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늘날 직장인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생계뿐 아니라, 의미 있는 경험과 성장의 기회다.
우리가 새로운 문화권으로 이동하면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익숙했던 생활방식과 습관을 일부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해야 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이직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면 각 조직의 문화, 업무 방식, 시스템에 맞춰 새롭게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래서 흔히 ‘이직은 이민과 같다’고 말한다. 회사가 신입 직원에게 통상 3개월 수습 기간을 두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얼마 전에 50대의 B가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나는 B가 입사하기 전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B가 출근했다는 사실을 별로 체감하지 못했다. 며칠 후 정상 출근을 하게 되어, 그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새로운 사람과의 산뜻한 만남을 기대했지만,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그 기대는 금세 무너졌다. 입사 초기의 몇 가지 경험 때문에 이미 서운함을 느낀 B는 불만을 쏟아냈다. 중간에 대화를 멈추고 싶었지만, 나는 이 조직에 먼저 있는 사람으로서 B가 잘 적응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 인생이 걸린 만큼 저도 회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순간, 나는 그저 B의 불만은 '인생을 걸만큼' 회사에서 잘 성장하고 싶다는 나이 든 경력직 신입의 패기라고 받아들였다. 일단 길었던 그날의 우리의 대화는 끝냈다.
회사 적응에 도움을 받으려는 상담 세션이었는지, 혹은 관리자들을 향한 동료 간의 뒷담화였는지 아리송했던 그와의 대화 이후에 내 머릿속은 꽤 복잡했다. 나는 어떤 회사도 내 인생을 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지 않은가. B 역시 이직에 대한 경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충분한 경험치를 갖고 있었다.
회사가 나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음에도, 왜 일부 직원들은 ‘회사에 인생을 건다’고 말하는 걸까? B의 경우, 이는 자신의 직장을 향한 이상향이자, 그 의지를 회사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회사와 신의로 고용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직장에 있는 동안 성실히 일해야 한다. 고용의 안정성은 간혹 개인뿐 아니라 가족의 생계와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므로, 당연히 신중해야 한다. 고용과 관련하여 가장 최근의 화두가 바로 '대 퇴사의 시대(Great Resignation)'이다. 더 나은 고용환경을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자발적인 퇴사가 늘어나는 현상이 있었는데, 코로나 상황과 맞물려서 이러한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요즘같이 이직이 잦은 시대에 회사에 매번 내 인생을 걸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직장인들이 직장에 거는 기대 역시 달라진 지 오래다. 예전에는 그저 오랫동안 고용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서 정년퇴직을 보장하는 회사의 역할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근로기간 동안에 조직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회사인 지가 중요하다.
게다가 나는 웬만한 일에는 ‘인생을 함부로 걸지 말자'는 주의이다. 내 인생이 오직 나만의 서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요즘 같은 시대에 극단적인 심정으로 지켜야 하는 대의명분은 별로 많지 않다. 이런 심정으로 회사를 다니면, 여유를 잃고 나중엔 정서적으로도 불안해진다. 말 그대로 사소한 것에 목숨 걸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 오직 나뿐이다.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고를 구태여 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이 오직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유아기적 사고를 하자는 게 아니다. 세상에 주인공은 내가 아닐 지라도, 내 인생은 '내가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게 직장이라고 해서 나의 행복보다 높은 우선수위를 줄 순 없다. 난데없는 B의 '회사에 내 인생을 걸고 있다'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회사가 나와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지를 확인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인생의 가치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을 살아간다.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회사라면, 갈등이 적다. 회사생활이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편안한 일상을 지키도록 도와준다. 그러면, 아무래도 그 회사를 오래도록 다니도록 동기부여가 된다.
그렇지만, 나와 다른 가치를 가진 조직과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입사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리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동안, 가치관의 간격은 계속 벌어진다. 마음의 상처가 나서 나중에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지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그냥 회사를 다니기 위해 버티는 삶이 되어 버린다. 이러다 보면, 버텨낸 시간이 아까워서 사람들은 쉽게 회사를 떠날 수 없다.
‘애써 들어간 회사니까’, ‘적어도 경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3년은 버텨야 한다니까’ 등 이런 고정관념이나 사회적으로 널리 퍼진 규칙 때문에,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회사에서 무조건 참고 버틸 필요는 없다. 난 가끔 이런 식의 규칙이나 믿음들이 너무 일반론적이라,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반응에 대해서 평균적으로 유사한 법칙이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한 것으로, 과연 이러한 법칙들이 현재에도 유효한가?
낯선 길에서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그냥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불필요하게 자신을 비관하지 않고 담대하게 이동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조직문화에 적응한다고 해서, ‘내 인생을 걸어야 한다’고 스스로 부담을 높일 필요는 없다.
나는 회사를 대할 때에도 이렇게 담대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입사를 하고 나서 새로운 조직문화에 적응할 때에도 특히 그랬으면 한다. 그것이 일터와 관련되었다고 해서, 괜히 '내 인생을 걸만큼'이라고 스스로 가중치를 높여서 생각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없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불만사항을 일일이 동료에게 말할 필요도 없다. 같은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회사에 대해 동일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다른 사람 입장에선 다르게 생각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회사는 일터를 향한 나의 가치관과 대부분 맞지 않는다'라는 판단이 서면, 그저 잘못 들어선 골목길에서 돌아서 나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어서 빠져나오면 된다.
그러려면 정말로 본인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사전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정말로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지, 일터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 어떤 대우와 보상을 기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성찰하고 내린 결론 역시 가치가 있다. 우리는 나와 맞지 않는 일이나 직장은 현명하게 피할 줄도 알아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해 반복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을 막는 일이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같은 패턴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