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린 Jun 19. 2022

가족 같은 회사? 진짜 가족들의 회사!

가족 같은 회사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나 빼고 정말 다 가족이네.


출처-불개미상회


'우리는 가족처럼 일한다'는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게 되어서,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주요 구성원이 진짜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회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글쎄 이게 만약 내가 겪어야 하는 현실이라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나의 대답은 도. 망. 쳐.


하지만, 쉽사리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족회사에 대해 이해하고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고?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 '가족회사'가 꽤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숫자를 헤아려 보다가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다닌 회사 중에 30%가 가족회사였다.


그러고 보니, 가족회사를 다니면서 경험한 웃지 못할 사건들이 꽤 많다.  




가족회사란,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가 아니라, 실제 가족들로 구성된 회사를 뜻한다.


전 직장 K의 A이사와 B과장. 회사 안에서는 두 사람이 가족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둘은 죽이 척척 맞는 듯했고 분위기나 성격도 비슷했다. 회사 사람들은 두 사람이 사촌 지간이라고 추측했다. 두 사람의 성씨 역시 아주 흔한 편이 아니었는데, 이름이 가운데 한 글자를 제외하고는 똑같았기 때문에 더욱 믿음이 갔다.


직원 한 명이 나에게 은근하게 말을 했다.

"두 사람이 가족이라는 거 들으셨죠?"

"아, 들었어요. 두 사람이 사촌 자매라면서요?"

"근데, 확실하게 두 사람한테 들은 게 아니어서, 아마도 이모와 조카 사이인지도 모르겠어요."

"아. 두 사람한테 직접 들은 건 아니군요."


'진짜 두 사람이 가족이라면 굳이 가족 관계라는 걸 굳이 숨길 필요가 있을까?'

나는 알쏭달쏭 궁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쨌든 소문을 전해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두 사람이 회사 내의 핵심 세력이라는 건 인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들의 공고하기만 했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두 사람 사이에 경쟁사에서 이직해온 C부장이 끼어들었다고 한다. 업계 소문으론 C부장이 다닌 회사는 정치질로 유명한 곳이고, C 역시 정치싸움 중에 밀려서(?) 회사를 그만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B과장이 퇴사하게 되었다. B과장은 회사를 나가기 직전에 나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해줬다. 그전까지는 같은 팀원들이 물어봐도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해 주지 않던 그 소문에 대한 이야기였다.


“팀장님, 저도 이사님과 제가 가족이라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어요. 궁금하셨죠? 아마 우리가 이름도 비슷하고, 나이 차이도 그래서 이런 소문이 도는 거 같은데요. 우리 진짜로 가족 아니에요.”


직장생활을 십여 년 넘게 했던 나로서도 이거야말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들은 다른 직원들이 두 사람이 가족이라고 오해하는 것을 무기 삼아서 회사 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때의 경험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새로 회사를 들어가게 되면, 일단 회사 안에 이름이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가족 간에 이름이  비슷한  아니지만, 희소한 성씨에 이름에도 돌림자가 있는 경우엔 아무래도 두 사람이 친인척 관계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가끔 직원 명단에서 정말로 비슷한 이름을 찾은 경우에는  사람의 얼굴이 혹시라도 서로 닮았는지 살펴보기도 했다. 안타깝지만, 직계 관계가 아니면 서로 닮은 점을 는 게 힘들긴 하다. 삼촌이나 사촌 간은 사실 외모 상으론 닮은 부분이 별로 없는 그냥 남과 다를 바 없으니까.


하지만, 직계가족이라면 외모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직장 P 다닐 때의 일이다. 거래처와 미팅을 하는 중에, 나는 상대 회사의 대표가 기획실장을 매우 살갑게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순간,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 굉장히 닮아 보였다.

'어?'

혹시 하는 마음에 좀 전에 받은 두 사람의 명함을 보니, 두 사람의 성씨가 같았다.


우리들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동행했던 직원 역시 두 사람이 가족 관계라는 것을 감 잡은 듯했다. 우리 둘만 있게 되자, 내게 속삭였다.

“두 사람 부자 관계인 거 같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실장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거래처의 대표는 빙그레 웃더니,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실장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실토했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I... I am your father


가족회사의 또 다른 특징은 임직원의 대부분이 친인척뿐만 아니라 친인척의 지인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족회사는 아무래도 가족과 친지로 이루어진 구성원들 간의 돈독한 관계 덕분에 회사 내에서도 사람 냄새가 나는 건 사실이다.


전 직장 R. 지인이 내게 회사를 소개해 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 회사의 대표는 채용 공고를 통해서 사람을 뽑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 그래서 죄다 아는 사람들인 거지.”


