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린 Jul 13. 2022

나의 모든 선택은 나에게 유리하다

“언니는 가끔 보면 게임 주인공 같아요. 매번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네요.”


가끔씩 직장생활에 대한 속내를 터놓는 지인 A가 내게 한 말이다. 일터에서 좀 편해질까 싶을 때면, 매번 새로운 고비를 맞이하는 날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솔직히 난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나? 하지만, 매일 새로운 일이 터지는 골치 아픈 곳이 바로 일터이다. 어쩌면, 어려움 그게 삶의 기본값(default)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게임은 스테이지에서 실패할 경우에 다시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영화 <쥬만지>를 보면, 게임 속으로 끌려들어 간 주인공들이 죽음을 맞이하지만 곧바로 새로운 생명이 주어져서 다시 참가하는 상황이 그려진다. 나는 왜 그 영화를 보면서, 시행착오를 거쳐서 다시 해볼 수 있으니 차라리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실제 삶에서는 다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다이어트 약 광고 문구처럼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은 일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마치 미션을 달성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위해서 애쓰는 게임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일터에서의 장애물들을 차례로 맞이한 뒤에 그걸 넘어보려고 애쓰고 때론 피해 가며 지내온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살다 보니, 지금의 나란 사람의 인생길이 그려지고, 하나씩 할 줄 아는 스킬들을 수집하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길에는 곱이곱이 수많은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 인생의 굴곡이 그렇게 억울하기만 한 건 아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일들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나도 깨닫지 못하는 와중에 그 일들이 실제로 이루어진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일이 기쁜 일이건, 그렇게 않은 일이건 관계없이 말이다. 아마도 나의 생각이나 행동, 말이 무의식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생 동안 우리는 항상 무궁무진한 선택의 길 앞에 서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나의 무의식적인 바람이나 선호를 반영했으리라 믿는다.


어른이 된 이후로 과거에 내렸던 모든 선택은 그건 나의 결정이었다. 심지어 그것이 떠밀려서 내린 결정이라고 해도 말이다. 인생길에서 돌이킬 수 없는 고비를 맞이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 뒤에 맞이했던 순간들마다 행해진 나의 선택들의 합이 지금 나의 모습이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그 선택들에는 의외의 공통적인 분모가 있었다. 나의 관심. 그래서 내 커리어도 결과적으로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아주 뒤죽박죽인 커리어 패스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관심에 초점을 맞추면 일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일을 하는 건 결국 내 삶에 하나의 궤적을 남기는 과정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의 궤적은 같은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내 삶을 인정하기 위해서, 그저 내 삶의 궤적을 수용하면 된다. 예전에 한 친구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이름을 말했을 때, 부모님도 알고 있는 회사라는 게 참 기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직장의 브랜드가 중요하니 말이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빛을 발하는 사람을 많지 않다. 신입일 때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도 있고, 경력직으로 옮기고 난 뒤에 오히려 예전에 다니던 대기업에 비해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어느 직장에서의 경험이라도 결국에는 보상을 받게 되어있다. 경험의 축적치란 놀라운 것이니까.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살면서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다. 제자리에 머무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니 그럴 수도 없거니와 어디든지 옮길 수 있는 시대이니 그럴 필요도 없다.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누구나 후회나 아쉬움은 남는다. 나만 유독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런 아쉬운 부분이 있어야 다음의 결정에서도 좀 더 심사숙고할 수 있다. 그리고 정말로 답이 아닌 선택지를 알게 되면, 오히려 답을 찾는 게 빨라진다. 아닌 것을 제외하는 것으로 좀 더 해결책에 빠르게 접근하는 것처럼, 인생의 시행착오 역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나에게 유리하다 마음이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해답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시간이 흐르니, 저절로 해결될 때가 아보이는 이유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 있다. 그리고 각자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역시 의미가 있다. 각자의 인생은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리하다' 말의 뜻이 객관적으로 봤을  인정할  있을 만큼 크나큰 사회적 성공이나  등을 이룬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부분의 일들이 결국엔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나는 가끔 ‘이루어진다’라는 이 말이 얼마나 오묘한지 생각해 본다. 그 말속에는 무언가로 되어가는 과정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 마치 '갈지'자로 흔들리며 걸었던 내 인생도, 그저 내가 바라는 방향대로 움직였던 것이었을 뿐이니 아무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어느 시점에서도 그냥 멈춰 버리거나 그 자리에서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이었다.


