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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me Jan 30. 2024

엔지니어의 삶에 대해 질문하다

칸필터 한대곤 대표님과의 대화

CES에서 두 번째로 만나본 창업자는 칸필터의 한대곤 대표님이다. 공교롭게도 한대곤 대표님도 두 번의 창업을 경험하신 연쇄창업자이셨다. 한대곤 대표님은 서울대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시고 포항공대에서 재료공학 박사를 하신 후 뉴저지 대학에서 포닥을 하고, 국내 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시다가 DPF 기술을 활용한 자동차 매연 정화 솔루션으로 첫 번째 창업을 하셨다. 두 번째로 창업한 회사인 칸필터는 DPF 기술로 요리 매연을 해결하는 회사로, CES 2024에서 해당 솔루션으로 혁신상을 수상했다. 




필자: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회사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대곤 대표님: 칸필터는 DPF 기술을 통해서 요리 매연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입니다. 요즘 공기 정화 기술이 많이 나와있죠. 하지만 공기 청정 기술이 극복하지 못한 환경이 있는데요, 바로 유증기와 수증기가 많은 환경입니다. 왜냐하면 공기 청정기의 원리가 표면에 정전기를 이용해서 미세 먼지를 잡는 건데, 유증기/ 수증기가 있으면 미세 먼지가 잘 안 붙기 때문이죠. 마스크를 매일 바꿔 쓰라는 게 위생 때문인 것도 있지만 습기가 차서 필터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되기 때문인 것과 비슷한 거죠. 

요리할 때 발생하는 매연은 중년 여성 폐암 발병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고, 삼겹살 1kg을 구울 때 발생하는 매연은 담배를 1000개비 피우는 것과 같은 수준인데, 유증기와 수증기가 워낙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요리 중에 공기 청정기를 틀면 성능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거죠. 기존의 팬으로도 요리 매연의 60~70%밖에 잡을 수 없고요. 칸필터는 이렇게 기존의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요리 매연 문제를 DPF 기술로 해결합니다.


필자: 요리 매연이 그 정도로 심각한 줄 몰랐는데요, 이걸 DPF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니 흥미가 가네요. 혹시 DPF 기술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한대곤 대표님: 예전에는 차에서 시커먼 연기가 나왔는데 지금은 안 그러잖아요, 그게 DPF 기술 덕분이에요. DPF 기술은 배기가스 중 미세 매연 입자를 포집해서 제거하는 배기가스 후처리 기술인데요, 매연물질이 필터와 계속 반응하여 연소되는 방식으로 매연물질이 제거됩니다. 기존 필터는 유증기, 수증기 환경에서 성능이 급격히 하락하고 계속 교체해줘야 했던 것과 달리 DPF 기술은 차량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교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강력한 장점이죠. 두 번째 창업에서는 요리 매연을 해결하는 데 DPF 기술을 적용했는데, 이를 인정받아 혁신상을 받았습니다.


필자: 상당히 획기적인 기술이네요. 혁신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DPF 기술에 발을 들이신 계기가 궁금해요.

 

한대곤 대표님: 제가 국내 대기업 연구원으로 입사했을 대, 저는 재료 공학과 관련된 학회는 안 간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왜냐하면 재료 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포닥까지 했기 때문에 시야를 확장할 필요를 느꼈던 거죠. 그래서 바이오 학회, 선박 학회, 이런 다른 분야 학회들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면 열에 여덟 아홉은 하나도 모르는 말이었죠(웃음). 그래도 꾸준하게 들으러 다니다가 자동차 학회를 가게 됐어요. 자동차 학회를 갔더니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가 들렸어요. 앞으로 DPF를 달지 않는 디젤 자동차는 생산을 못 한다는데, 지금까지 나온 기술 중 가장 유력한 것이 세라믹 필터라는 거예요. 제 전공이 세라믹이었거든요. 그거 딱 듣고 나서 DPF 기술을 하게 됐어요. 




필자: 역시 기회는 열심히 찾아다니는 노력을 기울여야 찾을 수 있는 거군요. 포닥까지 하셨을 정도면 공부를 오래 하셨는데, 어떤 분야를 공부하셨는지 궁금하네요. 


한대곤 대표님: 저는 재료공학부에서 최초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학위를 받았어요. 그때는 그때는 그런 게 없어서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과에 수업을 들으러 다녔어요. ‘C언어란 무엇인가’라는 책부터 시작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필자: 재료공학 분야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니 생소하네요. 어떻게 분야를 정하신건지가 궁금해요. 

한대곤 대표님: 실험을 1년 정도 하다 보니 실험 결과를 A로 해석하면 A가 되고, B로 해석하면 B가 되는데 박사논문은 대부분 A가 맞다는 논지를 가지고 내용을 갖다 붙이는 식으로 쓰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박사 학위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A냐 B냐를 확인하는 게 더 중요했고, 그러려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필요했어요. 그때 주변에서 저한테 너 박사 학위 못 딸 수도 있다는 말을 많이 했죠. 어쨌거나 저는 결국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미국에서 재료 공학 쪽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는 사람이 필요해졌는데 그런 사람이 정말 드물어서 풀펀딩을 받고 포닥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뉴저지 주립대로 포닥을 가서 3년 있었고, 그다음에 국내 대기업 해외 우수인력 리쿠르팅에서 발굴되어 재직했어요.


