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휴가는 팀장님이 알아서 관리해 주세요.”
얼마나 쿨한가. 대표가 앞으로는 휴가에 대한 결재를 안 받아도 된다고 했다. 직원들을 전적으로 믿겠다며, 정말 바쁠 때엔 회사가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일도 있을 테니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리고, 팀장인 나에게 팀원들의 휴가에 대한 권한을 위임했으니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대표는 '의리'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근로 계약서에 법정 휴가일수도 기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들이 죄다 신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다. 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사람은 1개월 만근 시마다 1일이 부여되어 총 11일을 공식적으로 쉴 수 있고, 1년 이후부터는 연차 15일, 그리고 근속연수에 따라 휴가일수가 늘어난다는 것을. 그건 회사와 직원 간에 지켜져야 하는 법적인 책임(연차 유급휴가제)이다. 휴가는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복지제도이니까.
근로자는 입사기준 1년 미만 기간에 발생한 연차휴가(최대 11일)를 사용하고, 2년 차에는 최초 1년간 근로에 따라 발생한 연차휴가(최대 15일)만 사용할 수 있다. 입사 기준 1년 이내 발생한 연차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이는 소멸하게 된다(취업 규칙에 따라 내년으로 이월 가능).
3년 이상 장기근속할 경우 2년에 1일을 가산하여 지급한다(최대 25일).
내 휴가를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그것도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할까?
기업 평판 사이트인 잡플래닛에 올라온 내 회사 리뷰를 읽어 보면, 직장인들은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휴가를 마음껏 정해진 일수대로 쓸 수 있는 직장에 후한 평가를 내린다. 엄밀히 말하면, 대부분의 회사에서 연차 사용은 '사전 승인'을 받는다.
근로자는 연차 사용일을 마음대로 지정할 수 있는 '시기 지정권'을 가진다.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의 연차 사용을 거부한 사용자(고용주)는 징역 2년 이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사용자는 '사업 운영에 막대한 불이익을 가져올' 경우,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시기 변경권).
일부 기업, 주로 외국계 기업은 12월 중순 경부터는 많은 직원들이 연말 휴가로 회사를 비우는 꿈같은 일정을 공식적으로 선포한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선망하는 회사가 된다.
휴가를 사용하는 방식은 개인적이다.
예전 우리 팀의 직원 두 명은 휴가 사용에 대해 확연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A는 매월 꼬박꼬박 휴가를 챙겨서 쓰는 스타일이었다. A는 달마다 좋은 여행지를 찾아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에 비해 B는 휴일 없이 열심히 출근하며 몇 개월 치에 해당하는 휴가를 적립해 두고 있었다. 12월이 다가오는데, B가 남은 휴가일수를 어떻게 소진할 건지 궁금했다. 회사는 해당 연도에 발생한 연차를 이월하지 않고, 반드시 소진을 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 날, A의 여행 후기에도 꿈쩍하지 않던 B가 메신저를 보냈다.
"팀장님, 저 12월에 남은 휴가를 전부 소진할 계획입니다."
"어, 당연히 그래야지. 남은 휴가일수가 꽤 많은데. 그럼 언제 쉴 건지 미리 계획을 알려줄래?"
휴가에 대해 쿨한 입장이었던 대표지만, B의 휴가 계획을 공유했더니 대표는 더 이상 쿨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나도 그런 대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회사는 12월이 되었다고 해서 업무량이 줄어드는 게 아니고, 꼬박꼬박 매월 주어진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휴가를 낸 B의 입장 역시 이해가 갔다. 제출한 휴가 계획을 보니 통째로 며칠을 쉬려는 것도 아니고, 주별로 2일씩 쉬겠다는 내용이었다.
자칫 서로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질 뻔했지만, B의 연차 사용은 원하는 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이번 일을 겪으며, 연차 사용에 대해서 사전에 계획을 공유하는 게 정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으로 맺어진 근로 시간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야근에 대해서도 노사 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통상적으로 야근을 해야만, 일에 대한 열정이 있고 열심히 하는 직원이라는 편견이 있다. 아무리 근무시간에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해도 정시에 퇴근을 하는 직원과 밤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하는 직원이 있으면 비교가 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상, 주에 최대 12시간까지 연장근로를 인정한다.
(법정 근로시간 40시간 포함, 주에 최대 52시간 근무)
내가 일을 해온 시간의 전반부에는 야근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많았다. 지금처럼 ‘워라밸’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신입 시절, 야근은 매일같이 이어졌다. 당시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신입이었지만, 꽤 큰 프로젝트의 PM을 담당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보다 못한 아버지가 노트북을 사주셨을까. 매일같이 새벽에 퇴근하는 딸이 걱정되신 아버지가 '그렇게 할 일이 많으면 차라리 집으로 가져와서 하라'며 소니 바이오 노트북을 사주셨다. 과연 나는 아버지의 바램처럼 일찍 퇴근할 수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사주신 노트북은 회사에서 제공한 어떤 데스크톱 PC나 노트북 PC 보다도 고성능이었지만, 매일같이 나와 함께 사무실에 있었다. 야근을 할 때면, 노트북을 주시면서 걱정스러워하셨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서 죄송했다. 그리고, 회사를 옮겼지만, 그다음, 그리고 다음 회사에서도 정시 퇴근은 요원했다.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팀원 한 명이 밥을 먹지 못하고, 클라이언트의 문자에 일일이 답장을 해주고 있었다.
"지금 우리 점심시간이니까 사무실에 들어가서 회신하겠다고 말하면 안 돼?"
