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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린 Sep 12. 2023

직원의 강점에 대한 회사의 바람직한 자세

나는 직장인으로서 우리들은 회사와 무제한의 고용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무제한이라 함은, 나의 모든 역량을 회사가 원할 때마다 제공하는 조건을 의미한다. 단순히 연봉이라는 예상 소득 때문에 우리가 가진 모든 재능을 도매가로 회사에 반드시 넘겨야 하는 타당한 이유는 없다. 회사의 성장에 필요한 자질과 매칭이 되는 인력이 만났을 때, 고용 계약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력서와 면접에서 지원자들은 보통 본인들이 잘 해온 과거의 경험을 있는 대로 끌어 모아서, 해당 직무를 맡을 만한 역량과 경험이 있음을 회사에 선보이기 마련이다. 회사 역시, 지원자의 포지션을 정직원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할 때에는 지원자들의 자기소개의 내용을 믿고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있는 일들을 맡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입사한 이후로 채용 단계에서는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던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맡기는 회사가 종종 있다.


경력자의 경우에는 회사마다 일하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이해하기도 하고, 스스로 해결해 낼 능력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주어진 업무를 잘 해결해 낸다고 해도, 결국엔 '이러려고 이직했나' 싶은 생각이 들며 불만은 쌓이기 마련이다. 신입인 경우, 일반적으로 회사라는 조직 자체에 대한 생경함도 극복해야 하는 데에 업무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거나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경우에는 참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우리들이 회사에서 담당하는 업무는 업무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간에 직장인으로서 유의미한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 때에 가치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가치 있는 일을 했을 때에, 스스로에 대한 자기 효능감이 높아지고, 삶에 대한 만족도도 개선이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듣고 있다. 좀 더 심한 어휘를 사용하자면, 그렇게 세뇌당해 왔다.


나는 우리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담당하고 있을 때에 업무 효율이나 성과가 좋아진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직원들이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님에도 그 업무를 하도록 조종당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No'를 말하며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렇게 해도 회사는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야만 한다. '누가 그 일을 하느냐'가 가끔은 일의 성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업무 담당자가 저성과자가 되거나, 무력감으로 일에 대한 의지를 잃어서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면 회사는 큰 손해를 입게 된다.


며칠 전에 <메타인지, 생각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는 중에 직원들의 강점(Strength)을 바라보는 한 회사의 자세를 발견하고, 감명을 받았다. 컨설팅펌인 딜로이트 미국은 직원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개별 직원마다의 '강점'을 파악하고, 조직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강점을 보다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딜로이트 직원 평가 시스템에서의 강점(Strengh)이란, 당연히 본인 스스로 잘 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에 기반한다. 강점과 관련해서 일반적인 상식과 대치되는 면으로 비록 본인이 잘하는 일이라도 해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면, 더 이상 그 사람의 강점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숙달이 된 업무라고 할지라도, 본인이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명하면, 더 이상 회사는 해당 직원이 그 업무를 계속하도록 지원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해당 업무에 대한 숙련도가 그리 높지 않다고 해도 직원 스스로가 그 업무를 하는 것에 대해 가슴이 벅차오르는 등 강하게 동기 부여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이것은 강점이 발휘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그 업무에서 강점이 잘 발휘되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단순히 (시켜서) 잘 할 수 있는 업무를 그 사람의 강점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예측하듯, 스스로 동기부여가 된 일을 할 때에는 업무에 대한 몰입도나 피드백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진다. 이때에 회사 차원에서 적절한 평가와 지원을 동반한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다면, 업무 효율을 개선하고 긍정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순기능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 질문들은 조직 차원에서 적절하게 피드백을 하고 있는지 꾸준하게 확인해야 하는 질문들이다.


1. 조직 구성원은 본인이 희망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가?  
2. 무엇을 잘 하는지 알 수 있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는가?  
3. 무엇을 더 잘 할 수 있는지에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는가?


인재가 부족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 나의 처지는 내 직무에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오지랖 넓게 관여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 꽤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초기에는 나 역시 대부분의 업무에 대해서 회사를 이해하려고 도우려고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본업에 집중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시간은 소중하다. 지금의 일터에서의 경험은 나의 경력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이후에, 내게 알게 모르게 자연스레 잡일들이 할당될 때마다 'No'를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사람들이 서운해할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거절을 함으로써 그들로부터 감정적인 리액션과 묘한 감정선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이런 의견 개진(이라고 쓰고, 반항이라고 해석하면 된다)들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들 너무나 성인군자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하면 좋을 일을 결코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않는다. 내가 그 일을 하는 것이 '과연 반드시 필요한가?', 그리고 '과연 효율적인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해 냈다. 대신에 내가 맡은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마감시한과 퀄리티 등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이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성공의 가능성과 그 달콤한 열매를 따기 위해서 현재에 인내하고, 희생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회사에 몸 담았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회사는 직원의 노고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당연히 회사의 성장을 통한 내재적, 외부적 동기 부여를 약속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본다.


얼마 전에 <무신사>의 새로운 재무담당자(CFO)가 '직장 내 어린이집 건립보다 벌금을 납부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며, 타운홀 미팅에서 직원들에게 해당 내용을 통보하고, 커뮤니티 앱에서 직원들을 향해 막말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신사의 성장에 헌신했던 직원들에 대한 회사의 당연한 법적인 의무 이행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 결정인 것이다. 결정사항에 대한 회사의 번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내용을 직원들에게 고지하는 방법이 너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여러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게 하려는 포석을 깔아 두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예전에 무신사 조만호 회장이 자사보유분을 직원들에게 무상증여했다는 기사를 보고, 내 글에 언급한 적이 있다. 그때와 비교하면, 참 다른 의사결정이라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나는 그저 회사를 위해 헌신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회사의 성장이 나의 비전과 일치한다면, 그래도 좋다. 경력의 어느 시기까지는 정말 열심히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다만, 그저 회사가 직원과의 약속을 무조건적으로 이행할 거라는 기대는 접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이타적인 조직이 아니다. '선함'이 행동강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태생 자체가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려는 사회적 기업이나 CSR에 열심히인 회사들도 있지만, 결국 회사는 효율을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며 인간적이기보다는 조직을 우선하여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나는 늘 동료들에게 이야기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뚜벅뚜벅 해내면 되는 거야. 그 외에 혹시라도 부당하도 생각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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