필자: 소신을 가지고 나아가시는 게 존경스럽네요. 그렇다면 대기업을 다니시다가 창업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한대곤 대표님: 대기업에 다닐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진이 목적이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이나 자긍심을 갖는 경우는 드물었어요. 그러다 보니 ‘엔지니어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 빠졌어요. 사실 엔지니어의 인생은 물질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보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여요. 밤새 실험하고 일하다가 50대 중반 되면 잘려나가고. 

그러면 엔지니어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저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기술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가깝게는 대한민국을 강하게 만드는 것, 이런 것에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실현 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대기업에 다닐 때 DPF 기술을 100% 수입해야 했는데 그걸 국산화하는 것을 추진했어요. 그런데 기술 개발을 다 끝나고 나니 LG 화학에서 사업을 접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 엔지니어의 삶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고 통닭을 굽겠다고 하고 사표 쓰고 나온 다음에 6개월 정도 치킨집을 했어요. 그러다가 6개월 뒤에 지인이 저한테 연락해서 묻더라고요. DPF 사업은 어떻게 하고 통닭을 굽고 있냐, 좀 더 해야 하지 않겠냐고요. 


필자: 대표님 다운 결단입니다(웃음). 그 후에 바로 치킨집을 접으시고 DPF 기술로 창업을 하신 건가요? 


한대곤 대표님: DPF와 관련해서 제 이름이 들어간 특허가 32개예요. DPF 특허를 30개 넘게 가진 대기업이 사업을 안 하니까 어떤 회사도 DPF를 못하게 되어 버렸죠. DPF 국산화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 DPF 국산화를 막는 꼴이 되어버렸어요. 그걸 깨닫고 통닭은 접고 사장님 찾아가서 “DPF 저 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렇게 DPF 기술 가지고 나와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차량 매연 해결을 위한 DPF 기술을 국산화해서 기존에 일본으로부터 수입할 때는 240만 원이었던 부품 단가를 23만 8천 원으로 낮췄죠.




필자: 지금까지 대표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창업을 통해 국가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느껴지는데요, 대표님에게 창업이란 무엇인가요?


한대곤 대표님: 제게 창업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면, 엔지니어로서 어떻게 의미 있게 살지 고민한 끝에 나온 방법이 창업이었던 것뿐이에요. 저는 사업을 하겠다고 해서 퇴사할 때 아이템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제가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DPF 국산화는 이루어지지 않겠구나 싶어서 달라고 한 거예요. 첫 번째 창업 엑시트 후에는 조금 쉬려고 했는데, 요리 매연 문제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고, 이 문제의 솔루션을 만들려고 하니 방법이 사업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두 번째 창업을 했어요. 창업이든 뭐든 돈을 좇지 마세요. 돈은 따라와야 하는 거예요. 내 마음이 시켜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 것을 해야 합니다. 그게 창업이 되든 다른 방법이 되든 내가 엔지니어로서의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둘지 정말 깊이 고민해봐야 해요.

그리고 특별히 포항공대 학생들에게 덧붙이고 싶은 얘기는 부채의식을 가지라는 거예요. 이미 느끼고 있겠지만 서울대, 포항공대 그런 대학 다니는 학생들이 받는 혜택에는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 있어요. 제가 서울대 다닐 때는 등록금이 18만 원 정도밖에 안 했어요. 그 안에는 시장에서 콩나물 파시는 할머니의 세금도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포항공대나 서울대처럼 지불하는 등록금에 비해 수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면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엔지니어의 삶으로 부채 의식을 덜어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죠. 내가 가진 기술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기술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이런 생각을 해야 내가 매달 받는 월급과 무관하게 삶이 의미 있어져요. 그런데 이렇게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인생이 돼요. 그러니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거죠.


필자: 대표님의 사명감에 다시 한번 감명을 받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공대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한대곤 대표님: 공대생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은, 공대 나와서 엔지니어 되면 의사 변호사 판검사와 연봉만 비교하면 견적이 안 나와요. 그런데 그런 직업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엔지니어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가 있어요. 엔지니어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자신의 흔적으로 인류를 좀 더 건강하고 편하게 만들고,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산다면, 엔지니어로의 삶이 꽤나 괜찮은 삶이 될 거예요.




창업자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엔지니어의 삶과 가치에 대해서까지 고민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특히 한대곤 대표님이 강조하셨던 부채 의식과 자신만의 가치를 좇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이 마음에 남는다. 단순히 창업의 경험을 나눠주신 것뿐 아니라 삶의 영감을 주신 한대곤 대표님께 감사드리며, 물질 너머의 가치를 실현하고 세상에 좋은 변화를 가져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열망이 더욱 강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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