그래도 계속 걸어가기 위해서는 중간중간에 쉬어주는 게 필요하다. 등산을 할 때, 절대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흙바닥만 바라보고 걸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위험을 자초하는 자세이다.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정도 전방의 시야가 확보되면 미리미리 장애물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주변 경치를 보면서 걷다 보면 등산이 그렇게까지 재미가 없지는 않다.


예전에 자주 가던 파주 출판 단지의 한 카페의 벽면에는 헤르만 헤세의 시가 적혀있다.


물을 주며

- 헤르만 헤세

다시 한번, 여름이 가버리기 전에
우리, 정원을 가꿉시다.
꽃들에게 물을 줍시다. 벌써 생기를 잃고 있어요.
곧 시들 거예요. 어쩌면 내일 아침일지도 모르죠.

다시 한번, 다시 세상이
광폭해지고 전쟁으로 비명을 지르기 전에,
우리, 아름다운 것을 즐기고 노래를 불러 줍시다.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헤세가 쓴 시라고 한다. 그런 불안한 시기에 '현재의 아름다움을 즐기자'는 이런 시를 썼다니. 나는 아무리 힘들어서 눈물이 날만한 상황이 오더라도,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가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는 담대함과 꾸준함을 갖고 살고 싶다.


사람들은 그저 편하고 쉬운 선택만을 하는 건 아니다. 힘들어도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심리학자 폴 블룸의 <최선의 고통>이라는 책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생은 가치 있는 만큼 고통스럽다. 행복은 의미와 연관성이 있다. 의미 있는 고통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고,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인간은 행복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환희나 쾌락에 머물지 않도록 고통을 통해서 우리가 개선되도록 하는 것이 진화의 본질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본인의 안전지대(safety zone)에 머물지 않고, 어려움이 예상되는 일에도 용감하게 뛰어드는 걸까? 사람들이 바보라고 등 뒤에서 수군거릴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기도 하고,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극지의 모험을 자처하는 걸까?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무모한 사람들의 도전과 용기로 인해 새롭게 개척된 부분이 분명 있다. 넓게 보면, 인간의 문명 역시 그러한 고난의 과정 속에서 양적, 질적으로 성장해 왔다. 예전에 '토크멘터리'라는 인류의 전쟁사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고안된 우스꽝스러운 발명품들 중에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상품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바셀린이나 버버리 코트, 생리대 등이 1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세상에 소개된 제품이라고 한다. 좀 놀랍지 않은가?


살짝 예시를 덧붙이면, 생리대는 애초에 여성을 위한 제품이 아니라 군인들을 위한 상품이었다. 당시의 전쟁은 상대방과 전선에서 서로 참호를 파서 몸을 숨긴 채 대치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참호 속에서 며칠이고 버텨야 하는 군인들이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발명품이었던 것이다. 결국 전쟁이라는 고난 역시, 인간 스스로 자초한 최대치의 비극이긴 했지만, 인간 전체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기회가 되었다.


지금 내 삶이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나를 믿자. 내 선택의 끝에는 내 바램이 있다. 그러니 내가 나를 믿어줘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마음 놓고 선택하는 게 최선이다. 내 삶은 늘 나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니까. 지금 이 순간, 내가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나의 무의식적인 행동과 생각이 나의 다음 선택을 만들고 있다. 그러니 항상 나를 믿자.



매거진의 이전글 오래된 것들로부터 받는 위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