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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린 Jul 12. 2022

오래된 것들로부터 받는 위안

나는 오래된 동네에 살고 있다. 우리 동네는 내가 어릴 적엔 천지개벽할 변화가 있었던 동네였다. 지금은 재건축을 기다리는 최소 30년 이상된 구축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이 되어 버렸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아파트를 둘러싼 나무는 훌쩍 자라서 봄에는 벚꽃 명소가 부럽지 않고, 가을에는 노란 은행길이 펼쳐진다. 우리 단지의 아파트의 높이를 세어 보려면, 머리를 뒤로 확 젖혀야 한다. 그렇게 불편한 상태로 한참을 헤아린 뒤에 나무의 높이가 10층 아파트보다도 높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심했던 어느 봄날에 며칠 전에 세차해둔 자동차에 누렇게 먼지가 앉을 때면, 신축 아파트의 구획별로 잘 정리된 실내 주차장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 동네를 참 좋아한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 보낸 나보다 우리 동네에 더 오랫동안 살고 있는 사람은 짐작컨데 몇 명 없을 거라 믿는다.


20 때에 미국 여행을 갔었다. 그때 동부의  도시에서 현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집은 미국 개척시대  지어진 라서, 어림잡아 200 정도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집주인의 고조부 정도 되는 분이 직접 집을 지었다고 했다. 집주인은 초대한 손님들을 끌고 다니며, 집에 어린 추억들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예를 들면,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을 가리키며 이건 우리 할아버지가 직접 나무를 깔은 거라며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는  같은 것들.


그 당시 다른 미국인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워낙에 미국인들이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문화를 가진 것도 이유였을 테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 모습 그대로임이 분명한 오래된 주택들과 후손들이 그곳을 아끼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너무나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신이 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모습 그대로임이 분명한 오래된 주택들은 내 기억 속에 여전하다.


신축 아파트가 대세인 요즘 같은 시대에 오래된 동네에 대해 이런 식으로 낭만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으니, 정말 투자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부동산 상승 시대에 편승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이제 와서 말해 무엇하랴.


어쨌든,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어릴 적부터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을지언정, 큰 틀에서의 획기적인 변화는 아직까지는 별로 없다. 이 동네에 살면서 좋은 점은 가끔은 익숙하고 오래된 것들로부터 받는 정서적인 위로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것으로부터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내과만 해도 내가 어린 소녀였을 때부터 봐주셨던 여의사님이 아직까지도 혼자 진료를 하고 있다. 하도 어릴 적부터 다닌 곳이라서 내게는 '내과란, 병원이란 이런 곳이구나' 하고 터득하게 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생님은 환자를 진찰할 때, '이렇게 배를 콕콕 누르시는구나, 청진기로 내 장기의 소리를 듣는구나', 환자 베드에 누워서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얼마 전부터 유난히 위와 장이 쓰라리고 아픈 증상이 계속되었다. 혹시 내시경이라도 받아야 하는 건지 걱정이 되어서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병원을 갔다. 사실 내 증상을 말하기가 좀 창피하기도 했다. 구역질과 장 트러블을 동시에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선생님, 부끄럽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와 장을 조절하는 게 잘 안 돼요.”

선생님은 청진기를 내려 놓으시며, “나랑 똑같은 증세가 있어서, 내가 잘 알아요. 부교감신경이 작동을 해서 그런 건데.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몸의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약으로 조절할 수는 없어요. 그건 환자가 스스로 노력해야 할 일이에요. 다만, 증세가 나타났을 때, 그것을 듣고 난 뒤에 약으로 조절해 주는 것은 내가 해줄 수 있어요.”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은 예의 내가 알던 진찰 방식으로 내 몸을 진단 한 뒤에 약을 처방해 주셨다. 약국에 들러서 약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뒤로, 집으로 오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은 늘 알고 있던 진찰 방식이었는데, 이 날은 좀 특별했다. 왠지 마음까지 진찰받은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누군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금세 알아차리는 능력이라도 생기나 보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내 몸도 마음도 내가 돌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날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전혀 뜻밖의 사람이 내 마음을 위로해 줬다. 나는 가끔 이런 식으로 내 주변의 오래된 세상으로부터 받는 안정감 있는 위로의 방식이 좋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세상의 변화는 빠르고, 일터의 생활은 어느 순간이 되면 여전히 불안정하게 느껴지기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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