내가 입사를 하고 나서 보니, 그 회사에 채용공고로 들어온 직원 수는 정말로 많지 않았다. 대표에겐 '지인 추천'이야말로 그 사람에 대한 레퍼런스 체크(reference check) 중에서도 가장 신뢰할 만한 것이었나 보다.


우리들이 ‘가족회사’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회사 운영에 있어서 관계를 우선순위에 둔다. 가족회사에서는 단순히 업무 능력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요한 업무의 책임자가 대표의 가족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런 사람들은 업무 경험이나 실무 지식이 좀 모자라서 일이 더디게 진행이 되더라도 다른 직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이미 사내에서 공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직원들과의 협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직원들이 힘들어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어차피 회사는 그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경험을 잘 존중하지 않고 그들의 스타일만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정체되고 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참지 못한 직원들은 퇴사를 택했다.


게다가 퇴근 후에도 끝나지 않는 그들만의 추가 근무가 있었다. 일반 직원들에겐 퇴근이란, 업무를 마치고 본인의 일상을 보내는 시간이다. 하지만, 가족회사의 가족들에겐 퇴근이란 개념이 없었다. 업무에 대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가족이 아닌 직원들은 참여할 수 없으니, 그 시간과 장소에 함께 하지 못해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직원들은 억울할 때가 많았다. 다음 날 아침이면, 대표가 전날의 결정사항으로부터 변심한 채 출근하여 지시사항을 번복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으니 말이다.


전 직장 Y.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표는 퇴근 후에도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때가 가끔 있었다. 그때마다 ‘오죽 급하면 이 시간에 전화를 할까’하는 마음에 재빠르게 대응을 해줬었다. 그날은 대표가 오후에 외근을 갔던 터라, 스마트폰 액정에 뜬 대표의 전화번호를 보며, ‘혹시 급하게 처리해 줘야 하는 일이 있나’하는 심란한 마음으로 전화 수신을 승낙했다.


"지금 운전 중이야. 외근 마치고 집에 돌아가고 있어."

이렇게 말을 시작한 대표는 의외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한참이나 마치 나를 떠보는 듯이 이것저것 물어봤다. 게 중엔 이사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우리 이사님 때문에 힘들지?"

‘이 시간에 전화해서 물어볼 만큼, 이런 일들이 긴급을 다투는 일인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스러웠다. 어쨌든 대표의 유도 신문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 팀장님, 저 OOO입니다."

갑자기 수화기 너머로 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사는 대표의 남편이었다. 그 순간 나의 심경을 어떻게 표현해야 적당할지 모르겠다. 대표가 나한테 이사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는데? 그것도 바로 직전에 말이다.

“놀랐지? 사실 지금 이사님이 운전하고 있어, 우리 아까부터 카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고 있었어.”


알고 보니 이사까지 세 명이 함께 통화하고 있었다. 통화하는 내내 옆에서 숨죽인 채, 이사가 내 대답을 듣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살짝 소름이 돋았다. 보통 스피커폰으로 대화를 시작할 때에는 상대방에게 누가 옆에서 듣고 있는지에 대해서 미리 알려주는 게 예의이지 않은가.



가족회사에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다니려면, 일반 회사와는 또 다른 인간관계에 대한 노하우가 필수이다.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은 가족이나 친지로 구성이 된 그들의 관계에는 ‘퇴사’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반 회사에 다닐 때보다는 인간관계에 대해 신경 쓰는 비중을  더 높여야 한다. 단순히 맡은 업무에만 충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한다고 해서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완전히 동의하기 힘들지만,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협조적인 직원에 대해 더 좋은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가족 중에 한 명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도 그저 한 명의 직원에게 찍히는 게 아니다. 그들 역시 직원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결국은 가족 모두에게 찍히는 셈이다. 자칫해서 그들 중 누구 하나와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엔 돌이키기 힘들다.


전 직장에서 L과장이 전체 회의 중에 돌출 발언을 했다. 회사를 위한 직언으로 내용적으로 틀린 건 없었지만, 태도가 문제가 되었다. 곧, L과장을 괘씸히 여긴 가족들은 합심해서 그녀를 내보내기 위해서 애썼다. 안타깝지만, 여러 모로 회사에 정이 떨어진 L과장 역시 흔쾌히 사표를 냈다.


가족회사에서는 아무래도 화합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가족이 아닌 직원이 조금이라도 혼자 튀는 행동 한다고 생각하면 혹시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유난히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생각을 말할 때엔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중요하게 여긴다. 조직을 위한 건의사항을 말하면, 그 직원의 속내를 의심한다. 그러니, 다른 회사에서는 별 일 아닌 해프닝으로 넘어갈 일도 괘씸죄에 걸려서 큰일이 되고야 만다.


혹시라도 가족회사를 다니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신중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앞서 L과장처럼 조만간 퇴사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들의 적정 근로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