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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린 Jun 12. 2022

그거 회사가기 싫어병이잖아요

블라인드(blind)라는 직장인 커뮤니티 앱이 있다. 익명성이 보장된 블라인드는 직장인들의 대나무숲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지인들에겐 쉽사리 이야기하지 못하는 일터에서의 고민거리를 익명으로 풀어 놓는다. 몇 주 전 일요일 저녁 무렵에 앱에 접속했다. '월요일인 내일 출근하기 싫다'는 고민 글이 하나둘씩 올라오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되는 것 같네요. 내일 휴가를 내야 할지 고민이네요.”

누군가 글을 올렸다. 그러자 하나 둘 댓글이 올라왔다. 일요일 저녁 아니랄까봐 다른 사람들 역시 본인들도 글쓴이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누군가 ‘회사가기 싫어병’이라는 진단을 남겼다. 나도 속으로 그러한 처방을 내리고 있던 중이었다. 나도 댓글로 ‘저도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네요.’라고 솔직한 마음을 남겨줬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에 '출근하기 싫은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글쓴이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었길 바란다.


제발 월요일 아침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


회사가기 싫어병!


‘회사가기 싫어병’은 단순히 마음의 병이 아니다. 실제로 신체적인 고통을 느낀다. 특정한 기질적 원인 없이 발생하는 신체적 증상을 ‘신체화 증후군’이라고 한다. 회사가기 싫어병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 나타나는 신체적인 통증을 보인다. 신체화 증후군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기 때문에, 회사가기 싫어병 역시 그저 일하기 싫은 배부른 투정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호소하는 이 병의 증세는 여러가지다. 예를 들면, 회사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두통이 심하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자마자 퇴근하고 싶다. 회사에서 집중이 잘 안 된다 등.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회사가기 싫어병’에 걸려본 적이 있다고 본다. 이 사실이 몹시 안타깝다. 이 병은 한번 발현되고 난 뒤에는 주변 환경에 따라서 증세가 호전이 될 때도 있지만, 가히 불치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는 내내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나도 한동안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머리의 절반 정도가 지끈지끈 하루 종일 쑤시는데, 통증의 강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그냥 눈을 뜨고 있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다. 며칠 동안 타이레놀로 어찌어찌 버텨 봤는데 별로 효과가 없었다. 혹시 내가 죽을병에라도 걸린 건가 싶어서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참고 있다가는 진짜 큰일 나겠다 싶어서 어느 병원에라도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한동안 꽤 건강해서 기껏해야 감기나 소화불량 정도로 내과나 이비인후과를 가는 게 전부였다. 웬만해서는 병원을 가지 않는 내가 신경외과/내과 병원을 찾는다는 게 어쩐지 심각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회사 근처에 해당 과목을 진료하는 병원이 있었다.


“혹시 통증이 시작될 때, 번개를 맞는 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그렇지는 않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계속 통증이 느껴지네요.”

“최근에 가정이나 회사에서 심하게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나요?”

“아, 네. 집안일은 아니고,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아요.”

의사가 몇 가지 문진을 더 하더니, 며칠 동안 먹을 약을 처방해줬다.


처방받은 약은 뇌근육 이완제였다. 스트레스로 인해서 뇌 주변의 근육이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두통이 생긴 거였다. 약으로 머리 근육의 긴장도를 완화해 줄 수 있다니! 의사는 내게 앞으로는 되도록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도 했다.


나는 인간의 몸이 참으로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뇌근육 이완제를 먹고 나니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며 컨디션을 떨어뜨리던 두통은 나아졌다. 물론 한두 번 더 병원 진료를 받아야 했다. 두통이 사라지니 삶의 질이 조금은 나아진 듯했다.


누군가 이 병의 완벽한 치료제를 찾아낸 사람이 있다면, 제발 널리 알려달라! 정확한 치료제 없이 뇌근육 이완제나 소화제, 진통제 등으로 버티는 건 너무 힘들다.


회사가기 싫어병은 금요일 저녁이 되면 싹 나은 것 같다가도, 일요일 저녁이 되면 슬금슬금 다시 본색을 드러낸다. 지인 중에 한 명은 팀장님이 월요일 아침만 되면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 있어서 숨이 막힌다고 했다. 사실은 직급 막론하고, 직장인이면 모두가 이 병에 시달리고 있다.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복잡한 경로를 거쳐서 출근하는 것 자체가 고단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회사가 싫어서 병적 증세까지 나타나는 이유는 툭 까놓고 말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거나, 얼굴도 보기 싫은 그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일은 어찌 되었든 간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못 참겠는 건 바로 내 옆의 그 사람이라는 증언은 수도 없이 많이 들어 보았다.


