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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신저클레어 May 19. 2023

여고 동창들과 25년 만에 힐링 여행

MBTI로 서로를 이해하다


세종시에 살고 있는 친구 A가 불쑥 제안했다.

"우리 함께 여행 가자!"


우리 집에서 20분 거리에 살고 있는 친구 B가 흔쾌히 대답했다.

"부산 갈까? 숙소가 있어!"


나는 순간 멈칫했다.

늘 가족들 먼저 챙겨줘야 했던 기억 때문일까?

최근 여행이 그다지 편하거나 좋았던 적이 별로 없어서 약간 망설였다.


그러나 이미 날짜까지 정해버렸다.

풀타임 직업을 가진 A와 B는 (고맙게도) 프리랜서인 나에게 모든 시간을 맞춰주면서까지 여행 계획이 착착 진행되었다.

MBTI 중 마지막이 P인 나를 가운데 두고 두 명의 J가 뚝딱뚝딱 계획을 세우더니 기차표 예매까지 마쳤다.

역시 J와 함께라 여행이 편하군~


사실 우리 셋은 대학 때 자주 놀러 다녔다. 

가만 보니 25년 만에 가는 여행이었다.

전날 지방에 다녀오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수서역에 도착했다.

걱정반 설렘반으로 SRT에 몸을 실었다.


부산행 SRT에서 창 밖을 찍다


P의 궤변


헐.. 특실이네?! 

덕분에 특실은 난생처음 타본다.

게다가 이렇게 타고 나서야 특실을 예매한 걸 알 정도로 난 P 성향이다.


친구들의 픽에 두둥실 내 모든 선택을 맡기는 나~

게으른 P라기보다는 너희들을 이만큼 신뢰하는 걸로 생각해 줘^^


ps. 그런데 다음부터는 나 혼자 일반 탈게~ 

전날 KTX 일반석을 탔는데, 돈을 더 줘도 허리 아픈 건 똑같다 ㅋㅋ

특실에 만족하는 너희들에게 앞으론 혼자 일반석 타겠다는 말을 차마 못 한 나...

음, 그럼 이번에는 I성향을 알아볼까?


부산 모래축제


I의 오해


나는 I성향이다.

그래서 지금껏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하고 산다.

50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렇지만 10대나 20대에도 분명 그랬을 거다.


친구 A는 E 성향이 강하다.

친구 B는 I 성향이다.


가까이 사는 친구 B와는 지척이면서도 거의 만나지 못한 채 10년 가까이 흘렀다.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그랬겠거니 했다.

(그래도 친하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다가도 나 역시 먼저 보자고 안 했던지라...)


오히려 아주 멀리 사는 E 성향의 A가 늘 우리 셋을 묶어준다.

그 이유를 20여 년이 훌쩍 지나 이제야 알았다.


B는 1:1 만남이 불편할 정도로 I라고 한다.

그랬구나...

그럼 나도 그런 마음에 너와의 만남을 늘 미뤘던 거였구나...


부산 해운대의 음향 좋은 한 bar에서 샹그리아 한 잔에 서로를 이해한다.

너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니 우리 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아니, 우리 우정이 자못 성장한 것 같다.



부산 햄튼 샹그리아



T는 일 할 때나


전날 무리했는지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그런데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친구들이 서로 배려해 주며 아픈 나를 걱정해 주는데 너무나 감동이었다.

무슨 호위받는 줄 알았다.


더 놀라운 것은 친구들끼리는 서로 F스럽다는 것이다.

나도 강한 T다.

그러나 함께 있으면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F가 되어버린다.


어려움을 함께 했던 여고생 시절이 떠올라서일까?

일터를 떠난 여행의 힘일까?

우리 셋 다 T였음에도 이유 모를 F성향의 향연이었다.

힘들지 않을까 우려했던 나 스스로가 멋쩍어서 피식 웃었다.


조개구이를 먹었다.

원래 고기든 조개든 각자 모두 남편들이 굽는다고 한다.

오늘만큼은 서로를 위해 직접 구워주려고 난리다.

따뜻한 마음까지 담겨 더 맛있었나보다.


부산 해운대 하진이네


S는 검증된 최고의 장소로 모십니다


E성향을 가진 친구는 부산을 정말 좋아하나 보다.

가족여행으로 수차례 와서 맛집뿐만 아니라 골목길까지 쫙 꿰고 있다.

마치 가이드와 함께 다닌 기분이다.


제한된 시간 내 우리는 최상의 코스로만 다녔다.

문득 N성향의 신랑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

우리 신랑은 뭐든 새로운 곳에 도전해 보는 걸 좋아한다.

나는 S라 현실적이고 검증된 곳을 선호하여 가던 곳만 계속 가는 스타일이다.


아하.. 친구들이 모두 나와 같은 S다!

그래서 이 여정이 편하고 괜히 더 좋았나 보다.


부산 버거인뉴욕


실로 MBTI와 함께 한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풍성하게도 해줬지만, 우리의 지난 세월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멋진 척도이기도 했다.

서로를 좀 더 알고 나니 앞으로의 여행이 더 이상 두렵거나 걱정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는 여행이 결정되면 그 순간부터 왠지 지치고 빨리 돌아올 궁리만 했다.

그 못된 병이 싸악 사라진 계기가 되는 힐링 여행이었다.


진심으로 푹 빠져서 온전히 여행을 즐겼다.

여행으로 진정한 힐링을 체험한 이 추억을 곱게 접어 힘들 때마다 펴봐야지.


친구들아,

멋진 여행 추진해 줘서 너무너무 고맙다^^


m.Claire.


부산 해운대 : 아침에 숙소 테라스에서 바라본 뷰, 그리고 저 멀리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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