면서 여기저기 많은 기차 여행정보들을 찾아보다 보니까 유튜브 알고리즘에 온세계

기차여행이 다 올라온다. 가을에는 동부에서 단풍기차여행도 해보고 싶고, 겨울에는 캐나다의 설국 기차도

타보고 싶고, 시베리아 퍼스트 클래스 기차여행도 멋질 거 같고, 유럽의 기차는 또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이 힘겨운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삶의 자세도 바뀌고, 인생의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나도 그중 한 사람. 무엇이든 하고 싶을 때 하고, 어디든 가고 싶을 때 가기로 했다.

다음번 기차여행 후기를 하루빨리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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