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큰일 났어요. 우리 회사 대표가 저한테 회사에서 딴짓하지 말래요.”
H의 회사에서 전체 미팅 중에 대표가 갑자기 ‘회사에서 딴짓하지 말라’고 경고성 멘트를 했다. 회의가 끝난 뒤에 H를 따로 불러서 ‘앞으론 딴생각하지 말라'며, '회사에선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지 말라’ 고 했다. H가 사무실에서 노트북으로 취업 사이트에 접속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대표가 그걸 알고 경고한 거 같다고 했다.
“근데 너희 대표는 네가 회사에서 취업 사이트에 들어간 건 어떻게 안 거야?”
H의 회사는 모든 컴퓨터에 직원의 사용 이력을 모니터링하는 보안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H는 아마도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취업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된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나만 놀라운 걸까?
웬만큼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사내 보안을 위해서 컴퓨터마다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해 놓거나, 사내 인터넷 망을 통해서 특정한 링크로의 파일 유출 여부 등을 확인한다. 예전 회사의 경우에는 사내 메신저를 사용하면, 회사의 보안 담당자가 내용을 엿볼 수 있다고 해서 일부러 카카오톡을 폰으로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직원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회사의 보안 담당자가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서 개별 직원들의 컴퓨터 사용 이력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H의 회사 대표는 H가 취업 사이트에 접속한 걸 우연히 발견한 걸까?
회사에서 외국에 있는 디자인 회사에 외주 업무를 맡기면서 시간당 요금을 청구하는 것으로 계약이 되어 있다 보니 clockify 같은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사용해본 적이 있다. 상대 회사에서 먼저 clockify를 사용하자고 제안해왔다. clockify를 켜놓고 작업을 하면, 그동안 사용한 소프트웨어의 정보와 시간을 자동으로 기록해준다. 사용자는 미리 혹은 나중에 해당 기록과 관련해서 어떤 업무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추가 정보를 기입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거래 정보를 투명하게 확인하고, 기록이 쌓이다 보니 전반적인 업무의 진척도까지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H는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설사 직원이 취업 사이트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그걸 바로 이직의 신호로 가정하고 전체 직원뿐 아니라 본인에게 직접 경고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했다.
“너네 팀장이 최근에 퇴사했다고 했잖아? 인사팀에서 구인 공고를 어떻게 냈는지 살펴봤다고 하지 않았어?”
지난번 H가 나한테 팀장 구인 공고 낸 걸 봤다고 했던 거 같아서 물어봤다. H도 그런 거 같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직장인으로서 반드시 이직이 목표가 아니라고 해도 취업사이트에 올라온 최신의 구인공고를 가끔 확인해볼 수 있다. 관련 기업의 동향이나 업무 스킬, 필요한 자격증 등에 대한 트렌드를 분석하는 게 자기 계발을 위한 좋은 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뭐 다들 재직 중에 이직을 준비하는 거 아닌가.
H의 회사 대표는 직원들을 믿지 못하는 거다. 조직의 역량 관리를 위해서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을 매주 체크하며, 직원들의 업무를 시스템 속에 집어넣고 평가하려고 한다고 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조직원들과 목표를 공유하며, 일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해주는 게 진정한 OKR 도입의 목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앞으론 회사 컴퓨터로는 구인구직 사이트는 접속하면 안 되겠네. 너희 대표는 직원을 잘 못 믿는가 보다.”
K는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표가 여직원과 사내 연애 중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회사는 대표와 세 명의 친구가 함께 창업을 한 스타트업이었다. 창업 멤버들 간의 업무 분담은 꽤 잘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다. 대표는 회사의 얼굴 역할을 하면서 투자 업무를 담당하고, 외부 강의를 비롯해서 활발하게 회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외부 활동을 하고, 다른 멤버들은 각각 재무, 마케팅, 그리고 제품 생산을 책임지는 이사 직함을 갖고 있었다.
젊은 경영진들은 일과 사생활이 구분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다 같이 모여서 무언가를 한 뒤에는 곧바로 아이템화를 시켜서 시장에 선보이곤 했다.
그런데, 회사 안에서 은근히 한 젊은 여직원이 디자인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 관여하고 있었다. K는 그 여직원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어느 날 대표와 여직원이 같은 날에 휴가를 냈다. K는 그때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감이 왔다고 한다. 회사의 모든 직원들은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둘 다 누가 봐도 기념일에 찍은 듯한 사진을 각각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회사 안에서는 드러내 놓고 두 사람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대표의 여자 친구이기 때문에 여러 모로 이사들하고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일, 우정, 그리고 사랑까지 골고루 참으로 흥행요소가 다분한 오피스 드라마가 아닌가. 당시엔 때마침 <스타트업>이라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으니, 트렌디함은 더욱 킬링 포인트이다.
대표는 곧 회사이고, 회사는 곧 대표다.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그렇게 느낀다.
대표는 곧 조직의 비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표의 역량, 즉 리더십과 네트워크에 따라 조직이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가 달려 있다. 나의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줄 수 있는 고객이 누구이건 간에, 내가 이끌고 있는 조직원이 얼마나 되든 간에 대표는 그 무거운 책임감을 져야 한다. 그래서 왕관을 쓸 사람은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나 보다.
