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여울 작가를 좋아한다. 그녀의 글도 좋지만, 공개 강연에서 강의하는 모습을 방청한 이후로는 정여울 작가가 정말로 용기 있고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언제나 열등감을 숨기지 않고, 담담히 공개하기 때문이다. 정여울 작가는 <마흔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나는 어느 조직에도 제대로 속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절망감을 느꼈던 경험을 담담하게 털어놓은 부분이 있다. 조직생활도 잘해보려고 애썼지만,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 오해를 살뿐더러 자신이 회사와는 맞지 않는 것을 알게 되어 상처를 입었었다. 마흔 이후의 조직 생활로 인해 오히려 정 작가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조직에 어울리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데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조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며 직장에서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경험을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베스트셀러 작가조차도 힘든 게 바로 직장 생활인 것이다. 왠지 웃프다.
몇 년 전에 나는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스톱 상태로 몇 달을 보낸 적이 있다. 자의든 아니든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나는 아마도 육체적으로 탈진했던 듯하다.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증에 빠지는 '번 아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체의 기능이 약해져 버렸다.
처음에는 동네 병원에서 환절기 감기로 진찰해줘서 나는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3주 정도 지냈는데, 증세가 급격히 나빠져서 하루 종일 기침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종합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후두염과 기관지염 등 복합적인 증세였다. 종합병원에서 준 약을 먹으면서 증세가 점점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생활을 하긴 힘들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서 보내는 시간이 약 두 달 정도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새로운 직장을 나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대략 3개월가량의 시간을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 채 보낸 것이다. 내가 계획을 했던 휴식도 아니었고, 그 기간 동안은 오직 몸을 회복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므로 내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큰 손실이었다고 생각한다. 쉰 목소리가 조금씩 나아질 무렵에 입사 제의를 받았다. 나는 누워서 보낸 몇 개월이 너무나 지겨웠던 참이었기에, 어디라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다 싶었다. 큰 고민 없이 나는 곧바로 출근일을 협의했다.
막상 출근을 하기로 하고 났더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닌데, 바쁘게 돌아갈 회사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싶었다. 결과적으론 나는 큰 무리 없이 회사 생활에 잘 적응했다. 물론 처음엔 쉰 목소리 때문에 말을 길게 하기가 어렵긴 했지만, 차차 나아졌다.
나는 아무리 힘든 상황을 겪고 있더라도, 금세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냥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자연스레 지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처럼 나 역시 그리했던 것 같다. 물론 건강이 안 좋았던 거라서 남들처럼 자발적 퇴사 이후에 적극적인 힐링을 위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아픈 김에 푹 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말은 그저 그런 뻔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불행조차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라면, 결코 인생에서 실패할 일은 없을 테니까. 또한, 어찌 되었든 우리는 그렇게 쉬었던 기억을 가지고, 다시 또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중요한 건 우리들의 인생은 단 한 번의 시도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지금도 수많은 실수를 하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좌절하지 않는 이유는 앞으로도 수많은 선택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난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당신도 나처럼, 매일 선택하면서 살아갈 테니. 넘어져도, 넘어진 김에 한참을 쉬어간다고 해도, 그것 역시 여러 가지 선택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