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들로부터 받는 위안

by 서린

나는 오래된 동네에 살고 있다. 어릴 적, 우리 동네는 천지개벽할 변화가 있었던 곳이었다. 지금은 재건축을 기다리는 최소 30년 이상 된 구축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이 되어 버렸다.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낀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파트를 둘러싼 나무들은 훌쩍 자라, 봄이면 벚꽃 명소 부럽지 않은 풍경을, 가을에는 노란 은행길을 선물한다. 우리 단지 아파트의 높이를 세어보려면 머리를 뒤로 확 젖혀야 한다.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한참 헤아린 뒤에, 나무의 높이가 10층 아파트보다도 높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심했던 어느 봄날, 며칠 전에 세차해둔 자동차에 누렇게 먼지가 앉으면 신축 아파트의 잘 정리된 실내 주차장이 부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동네를 참 좋아한다. 인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낸 나보다 더 오래 이곳에 살아온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20대 때 미국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동부의 한 도시에서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았는데, 그 집은 미국 개척시대 때 지어진 약 200년 된 집이었다. 집주인의 고조부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집주인은 손님들을 안내하며 집 안 곳곳에 어린 시절 추억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을 가리키며 “이건 우리 할아버지가 직접 깐 거야”라며 자랑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른 미국인 집에 초대받았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미국인들의 집에 초대하는 문화 덕분이기도 했겠지만, 오래된 주택을 후손들이 그대로 아끼며 살아가는 모습이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설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대로인 집들은 마음 깊이 여운을 남겼다.


신축 아파트가 대세인 요즘, 오래된 동네에 대한 이런 낭만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니, 투자에 있어서는 할 말이 없다. 부동산 상승 시대에 편승하지 못한 아쉬움이 이제 와서 떠오르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어쨌든 내가 사는 곳은 어릴 적 크고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 큰 틀에서의 획기적인 변화는 아직 많지 않다. 이 동네의 좋은 점은 가끔 익숙하고 오래된 것들로부터 받는 정서적 위로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것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내과만 해도 그렇다. 내가 어린 소녀였을 때부터 진료를 봐주신 여의사님이 아직도 혼자 진료를 하고 계신다. 어린 시절부터 다닌 곳이라, 내게는 ‘내과란, 병원이란 이런 곳’이라는 것을 배운 장소이기도 하다. 진료를 받을 때면, ‘이렇게 배를 누르고, 청진기로 장기의 소리를 듣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얼마 전, 위와 장이 유난히 쓰라리고 아픈 증상이 계속되어 고민 끝에 병원을 찾았다. 사실 내 증상을 말하기가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구역질과 장 트러블을 동시에 겪고 있었으니까.

“선생님, 부끄럽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와 장이 잘 조절되지 않아요.”

선생님은 청진기를 내려놓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랑 똑같은 증세가 있어요. 부교감신경이 작동해서 그런 건데,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몸 반응은 사람마다 달라요. 약으로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고, 환자가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죠. 다만 증세가 나타났을 때, 약으로 도움을 주는 건 제가 해줄 수 있어요.”


그 뒤, 선생님은 평소처럼 몸을 진단하고 약을 처방해 주셨다. 약국에서 설명을 듣고 집으로 오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늘 익숙했던 진찰이었지만, 이날은 왠지 마음까지 진찰받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금세 알아차리는 능력이 생기는 모양이다. 선생님의 말씀이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내 몸과 마음은 내가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사람이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나는 가끔 이런 식으로, 오래된 주변 환경에서 받는 안정감 있는 위로가 좋다. 세상의 변화는 빠르고, 일터 생활은 어느 순간 불안정하게 느껴지지만, 익숙한 것들로부터 느끼는 작고 안정된 위로가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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