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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린 Jul 15. 2022

나의 한계 인정하기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다.”


이 말의 주인공은 tvN 드라마 <마인>의 악인이었던 극 중 한지용이다.

tvN  드라마 <마인> 한지용 역

한지용은 대기업의 사장으로 평소 젠틀하고 사업적인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이미지 메이킹이 잘 되어 있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사실은 서자라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채 길거리 불량배만도 못한 짓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한지용의 취미는 복서를 고용한 뒤에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불러서 1:1로 대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돈을 미끼로 서로 죽기 직전까지 상대방을 때리도록 한 뒤에 본인은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봤다.

사실... 소시오패스

당연하게도 이런 행동은 늘 파국을 부르기 마련이다. 어느 날 한지용은 분노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채 복서들에게 싸움을 계속할 것을 주문했고, 결국 이를 거부하지 못한 복서는 자신의 동생이기도 했던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폭행해서 반죽음으로 내몰게 되었다.


중요한 건 그가 이런 범죄 행위를 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사회적인 상황에 적합한 일부의 모습만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뿐이다. 그러니, 겉으로 보이는 일부의 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남들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을 바탕으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사람들은 한지용이 그룹의 사장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범죄자는 늘 누군가의 이웃, 또는 가족이다. 악명 높은 범죄자의 부모나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해보면, 늘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에요.'라거나 '정말 조용하고 착실하게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착한 사람이었어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놀랍지만, 사실 사람들은 대부분 평소에는 착하다. 문제는 바로 한계에 부딪혔을 때에 어떻게 스스로 조절하고,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 가에 달려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나의 한계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지하려고 한다. 결국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과연 그럴 이유가 있을까?


일하는 동안 나의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때마다 솔직히 고통스러웠다. 아무렇지 않은 듯 힘도 별로 안 들이는 듯한 동료들이 척척 해내는 것과 비교가 될 때에는 스스로가 더 작아 보였다. 그래도 나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부딪혀서 깨지는 민망하고 괴로운 과정을 겪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알게 되는 적이 많았다.


회사의 업무는 사회 트렌드의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결국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읽히고, 직간접의 경험을 통해 인사이트를 키우는 것은 필수이다. 내가 일하는 영역 역시, 트렌드에 맞게 조금씩 변화해 왔다. 그러다 보니, 모든 상황에 늘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나는 멘토(mentor)라고 할 만한 사람을 가져본 기억이 별로 없다. 가끔 좋은 선배 혹은 사수와의 추억담을 꺼내놓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 부럽기도 했다. 일에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쉬운 방법들을 알려줄 수 있는 멘토가 없다 보니, 늘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결국 나의 한계를 아는 일은 나의 어떤 부분을  채워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앞으로 내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지 생각해볼  있는 계기가 되었던  같다.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는 ,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부족했던 나를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멋지게 표현할  있다면  좋으련만. 사실은 일하면서 그전에 해본 적이 없던 일들에 조금씩 도전하여, 결과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찌 되었거나 결과를 내는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지금까지 나의 경험이 이루어진 이다.


우린 불완전에서 완전을 향해 가는 존재이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면 사는 게 조금은 편해진다.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보다 여유가 있을 때, 일이 더 잘 풀리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조급한 마음으로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나의 한계를 알아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그게 옹골차게 끝까지 할 수 있다고 혼자서 버티는 것보다는 100배는 나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나 경험이 많다고 해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을 망설여서는 안 된다. 어차피 늘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세상에 나타난다. 함께 논의할 사람이 있다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나는 세상에 자신의 인생을 대충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저 사람들은 가끔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어서, 그로 인해 실패와 좌절을 반복하는 것에 지치는 것 뿐이다. 그럴 때는 그냥 내 한계를 인정하자. 그리고, 일단 끝까지 해내자. 완벽보다는 완성에 의미를 둘 필요도 있다. 이번에는 좀 별로인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과정 속에서 분명 배울 수 있는 점이 생긴다. 그걸 바탕으로 다음번에 또 할 때에는 좀 더 잘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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