애플의 혁신가 정신을 대표하는 스티브 잡스, CEO에서 물러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얼굴인 빌 게이츠, 전기 자동차, 휴머노이드, 우주 관광 여행 등 첨단기술과 상상력의 대명사인 테슬라의 창업자 엘론 머스크 등 스타성과 능력을 갖춘 CEO는 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가장 대표적인 핵심자원이다. 이처럼 조직과 시스템을 갖춘 글로벌 대기업에서도 대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때문에 테슬라의 주가가 출렁거릴 때도 많으니, 투자자들은 왜 테슬라의 홍보 담당자가 엘론 머스크의 SNS를 관리하지 않는지 안타까울 것이 분명하다. 대표의 SNS로 인해 주가가 출렁이는 게 외국의 사례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 SNS에 '멸공(공산주의를 멸함)'이라는 게시글을 자주 올리는 기행으로 스타벅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사랑마저도 차갑게 식게 만들 뻔했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있다. 얼마 전 지방선거 후에도 멸공을 연상케 하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웬만한 중소기업의 경우엔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가 기업의 흥망성쇠에 있어서 결정적이다. 국대떡볶이 사례가 떠오른다.
예전에 취업 컨설팅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스타트업에 취업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창업자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고, 가능하다면 소셜 미디어에 올린 게시글까지 살펴보는 게 좋다고 했다.
물론, 기사나 SNS에 노출된 내용이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대표의 인간됨에 대하여 미리 알아보는 게 중요하단 소리다. 무엇에 중요하냐고? 나의 경력과 그 회사에 있는 동안의 웰빙(Well-being)에 말이다. 미디어에 노출된 콘텐츠에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글에도 살짝 뽀샵 효과가 들어가 있으니 주의하고, 읽으면서는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얼마 전에 무신사의 창업자인 조만호 의장이 1,000억 원의 가치를 가진 자사 주식 보유분을 자회사 직원에 이르기까지 공평하게 무상 증여했다. 근속기간을 기준으로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가장 최근에 입사했거나 인수합병으로 들어온 자회사 직원들까지 포함하여 모두에게 혜택을 주었다고 한다. 지금의 무신사의 배경에는 열정적으로 일해준 임직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 큰 결정임이 분명하다.
창업 초기엔 많은 대표들이 직원들에게 ‘앞으로 사업이 잘 되면,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말하며 고생을 감수해 달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실제로 지킨 사례는 잘 보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회사는 어려울 때가 더 많고, 연초에 세운 계획을 달성하지 못할 때가 더 잦다. 정작 회사가 잘 나갈 때는 처음 약속한 대로 직원들에게 다소라도 보답하기보다는 사옥을 구매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벌이느라 자금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종종 대표가 직원들에게 도저히 실행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과제를 줄 때에는 정말로 난감하다.
대표 중에선 본인은 노력하지 않으면서 직원에게만 새로운 것, 특히 요행의 것들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설프게 알거나 누군가에게 들은 것을 바탕으로 깊은 성찰 없이 ‘이거 한 번 해봐’라고 막무가내의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그런 식의 업무 지시는 문제가 있다.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대표들은 내부의 임직원들이 하는 말은 잘 듣지 않지만, 외부에 있는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들은 정보들은 가치있게 여긴다.
사업하려는 사람이 직원에게만 모든 것을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직원들은 아무래도 의사결정에 대한 한계가 있는 상태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에 대한 상세한 의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종 결정을 해줄 능력이 없는 대표와 일하는 건 정말로 힘들다. 때론 이런 대표들이 본의 아니게 직원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이럴 때는, 대표가 곧 회사의 비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이곳에서 더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늘어난다.
내 회사의 대표는 장사꾼인지, 사업가인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사업가가 되기 위해서 업종을 선택할 때에는 최소한 본인이 잘 알고 있는 것이나 공부를 해서라도 잘 알게 될 만한 분야의 사업을 하는 게 성공 가능성이 높다. 사업가로서의 미션은 단순히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게 아니라, 사람을 상대로 한다는 것에 있다. 대표들은 정말로 어떤 사람들과 소통하며, 관계를 맺을 것인지, 그리고 이들을 고객으로 보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해줄 것인지에 대한 철학을 갖고 사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차이점을 깨닫지 못하면 장사꾼이 될 테고, 이걸 깨닫고 비즈니스를 해나가면 사업가인 것이다.
장사꾼은 단골 고객이나 장기적인 관계에 대한 관심과 투자보다는 단기간에 매출을 일으켜줄 구매자를 확보하는 데에 주력한다. 예를 들어, 요즘 너도 나도 뛰어드는 이커머스의 세상에는 수많은 장사꾼들이 넘친다. 온라인 최저가가 아니면 바로 페이지를 이탈하는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실상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고객에게 전해줄 수 있는 본질적인 가치를 높여야 하는데 말이다.
대표의 철학, 사업을 대하는 자세, 직원들에 대한 믿음과 적정거리의 유지 등 직원으로서 우리의 일터에서 대표로 인해 받는 영향력은 정말로 크다.
당신 회사의 대표가 빌런이라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쯤에서 물어봐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