일터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주된 원인이자, 결국 회사가 싫어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인간관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는 결정적인 계기로 함께 일한 동료를 꼽는다. 결국 어느 조직이나 진정한 문제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는 지에 달려있다. 회사와 구성원들은 반드시 조직문화를 관리해야 한다.


“아~ 서터레스!”


중요한 건 일터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그저 정신적인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신체적으로 나에게 직접적인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대처방법을 찾아야 했다.


사람들은 보통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나는 일하다가 머리가 복잡해지면, 잠시라도 사소한 딴짓을 통해 한숨을 돌리려고 해봤다. 점심 식사 후에 사무실 근처를 걷기도 하고, 가까운 까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예쁜 신상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사 온 적도 있었다. 이러한 일터에서의 짧은 휴식이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내가 아는 지인은 회사에서 화가 나면, 탕비실로 가서 카누 3개를 한 번에 타고 조금만 먹고 버린다고 한다. 말 그대로 소소한 일탈이다. 그렇게 숨통을 트려고 노력해봐도, 일터에서의 스트레스는 쉬이 줄이기 힘들다.


스트레스에 대한 여러 전문가의 조언을 종합해 보면, 스트레스를 줄이는 가장 좋은 치료법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스트레스를 가려서 받을 수 있다고? 그렇다면 그건 스트레스가 아니지 않아?’

처음에 이 말을 듣고는,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건 이미 받은 스트레스는 말끔히 해소하는 게 불가능하니, 애초에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의 요인을 없애라는 조언이다. 이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 조언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태생적으로 사회적 동물인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소속감을 느끼길 원한다. 아주 개인적이고 내향적인 사람일지라도 주변 사람들과의 우호적인 관계가 필요하고,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삶의 의미와 행복감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관계지향성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강한 욕구로 발현되곤 한다. 


하지만, 성과와 목표 달성이 중요한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 모두의 인정 욕구가 동등하게 충족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안타깝지만, 상하관계를 비롯해 여러 각도로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욕구와 이해관계 또한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냥 회사에선 나의 인정 욕구는 충족되기 어렵다는 걸 인정하자. 세상 일은 내 뜻대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아마도 영원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을 표명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바로 나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무너지면, 나의 세상은 무너진다. 그러니, ‘이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저 참고 있지 말자. 내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환경을 찾거나 최소한 나에게 유리하거나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제프 베조스 역시 스트레스에 대해서 비슷한 조언을 했다. 그는 '스트레스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액션을 취하지 않는 데서 온다'고 했다. 문제가 발생하는 즉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행한다. 신기하게도 '내가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라는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를 극적으로 줄여줄 수 있다.


회사가기 싫어병을 치료하고 싶은 그대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들이 있다. 앞으로는 도를 넘는 요구사항을 계속해서 들이미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꼴 보기 싫어서 회사가 가기 싫을 정도라면, 그때는 반드시 그 사람에게 안 된다며 거절했으면 좋겠다.


또한, 별다른 이유 없이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이유를 따져 묻고 관계를 바로잡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나의 경험 상 한두 번 정도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려고 한다고 해서, 그리고 용기를 내어 관계를 개선하고자 대화를 시도했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내 두통의 원인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 대한 불만과 상황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었다. 나는 마케팅 대행사의 직원이었는데, 수개월 동안이나 고객이었던 K의 갑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시킬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의 갑질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는 건 내 영혼을 좀 먹는 일이다. 나는 더 이상은 아무리 고객이라고 해도 불합리한 업무 내용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싶진 않았다. 나는 결국 K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만 4년을 다니던 회사였지만 말이다.


지금의 나라면, K 말도  되는 갑질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일터에서 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내가 K와의 미팅을 하고 회사로 돌아와서 K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때때로 전하긴 했지만, 상사는 나의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던  같다. 그때는 안타깝지만, 고객의 갑질이 한편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갑질을 참고 만족할만한 실력을 보여주면 '좋게 좋게'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좋게 좋게' 해결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상사는 많이 놀랐던 것 같다.


나의 상사는 내게 한 달간의 유급휴가를 줬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잠시 쉬면서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너덜너덜해진 내 영혼은 치료가 시급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황을 너무 오래 방치했던 탓이었다.


회사가기 싫어병의 종착지는 결국 그 회사와의 이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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