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이
(존 버닝햄, 비룡소, 2006)
에드와도르는 그냥 평범한 아이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똑바른 자세로 반듯하게 학교생활을 하며, 수업시간에는 절대 장난을 치지 않는 1번 유형의 완벽한 아이가 아닙니다.
가끔 늦잠을 자기도 하고, 가끔 장난을 치기도 하고, 가끔 공부를 안 하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아이입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시끄럽게 떠들었죠. 그러나 완벽한 아이를 기대하는 어른들은 계속 그 평범한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라고 꾸짖습니다.
가끔 동생을 때리기도 하고, 동물을 괴롭히거나 고양이를 잡으려고 쫓아다녔죠. 방 정리도 엉망이고 세수하고 이를 닦는 걸 자주 잊어버리죠. 그때마다 어른들은 손가락질을 하며 지적합니다. 그렇게 결국 에드와도르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말썽쟁이가 됩니다.
7번 유형의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장난이 심하고, 덜렁대는 느낌이 있다 보니 어른들로부터 종종 오해를 받습니다. 긴 시간 지루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산만하다고 지적받기 쉽죠. 특히 주변 어른이 1번 유형일 경우, 자신의 옳고 그름의 명확한 판단으로 계속 지적하고, 비난하고, 억제합니다. 그러나 어른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 도덕적 판단을 7번 유형의 아이들에게 적용하면 어쩔 수 없이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에드와도르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평범한 아이인 7번 유형의 아이를 완벽한 아이인 1번 유형의 아이로 바꿀 수는 없는 거죠. 그런 기대와 평가가 평범한 아이를 나쁜 아이로 만들어 가게 됩니다.
그런 에드와르도가 모자를 쓴 한 남자를 만나면서,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에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로 변신하기 시작합니다.
시작은 에드와르도가 화분을 발로 걷어찼는데, 그걸 본 남자는 “에드와르도야,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구나. 정말 예쁘다. 다른 식물들도 좀 더 심어 보렴.”이라고 말합니다. 에드와르도는 식물을 기르는 솜씨가 좋았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에드와르도에게 자신들의 정원을 가꿔달라고 부탁했죠.
두 번째는 사나운 에드와르도가 길을 가던 개에게 물 한 바가지를 끼얹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 개는 지저분한 개였고, 개의 주인은 동물에게 상냥하다고 칭찬해 줍니다. 그 일을 계기로 동네 사람들이 자신의 애완동물을 돌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와 비슷한 일들이 계속 연이어 발생하죠. 심지어 심술이 나서 어린 동생 알렉을 세게 밀었는데, 바로 그때 교실의 전등이 떨어지면서 영웅이 되죠. 그때부터 에드와르도는 어린 동생들을 돌봐줍니다.
그래서 에드와르도가 변했냐고요? 그럴 리가요. 처음에 언급했듯이, 평범한 7번 유형의 아이가 완벽한 1번 유형의 아이로 바뀔 수는 없어요. 여전히 에드와르도는 어수선하고, 사납고, 지저분하고, 눈치 없고, 시끄럽고, 못되게 굴고, 버릇이 없어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된 걸까요?
에드와르도, 즉 아이가 바뀐 것이 아니라 주변 어른들의 시선이 바뀐 것이죠. 모든 유형의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는 아이의 특성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저 타고난 특성을 잘 관찰하고 그 특성을 장점으로 키워가도록 하는 역할을 어른이 해야 합니다.
7번 유형의 아이들은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이들은 독립과 자율성을 무척 소중하게 여기죠. 정중하게 부탁하면 이들이 가진 다양한 재능들을 발휘해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정해진 규칙을 강요하면 이들은 감옥에 갇힌 느낌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이 유형의 아이들에 대하여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관찰하고 배울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들은 가장 모험심이 강한 아이들이며 매일 2분마다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는 아이들입니다. 매일 틀리죠. 매일 실패하죠. 그래서 창의적인 아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