"그러면 난리 날 걸요."
솔직히 난 상대방을 잘 몰랐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난리가 날 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일하는 방식 역시 그 직원의 의지이니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사실 클라이언트가 급하다고 계속 재촉하는 상황에서, 담당자의 입장에선 마음 편히 밥이나 먹고 있기에는 너무 불편한 일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뒤로도 그 클라이언트는 그런 식으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팀원을 볶아댔다. 그렇게 일하는 팀원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점점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구하는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며칠 뒤, 나는 늦은 여름휴가로 필리핀 세부로 떠났다. 한 달 전쯤 주말에 친구와 만나서 비행기표와 리조트만 예약해 놓았다. 그 뒤로 휴가를 떠나기 바로 전날까지도 야근을 하느라 휴가지에서의 일정에 대한 계획은 정말 하나도 결정하지 못했다. 같이 휴가를 떠난 친구도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리조트에 도착한 우리는 일단 실컷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현지 여행사에 연락해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액티비티들을 예약했다. 다행히 극성수기 시즌이 아니어서, 예약은 순조로웠다. 며칠 동안 나름대로 알차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행복했던 휴가의 마지막 날, 밤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기 전에 리조트의 인공 바다를 한번 더 즐기기로 했다.
우리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는 자세로 둥둥 떠 있으면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와, 이곳이 천국이네’, ‘너무 행복하다’를 반복했다. 주변은 너무나도 고요한데, 우리를 둘러싼 공기는 너무나도 따뜻했다. 가장 힘들었던 때에 느낀 찐감정이었기 때문인지 그 순간의 편안함과 행복감은 잘 잊히지가 않았다.
휴가지에서 돌아온 뒤에 나는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터에서 잠시 떨어져 본 경험이 그런 용기를 갖게 했다. 퇴사를 하겠다고 하니, 상사는 당황하며 한 달간의 유급휴가를 줬다. 그동안 주말도 없이 일해온 것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편안하게 쉬고 돌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쉬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나는 회사로 돌아갈 힘이 생기지 않았다. 결국 나는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서운해하던 상사는 오히려 다른 회사를 추천해 줬다.
나는 직장생활 후반부의 시간 동안에는 야근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내가 정시에 퇴근을 하기 시작하면서 관찰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퇴근 이후의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고 있었다. 왠지 속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 시기는 일과 삶의 조화(Work and Life Balance)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그때까진 과로로 인해 사망했다거나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했다는 사례를 종종 접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시 퇴근을 실행하게 되었다.
얼마 전,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와 출연한 패널들과 진행한 랜선 북 토크를 시청했다. 그녀 역시, '진정한 회복(힐링)은 빨래를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일과 같은 사소한 일상에 있다'라고 했다. 작은 행복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는 상처들로부터, 나 자신을 회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는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으며, 일상을 지켜내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찍 퇴근하게 해 줬더니, 직장인 대부분이 술집에 모여 있더라'는 말도 들렸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다. 나 역시 여유 있는 시간을 통해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것들에 도전해 보기도 하고, 퇴근길에 장을 봐서 저녁을 직접 만들어서 먹기도 하면서 가족이나 친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렇게 나 스스로를 돌본 시간들이 회사에 있던 시간들보다 나를 더 많이 성장시켰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그저 주어진 일만 하게 된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욕먹지만, 그렇다고 시키는 일을 제대로 못하면 잘린다. 아무리 혁신과 창의를 외친다고 해도,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 테두리 내에서의 자유이다. 굳이 '회사 노예'라는 말을 붙이고 싶진 않지만, 근로자들은 자유를 일부 속박당한 상태인 건 맞으니까. 하지만, 회사에서 계속해서 같은 일만 반복하고, 다른 주제의 일을 다양하게 접할 기회가 없다 보면, 시쳇말로 바보가 된다. 한 분야의 전문가는 될 수 있지만, 다방면의 상식이 부족해진다.
지금은 ‘대 퇴사의 시대(Great Resignation)’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자진해서 퇴사를 감행하며, 자신의 일을 찾기 시작했다. 내 옆의 차장님의 모습이 자신의 십 년 뒤라고 생각하니 갑갑했다거나, 경제적 자유를 이룬 자신의 경험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인증 글은 너무나 많다. 이렇게 빠른 은퇴를 시작한 사람들을 보면서, 회사 일에만 매몰되어서 인생을 보내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지를 깨닫게 된다. 그저 안전지대(safety zone)에 머물러 있다 보면, 미래의 대안을 찾을 시간이 없다.
우습지만, 위험하다고 하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한참 야근에 시달리던 사회초년생 시절, 회사의 위치가 홍대입구역 근처였다. 그때 회사에서 진행하는 대형 프로젝트들이 워낙에 바빴던 탓에, 회의실에 들어가면 몇 시간씩 감금되다시피 했고, 매일 같이 철야에 시달렸다. 그 당시에, 유영철이라는 유명한 살인마가 아현동에서 활동했다. 한동안 우리 사회가 발칵 뒤집혔을 만큼 사회적인 이슈였는데, 나를 비롯해서, 우리 회사의 직원들 중에 아무도 뉴스를 챙겨보지 않아서 연쇄살인마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얼마나 바빴으면, 사회면 기사를 챙겨볼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말 그대로 사회와 단절됐었다. 나중에 유영철이 잡혔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제야 무서움에 떨면서 그가 잡혔다는 사실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그저 회사에서 주어진 일만 하는 건 정말로 위험하지 않은가?
회사 밖을 향한 시야도 조화롭게 확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