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가끔 보면 게임 주인공 같아요. 매번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네요.”
가끔 직장생활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는 지인이 내게 한 말이다. 일터에서 조금 편안해질 만하면, 또 새로운 고비가 나타나는 날을 보고 나서 한 말이리라. 솔직히 나라고 다르겠는가. 매일 새로운 일이 터지는 골치 아픈 곳, 그게 바로 일터다. 어쩌면 어려움이라는 게 삶의 기본값(default)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게임을 떠올리면, 스테이지에서 실패해도 다시 처음부터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 영화 <쥬만지> 속 주인공들이 죽음을 맞이해도 새로운 생명이 주어져 다시 게임에 참여하는 장면을 보면, 왜인지 그 과정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 삶에서는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약 광고처럼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은 순간이 셀 수 없이 많다.
마치 게임 주인공처럼, 나 역시 일터에서 맞닥뜨리는 장애물들을 차례로 겪고, 넘어보려 애쓰고, 때로는 피해 가며 살아왔다. 그렇게 하나씩 경험을 쌓다 보니, 지금의 나를 이루는 스킬과 능력이 생겼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 인생의 굴곡도 억울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종종,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을 한다. 기쁘거나 그렇지 않은 일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아마도 무의식 속 바람이나 선호가 행동으로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고비를 맞았던 순간도, 그 뒤 맞이한 선택들도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는 중요한 조각이었다.
뒤돌아보면, 내 선택들에는 공통적인 분모가 있었다. 바로 ‘관심’이다. 뒤죽박죽인 것 같던 커리어 패스도, 관심에 초점을 맞추면 일관성이 보인다. 결국 일이라는 건 내 삶에 하나의 궤적을 남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궤적은 각자 다르고, 같을 필요도 없다.
예전에 친구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 이름을 말하며 부모님도 아는 회사라서 기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직장의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신입 시절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경력직으로 옮긴 뒤에는 이전 직장보다 조건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결국 그 모든 경험이 나에게 보탬이 된다. 제자리에 머무르는 사람은 드물고, 어디든 옮길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선택에는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그 아쉬움 덕분에 다음 선택에서 조금 더 신중해진다. 실패와 시행착오 역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아닌 것’을 제거하며 해답에 더 빠르게 접근하는 것처럼, 삶도 시행착오 속에서 방향을 잡는다.
나는 늘 ‘내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나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유리함이란, 반드시 사회적 성공이나 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 바람에 맞춰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끔, 이루어진다는 말의 오묘함을 느낀다. 그 과정 속에서 흔들리고, 때로는 뒤틀리며 걸었지만, 결국 방향은 내가 바라는 쪽으로 흐른다. 중요한 건 어느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이다.
하지만 계속 걸어가기 위해선 중간중간 쉬는 법도 알아야 한다. 등산할 때 흙바닥만 보고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면 오히려 위험하다. 전방 시야를 확보하고 주변을 살피면 장애물도 감지할 수 있고, 풍경도 즐길 수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자주 가던 파주 출판 단지의 한 카페 벽에는 헤르만 헤세의 시가 적혀 있었다.
물을 주며
헤르만 헤세
다시 한번, 여름이 가버리기 전에
우리, 정원을 가꿉시다.
꽃들에게 물을 줍시다. 벌써 생기를 잃고 있어요.
곧 시들 거예요, 어쩌면 내일 아침일지도 모르죠.
다시 한번, 다시 세상이
광폭해지고 전쟁으로 비명을 지르기 전에,
우리, 아름다운 것을 즐기고 노래를 불러 줍시다.
세계대전 중에도 헤세는 ‘현재의 아름다움을 즐기자’라고 썼다. 나도 눈물이 날 만큼 힘든 순간이 와도, 그 눈물을 닦고 다시 걸을 수 있는 담대함과 꾸준함을 갖고 살고 싶다.
사람들은 단순히 편안한 선택만 하진 않는다.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어려움에도 용감하게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심리학자 폴 블룸은 <최선의 고통>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가치 있는 만큼 고통스럽다. 의미 있는 고통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고, 불행에서 벗어나게 한다.” 인간은 쾌락에만 머물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고통을 통해 성장하도록 진화한 존재다.
왜 어떤 사람들은 안전지대에 머물지 않고, 어려움이 예상되는 일에도 뛰어드는 걸까? 사람들이 바보라고 수군거릴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거나 미지의 모험을 선택하는 걸까? 그 도전과 용기가 문명과 삶을 발전시켰다. 전쟁 속에서 개발된 생리대, 버버리 코트, 바셀린처럼 말이다.
지금 내 삶이 어렵더라도, 내가 내리는 선택을 믿는다. 그 끝에는 나의 바람이 있다. 내 무의식적인 생각과 행동이 다음 선택을 만들고 있으니, 항상 나를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