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3년 차 직장인이 되었을 때, 첫 번째 이직을 할 ‘뻔’ 했다.
새로 옮길 회사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인사팀을 만나 채용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와서 팀장에게 퇴사하겠다고 했다. 팀장이 나에게 퇴사의 이유를 묻길래, 나는 솔직하게 그쪽 회사의 경력직 모집 공고에 합격해서 이직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곧 회사에는 소문이 퍼졌다. 선배들은 모두 한 마디씩 거들면서, 나의 이직을 말리는 것이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거기나 여기나 똑같다’는 거였다.
결국 선배들의 성화에 못 이긴 나는 회사를 옮기는 것을 포기했다. 망설이다가, 그 회사의 인사담당자에게 전화해서 '죄송하지만 못 가게 되었다'라고 했다. 아쉬움이 컸기 때문인지, 그때 이직하려고 했던 회사에 처음 면접으로 보러 갔던 날부터 마지막 전화통화까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왜 그랬지?'
나도 내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내가 바보스러웠다. 지금이라면, 절대로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려서 내 결정을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후회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내가 퇴사를 결심했을 때의 이유가 분명 있었는데, 그저 주변 사람들이 말린다고 해서 변화를 시도하기보다 안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퇴사하려고 했던 이유가 대체로 해결이 되었다면, 이직을 하지 않는 결정도 나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당시엔 선배들의 경험을 믿고, 어디든 비슷할 직장생활을 상상했지만, 지금 나는 ‘어딜 가도 똑같다’는 말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하는 본질은 어느 회사를 다니건 어렵고 힘든 일을 겪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회사에서의 경험은 결코 똑같지 않았다. 그냥 퉁 쳐서 ‘모든 회사는 힘드니까 여기에서 버텨라’는 말은 그래서 설득력을 잃었다.
누구라도 주변에서 당신에게 특별한 근거 없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이유는 내가 갖고 있는 일터에 대한 이상향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이 직장을 선택하는 우선순위는 다 다르다. 일터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 애초에 다르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같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
나의 문제에 관해서는 스스로의 판단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우선이다. 물론 선배들은 후배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훈수를 뒀으리라. 그럼에도 아무도 본인의 인생 문제인 나만큼 깊이 고민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 선택에 앞서 다른 사람들을 원망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시에 나는 그저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애송이로 딱 그만큼 현명하지 못했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을 전하면, 대부분의 동료들이 아쉬워하며 말리기 마련이다. 나는 매일 그들과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보니, 감정적으로 친밀함을 느꼈었나보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너무 심각하게 여겼다.
얼마 동안은 다른 회사에서도 내가 퇴사하겠다고 할 때마다, 회사에서 유급휴가를 주며 생각할 기회를 주곤 했다. 처음엔 나를 붙잡고 싶은 상사나 회사의 입장을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했다. 하지만, 여러 번 그런 일을 겪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회사생활은 별로 바뀐 게 없는데, 나의 퇴사에 대한 의지는 쉽사리 꺾이지 않아서 나중에 더욱 곤혹스런 상황을 마주할 뿐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결정도 없다. 하지만, 퇴사하려고 할 때마다 회사에 스스로 붙잡히는 건 정말 별로였다. 매번 나의 의지에 반하는 결정을 하고 변화를 유예할 뿐이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Y는 수년째 ‘넥스트 커리어’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 넥스트 커리어는 모든 직장인의 고민거리이다. 하지만, Y의 가장 큰 문제는 회사를 정말로 오래 다녔음에도 계속 자신과 맞지 않다고 느끼며 회사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거였다. Y의 선택은 크게 두 갈래였다. 그곳에서의 안정적인 지위와 보상을 버리고 떠날 것이냐, 내면의 욕구를 외면하고 계속하던 대로 조직에 순응하며 살 것이냐.
나는 충분히 Y의 갈등을 이해했다. 나 역시 한동안은 Y에게 조직 내에서 쌓아 올린 경험과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조직에서 성장하라는 조언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조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미 오랫동안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어 괴롭다면, 다른 삶의 대안을 적극적으로 탐색해볼 때가 되었다. 일터에 남기 위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계속해서 포기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내가 일하고 싶은 방식대로 일하겠다는 결심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내가 변하려고 하지 않는 한, 상황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용기가 있어야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충분히 고민했다면, 어떤 선택이든 내가 내린 결정을 용기 있게 밀어붙일 수도 있어야 한다. Y의 경우에는 그동안 쌓은 경력을 믿고 조직에서 좀 더 나를 드러내며 과감하게 맞부딪히는 것도 용기이고, 새로운 조직을 찾아서 시작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내가 꿈꾸던 것들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방해를 마주치며 고난을 겪기도 한다. 스스로 얼마큼 노력했는 지에 대해선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버틸 만큼 버텼다는 생각이 들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자신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저 현재의 안정감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처음 나의 선택을 계속해서 지지하는 것만이 끈기는 아니다. 그건 미련이다. 단호히 미련을 끊어내는 것도 능력이다. 끈기란, 내가 내린 선택을 믿고 착실하게 일상을 지속하는 능력이다. 계속 나를 흔들고 괴롭히는 선택은 그렇게 끈기있게 지지할 만큼의 가치가 없다.
나는 일터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본인 스스로의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전인적인 존재이다. 주변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다 보면, 그저 '힘 내'라는 말을 듣는 게 고작일 때도 많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와의 대화를 나눴을 때,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 쉬웠다.
기회가 된다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서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다. 이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법론을 전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뜨겁게 달궈진 뇌를 잠시 식히고, 냉정하게 상황을 점검하고 싶을 땐, 나는 산책을 한다. 뭔가를 하겠다는 마음보다는 귀에 아무것도 꽂지도 않은 채 오직 나와의 대화를 하기 위해서 시간을 갖는다.
천천히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샘솟았던 땀이 식으며, 흐르는 바람에 몸과 마음을 맡기게 된다. 조금은 고민거리로부터 멀찍이 떨어지는 여유를 부려보자. 그렇게 여유를 찾고 나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꾸지 못하는 것들을 비교해 본다. 그런 식으로 매번 좋은 해결책을 만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들여다 보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평상시보다 조금은 쉽게 용기를 낼 수 있게 되더라.
결국 나의 모든 선택은 나에게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